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이하 히치하이커)는 두 개의 원작을 가지고 있다. 가장 처음은 영국 라디오 드라마의 형태였고, 그 다음은 소설이다.
장르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SF 다. 하지만 원작 소설은 영국,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얼마 안되는) SF 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고전 명작 코미디로 인정받고 있으며(시리즈 전 권이 번역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원작을 읽어보고 재미없다고 하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건 특정 소수 집단의 얘기이니 통계로 쓸 수는 없겠지만) 주변에 이 원작 소설에 대한 예외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개인적으로 막 나가는 코미디와 '영국식' 코미디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작에 대한 얘기는 이쯤하고, 이 히치하이커가 영화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SF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우려반 기대반의 심정이었다. 원작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영국식 코미디만 남겼다면 말아먹기에 딱 좋았으니 말이다. 이 영화가 개봉 첫주에 흥행 1위를 했다는 것은 아무런 증명이 되질 못했다. 개봉 첫 주 1위야 적당히 광고만 하고 개봉관 수만 늘이면 개나 소나 따는 타이틀이니까.
그리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보고난 감상은 '나름 잘 만들었네'였다. 감독이 영국식 코미디의 단점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이 영화 도처에 배어있었고, 원작 소설을 보지 못한 관객들을 위한 배려 역시 빼먹지 않았던 것이다. 우주 도로 정리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된 지구, 그 속에서 친구를 잘 둬 살아남은 주인공 아서 덴트,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살면서 갖게되는 회의인 '진리란 무엇일까'에 대한 희화된 답변, 지구의 정체 등등의 핵심적인 요소는, 딱히 SF 마인드에 젖어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할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받아들일만한 소재이니 말이다.
도처에 널려있는 '웃을 만한' 개그와 함께 즐겨야 할 것으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주인공 아서 덴트가 '별을 만드는 공장'을 보게 되는 장면이 그 중 하나인데 영화 '콘택트' 이후 광활한 우주 공간 속의 장관을 보여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극장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경이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게 그 하나이고 , 또 하나는 로봇 '마빈'의 개그이다. 원작 소설에서도 '우을증에 걸린 로봇'으로 개그를 톡톡히 해주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개그는 물론 막판 대활약까지 멋지게 소화해낸다.
SF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갤럭시 퀘스트를 재밌게 봤거나 그 영화에 웃을 수 있었다면 이 히치하이커에서도 꽤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조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추천하기 힘든 영화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전한으로 개그를 끌어내기 일쑤이기 때문에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추가로 얘기하자면,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마지막 캐스팅 롤이 다 올라가기 전까지 자리를 뜨지 말기 바란다. 막판에 숨겨진 개그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보고 웃을지 안 웃을지는 개인 취향 차이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