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의 엠파이어 잡지가 선정한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Best 20"에 한국영화 [올드보이]가 포함되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어차피 서구의 시선에서 선정한 베스트인 만큼, 주로 마블코믹스나 DC코믹스 등의 이름난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Best 20"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도 순위를 보고 있자면, [엑스맨]이나 [슈퍼맨] 등 "가장 만화적인 것을 가장 영화적으로" 풀어낸 영화들이 후한 점수를 받았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 [비트], [다세포 소녀], [타짜] 등 인상적인 영화화 사례가 있지만, 이웃 일본만 해도 사정이 나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워낙 만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수준 높은 원작을 영화화하는 것이 더 어렵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드라마 위주로 발전한 일본의 영상 기술이 실감나는 특수효과를 만드는 것에 취약하다는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특수효과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일본침몰]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데스노트]는 일단 기술력의 한계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원작의 파워가 워낙 대단한데다가, 원작이 문자 그대로 "가장 만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가장 만화적인 것을 가장 영화적으로" 풀어낼 기반은 탄탄하다. 다만 "게임"과도 같은 원작의 특성상 긴 호흡의 영화보다는 짧은 호흡의 시리즈가 연속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과연 원작을 어떻게 장편영화로 소화해낼 것인지의 우려는 존재한다.
괴수 영화 [가메라] 시리즈로 유명한 가네코 슈스케 감독은, 장편영화 [데스노트]를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플롯으로 이끌면서도 영화 고유의 낙관을 찍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방대한 분량을 압축해야 한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빠른 속도의 편집과 스타일로 극복하는 것은 기본, 원작과는 동떨어진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그저 원작의 다른 버전"에 그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특히 후지와라 타츠야를 주인공 라이토 역할로 캐스팅하고, 그가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으며 "나 홀로 전쟁"을 펼치도록 함으로써 지극히 영화적이었던 [배틀로얄 2: 레퀴엠]과 비슷한 느낌을 도출하려 한다.
그 결과, [데스노트]는 확실히 원작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름을 적어 사람을 죽이는 노트"의 설정, 노트를 손에 쥔 라이토와 그를 쫓는 탐정 L(마츠야마 켄이치)이 펼치는 천재들의 두뇌싸움, 사신 류크의 외모 등 주요한 모티프는 그대로 가지고 왔으나, 주인공의 정의감을 드높이고 대결의 이미지보다는 영화적 스타일에 좀 더 방점을 찍음으로써 보다 영화적인 매듭을 짓는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영화의 전체적인 드라마 구성은 충실하지 못하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아무래도 많은 에피소드를 생략하고 압축했기 때문에 사건의 개연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탓이다.
그 빈자리를, 가네코 슈스케 감독은 영화적 스타일로 메운다. CG 캐릭터인 사신 류크는 확실히 일본의 기술이 많이 발전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었고, 빠른 호흡의 매끄러운 영상은 무리 없이 흘러간다. 종종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후지와라 타츠야는 다소 경직된 느낌이고, 카시이 유우는 참담할 정도이다)가 눈에 밟히고, 개연성이 부족해진 드라마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지만, 기발한 발상과 흥미로운 설정이 유효하기 때문에 영화 속에 몰입할 여지는 충분하다.
[데스노트]의 마무리는 내년 개봉 예정인 후편으로 넘어가 있다. [데스노트]에서는 캐릭터와 상황설정을 안내해주고, 좀 더 꼬일 두뇌싸움을 미리 예고하는 것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따라서 [데스노트]가 과연 "가장 만화적인 것을 가장 영화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결론은 어쩔 수 없이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겠다. 비록 원작의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후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점에서, [데스노트]는 적어도 최소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