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엄청나게 허접한 주먹이 운다. 리뷰를 보시고 여러분들이 추천을 해주셨더군요 일단 두서없는 리뷰 좋게 평가해주신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올드보이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올드보이의 주인공인 오대수와 이우진을 내맘대로 분석해보았구요.. 영화가 주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를 내 마음대로~^^ 생각해서 리뷰를 작성합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예상이되네요;;; 그래도 읽어주실거죠?? -_ㅠ 구걸하겠습니다!) *리뷰내용에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내 이름이요,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해서 오.대.수라구요'
술 좋아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오.대.수. 본인의 이름풀이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고 이죽거리는 이 남자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어느 날,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존재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납치, 사설 감금방에 갇히게 되는데...
'그 때 그들이 십오년이라고 말해 줬다면 조금이라도 견디기 쉬었을까?'
언뜻 보면 싸구려 호텔방을 연상케 하는 감금방. 중국집 군만두만을 먹으며 8평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텔레비전 보는 게 전부.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무렵, 뉴스를 통해 나오는 아내의 살해소식. 게다가 아내의 살인범으로 자신이 지목되고 있음을 알게 된 오대수는 자살을 감행하지만 죽는 것조차 그에겐 용납 되지 않는다.
오대수는 복수를 위해 체력단련을 비롯, 자신을 가둘만한 사람들, 사건들을 모조리 기억 속에서 꺼내 악행의 자서전을 기록한다.
한편, 탈출을 위해 감금방 한쪽 구석을 쇠젓가락으로 파기도 하는데.. 감금 15년을 맞이하는 해, 마침내 사람 몸 하나 빠져나갈 만큼의 탈출구가 생겼을 때, 어이없게도 15년 전 납치됐던 바로 그 장소로 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누군지, 왜 가뒀는지 밝혀내면…내가 죽어줄께요.'
-위는 영화 시놉시스 중 발췌-
이 영화에서 우리가 말하는 오대수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는 단순히 복수만 일삼으려고 그렇게 고통은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중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보게 된다.
이우진은 과연 오대수에게 뭔가 기대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복수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오대수에게 바라는 것은 없지만, 복수는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이 이우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극비라던 반전은 중요한 것은 못 되었다.
아마 오대수의 어린 연인이 스크린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모두 눈치 챘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대수가 우리들 눈에는 빤히 보이는 이우진의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섬뜩하게 잘 그려냈다.
이우진의 복수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리는 오대수. 녹음된 신음소리 속에서 머리를 쥐어뜯는 그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우진의 복수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부서지는 오대수의 모습이 처절한 것일 뿐 이우진의 복수를 과연 복수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내가 보기에 그는 오대수가 누나를 죽인 진범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었다.
결국 비극을 막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것은 바로 자신. 자신이 가장 미웠던 이우진은 그저 그 분노를 폭발시킬 상대를 찾았고 그것은 운 나쁘게 오대수일 뿐이었던 것이다.
감독은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 작은 잘못이 큰 파장을 내어 상대방을 빈사지경으로 몰아넣게 만들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대수가 저지른 일은 그만큼의 잘못도 아니다. 차라리 오대수가 이우진과 누나 사이의 일을 전해 듣고 그런 것들은 다 죽어버려야 된다고 남의 일을 흔히 그렇게 얘기하듯 내뱉고 그 말에 그 누나가 자살을 결심했더라면 말이 될 것 같다.
남의 일에 함부로 그렇다, 아니다, 틀리다, 맞다 이러한 것을 단정하는 사람들. 말 못할 비밀로 마음이 멍든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말 때문에 상처받는다. 하지만 남의 일을 함부로 단정하는 말은 누구나 한다. 나 또한 그런 말을 수도 없이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대수는 단지 사실을 전한 것뿐이다. 누군가가 학교에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보았다. 그 장면을 들킨 사람은 그 장면을 연출한 자신을 탓해야지 보고 전한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의 그런 행각이 계속되는 한 누군가에 의해서 꼭 전해졌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우진조차 오대수를 진정으로 증오한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누나가 죽은 뒤 더욱 외로워진 이우진은 그저 자신과 똑같은 사람, 즉 동지를 만들어내고 싶어 했을 뿐.
그래서 이 영화는 복수극이 아닌 복수극인 것이다.
그가 정말로 미웠던 것은 바로 자신이고 오대수를 자신과 같이 비극적인 사랑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동지를 갖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이우진의 욕심은 오대수를 파멸시켰고, 정말로 복수의 여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오대수이다.
하지만 오대수는 이우진의 얼굴 한번 제대로 때리지 못한다.
나는 오대수의 입장이 되어서 차마 터지지 못한 엄청난 분노를 마음에 안았다. 이우진의 복수라 일컫는 가소로운 이유는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대수는 이우진을 맘껏 패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앞에서 빌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 장면은 정말 필요 없이 너무 길었다.
내 맘, 아니 오대수 마음속의 분노는 차마 터지지 못했고, 그 상태에서 이우진은 곱게 죽어버렸다.
진정한 복수의 주인공 오대수는 복수의 주먹 한방 날리지 못했고, 이우진의 사사로운 욕심만이 채워졌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게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하지만 이우진의 재력과 힘은 그의 운명을 이렇게 바꿔주었다.
"울어라. 오대수가 함께 울 것이다."
그 자신의 괴로운 사랑을 오대수에게 강요했던 것일 뿐 과연 그의 마음에 오대수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것일까?
이 분노가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나버린 영화. 이 것이 영화의 진정한 반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느끼기에 감독은 두 가지 축의 복수를 말하는 것 같다.
하나의 좌절된 복수와 이루어진 복수.(그것도 재력으로 이루어진 복수이기에 더욱 불쾌하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의 메시지는 돈의 힘일지도 모른다. 돈 없고 빽 없는 오대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비밀번호를 몰라 주저하고, 감금방 주인에게 복수한 뒤 바로 다시 복수 당한다. 하지만 돈 많은 이우진은 복수 같지도 않은 복수를 돈을 즉, 엄청난 재력을 들여 성공적으로 이뤄낸다.
돈 없는 자인 내가 영화를 보며 느낄 패배감, 이것 또한 감독이 계산한 거라면 이 영화는 정말 훌륭하다.
또 다른 하나영화는 입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웃으면 같이 웃지만 울면 자신 혼자만 울 거라는 반복되는 중얼거림과 오대수가 간단한 문장으로써만 대화를 이어가는 것으로서 보면 알겠지만 수많은 말로 인한 상처와 독을 그만큼 자제하라고 충고한다.
다른 하나는 복수의 허탈함 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복수는 그 업보가 다음 세대로 이양되지 않는다. (물론 다음 세대에게도 약간의 희생은 있지만 대체로 복수는 오대수와 이우진 사이에서 마무리 지어지며 그저 복수를 끝까지 행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고 봐야할 것 같다.) 또 단순히 운명이라느니 숙명이라느니 하는 비장미와도 무관한 복수가 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라든지 그것이 운명이라든지 하는 약한 근거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으로 하여금 15년 동안 이유도 모른 채 죽음과도 같은 감금 생활을 하게 만든 자에 대한 오대수의 복수와, 15년 동안 감금한 후 세상으로 내몰아 '나머지 복수'를 마무리 짓는 이우진의 복수는 말 그대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복수의 칼이 자신에게 향하고 복수로 인해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고 망가뜨리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행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복수는 결국 그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치명적인 복수'(결국은 자신을 파괴하는) 만큼이나 영화는 잔인하다.
하지만 그 잔인함은 자신을 해치는 복수에 기인하기에 더욱 슬프고 또 고독하다.
에필로그격의 마지막 부분, 최면술사의 도움으로 '몬스터'와 '오대수'라는, '기억을 가진 자아'와 '기억이 없는 자아'로 분리한 후 새 삶을 시작하려는 오대수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최면을 행할 때 행운을 빈다는 최면술사의 말이나, 기억을 가지고 한발 한발 걸어가 버렸다는 '몬스터'처럼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쓰러져 있는 것, 그리고 미도에게 안겨 결국은 울먹일 수밖에 없는 것 모두 아직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 같아 혀를 자름으로써 모든 복수를 마무리지으려했던 오대수의 노력이 이우진의 '복수'에 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복수는 복수를 꿈꾸었던 자들 모두를 파멸로 이끌었지만 복수 자체는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남아 가슴 아픈 앙금이 되어 영원히 씻기지 않게 된 것 같다. 이우진이 아무리 복수를 마무리 짓고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냐며 권총자살로 목숨을 끊었더라도 말이다.
복수는 그처럼 질기면서도 약한 생명력인 듯싶다. 아마도 영화는 그 착잡한 아이러니야말로 복수심의 근원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