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흥행 돌풍을 예고했던 ‘태풍’(곽경택 감독)이 400만명의 관객을 겨우 돌파한 채 소멸되고 있다. 보통 영화라면 대박이지만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200억원)를 투입한 블록버스터이기에 기대에 미치지 못한 ‘참패’로 밖에 볼 수 없다.
‘태풍’은 개봉 3주가 지난 시점에서 평일 관객수가 3만명대로 뚝 떨어졌다. 아직 200개의 스크린을 유지하고 있어 관객수가 추가되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450만명 전후에서 막을 내릴 전망이다.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밝힌 손익분기점인 620만명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향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제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태풍’의 참패 원인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동 없이 대박 없다
이정재 장동건 이미연 등 주연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은 눈에 띄었다. 곽경택 감독의 스펙터클한 영상도 높은 점수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남는 진한 감동이나 여운이 없었다. ‘5%’가 부족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배우들의 열연과 화려한 영상을 뒷받침할 짜임새와 감동코드가 없었다. 멋진 배우, 멋진 화면에만 만족하기에는 한국 영화관객의 수준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장동건과 이미연의 만남 등 가슴 찡한 장면이 한두차례 있었지만 장기상영으로 이어져 대박으로 가기에는 감동적인 장면이 너무 적었다.
◇과대포장된 홍보·마케팅
개봉 첫날 28만명의 관객이 들자 ‘올해 한국영화중 개봉 첫날 최고 스코어’라는 보도자료가 날아들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관객이 들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첫주말이 지난 뒤에는 “한국 영화 최다관객 기록을 갖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첫주 기록을 깼다”고 흥분했다. 그런데 이런 보도자료들에는 허점이 있었다. 개봉일은 평일이었지만 중고생들의 방학 첫날이었다. 또 ‘태풍’은 ‘태극기~”보다 하루 이른 수요일에 개봉했다. 5일간의 관객과 4일간의 관객을 비교하고는 최고라고 과장을 한 것이다. ‘태풍’이 5일간 180만명을 모은 반면 ‘태극기~’는 5일간 200만명을 동원했다. 더구나 ‘태풍’의 스크린수는 ‘태극기~’보다 90개 많은 540개였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이런 과대포장된 홍보전략은 결국 관객의 심판을 받았다.
◇허술한 제작관리
제작사와 투자사는 촬영과 후반 작업의 전 과정을 꿰뚫고 있다. 완성품으로 개봉되기 훨씬 전부터 영화가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췄는지 판단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꼼꼼히 점검하고 보완해 대책을 세우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태풍’의 일부 관계자들은 개봉 직전까지도 ‘태극기~’를 들먹이면서 “무조건 1000만은 넘는다”고 말했다.
배우와 감독의 이름값과 규모의 힘만 믿고 안이하게 대처하고 오판한 것이 참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