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에 대한 단상

NEOKIDS 작성일 05.12.24 1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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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우수함


킹콩에 대한 이야기들 정말 많이들 하셨습니다.

그래서 킹콩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하면 아마도 또? 하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_-

그래도 개인적으로 킹콩에 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을까 합니다.....-_-;;;

제 나이 까발려지는 이야기지만....전 킹콩2를 극장에서 봤더랬습니다.
킹콩이 베이비콩 낳았는데 베이비콩을 인간들이 납치해가는.....뭐 대강 줄기가 그렇지요.
킹콩76년판을 명화극장에서 몇 번이나 본 이후였고요.

그 땐 정말 재밌게 봤었습니다.
33년판 따윈 까맣게 모를 때였으니, 뭐 그 정도도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사랑 구조를 확실하게 부각시킨 76년판의 면은 참 좋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33년판에서 거세된 스펙타클에, 76년판 사랑 이야기까지 탑재된,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한층 강화된 킹콩이란 과연 어떨까, 기대했었죠.

그리고 본 결과는.....
"액션은 최고지만 스토리는 평작"따위의 남들이 다하는 이야기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정의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의 취향 자체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일단 데드얼라이브를 너무나도 감명깊게, 혹은 낄낄거리며 본 저로써는
이번 킹콩을 통해서 확실히 느끼게 된 바이지만.....
이제 피터 잭슨은 확실히 데드얼라이브 때의 피터 잭슨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글쎄요, 작가의 기준을 어디다 두는가에 따라 아마도 다른 틀일거라 생각합니다만....

어떤 분은 시스템 속에서 그 시스템들을 진두지휘하면서 대작을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족가 영화문법이란 새로워야 해 하고 아이디어나 창의성 혹은 문법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도 계실 겁니다.

개인적인 취향의 발견 부분은, 아무래도 저는 문법적인 창의성 쪽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매트릭스 1편은 명작이라 생각되구요....

데드얼라이브나 고무인간 때의 피터잭슨과 킹콩의 피터잭슨의 차이를 비교하자면.....
(물론 돈이나 시스템같은 것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결부시키지 않는다면....)
보통 창의성이란 것을 염두에 둔다고 할 때,
피터 잭슨의 작품 자체에서 가진 창의성은
솔직히 이제 더 이상은 아마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건 안좋게 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스토리는 라인만 있으면 된다고 보고 밀어붙이는
영화문법상에서의 놀라운 창의성들을 보여준 건 다른 사람의 힘이 아니니까요.

다만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면,
이제 문법작가로써의 피터잭슨이란 게 과연 남아있을까의 문제겠지요.
데드와 고무인간은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그럭저럭 명작 대접을 받았습니다.
영화 쪽에서도 꼭 봐야할 축에 끼지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프라이트너 때부터 피터 잭슨은
시스템 집착증이 생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프라이트너를 보면서, 전 이게 피터 잭슨이 메가폰을 잡았다면 과연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하는 기대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건 잭슨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원래부터가 기존의 폼과는 다르게 갈 수 있었던 건데도,
제작의 여건과 결과물은 잭슨 것이 아닌, 기존 헐리우드 문법방식을 그대로 빼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런 시스템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잭슨에게 그대로 메가폰을 맡기기엔 결과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일까요.

그게 한스러웠던 것인지.....

이번에 누군가 공유해주신 웹상에서의 킹콩제작일지 동영상을 보면 진짜 '이런 씨발'소리 나오게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스템이 저 정도만 되었어도 헐리우드 자본 끌어다 제대로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확실히 반지의 제왕은 '뚝심' 하나가 아니면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는 거 인정합니다.

그만큼 거대 시스템이란 것이 피터 잭슨에게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우물이었다고 해도....

그가 자랑하는 클로즈업샷의 적절한 배치와
재치있는 몽타주 기법과 속도 등을, 솔직히 이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서사구조 채워넣기만도 바쁜걸로밖에 안보이더군요....

대신 시스템에서 나올법한 액션들은 더욱 치밀하게 짜여져 있죠.
몸의 액션은 한 두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게 아닌만큼,
그것을 어떤 식으로 취사선택해서 영화적인 문법으로 꾸며가느냐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취사선택의 능력을 다한 모습,
이젠 그 재미를 잭슨에게선 찾아보기 힘들다는 느낌입니다.
그게 시스템의 맹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아무래도 자신이 즐기는 문법보다는
여러 사람의 비주얼을 보고 그것들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이라면......
(협동의 의미에서는 좋을지 몰라도....자기살 깎아먹는다는 입장에서는....글쎄요.....)

아무리 원전을 따랐다고 해도,
벌레 씬 등에서는 솔직히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었잖아....라는 느낌이 없지 않아 드는건
그만큼 그가 전에 보여준 것들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이런 면에선 이제 그는 대작을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조그만 바램입니다.
떼돈 버는 것도 좋고 스케일 큰 것도 좋고 명예도 좋고 다 좋은데,

기껏 만들어 놓은 인두릴 조금씩 자기 손으로 스스로 가루내서
버리는 모습은 피해갔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죠.
(뭐 시간 앞에는 장사 없다던가요......껄)
칼을 만들었으면 휘둘러야죠.

그리고 두 번째, 킹콩을 보면서 느낀 건.....나오미 왓츠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잭 블랙의 역이 많이 회자되곤 합니다. 잭슨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쉬지 않고 나오는 잭 블랙의 면면은
확실히 보는 사람들마저 거북살 혹은 연민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나오미 왓츠는,
배역으로만 보자면 보이지 않는 킹콩을 상대로 가장 많이 연기하는 사람입니다.
몸의 연기에서부터 표정연기까지, 모든 것이 다 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33년판에는 확실히 부각되지 않던 슬랩스틱 코미디 배우라는 분도 소화해야 했고,
보이지 않는 킹콩을 보면서 경외심과 공포심, 감정이 뒤범벅이 된 연기도 해야 했죠.

잭 블랙의 캐릭터야 이러쿵저러쿵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연출이 받쳐줄 수 있다고 해도,
실제 나오미 왓츠의 역은 모든 갈등의 원천이 되고
'유리가면'이 절대로 깨져서는 안되는 어려운 역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나오미 왓츠의 능력은
잭 블랙에 너무 가려서 평가가 아예 되지 않는 억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장 나오미 왓츠의 영화들을 하나씩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뭐, 그럭저럭 정리가 되었네요....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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