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라고 다 일반화시켜 말할 순 없지만 악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인이고, 선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인이라는 확고한 이분법적 구조를 항상 전제하며, 그래서 세상을 항상 아군과 적군의 대결이란 개념으로 바라본다는 건 이제 미국적 이야기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으며, 미국 정치도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치나 이야기의 구조를 이런 식의 단순하고 폭력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하니 항상 폭력 자체는 정당화되며, 악인과의 경쟁 구조 또한 정당화된다.
말 가지고 경쟁하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선인은 결국 악인을 이기고 만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 구조, 항상 미래가 예견되는 경쟁에서의 승리 구조, 그리고 악인의 몰락 구조. 너무 뻔한데도 문제는 이런 영화가 대량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더 문제는 이런 영화의 단순한 구조가 세계 질서를 현실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경쟁이 인간의 절대적인 삶의 형식이며, 나 이외의 타자는 항상 경쟁자 내지 악인이라는 단순한 구조는 이제 식상을 넘어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국은 세계 질서를 이런식으로 구조화하고 있으니 그리고 내가 이 구조 속에 몸담고 있으니 미국 영화는 그것이 주는 짜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판과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 영화도 이제 이런 미국식의 세계질서와 영화질서에 편승하려는 듯이 보인다. "할리데이"에서 보면 최민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인이며, 주인공은 선인으로 나온다. 왜 이렇게 편가르고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이렇게 가르고 시작하면, 나중에는 우리에게 평화적 공존과 경쟁의 폐지의 가능성은 전혀 가능치 않은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