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타짜

seconT 작성일 07.03.30 19: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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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영화에는 있는데 우리나라 영화에는 없는 것?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대표적인 것이 도박이란 것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하다못해 같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도 도박을 주제로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런 영화가 없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가적으로 이 도박이란 것을 불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몇년간 정선 카지노를 비롯해서 곳곳에 합법적인 도박장 개설이 가능해지면서 이런 영화가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화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온국민이 누구할 것 없이 즐겨보았고, 적어도 옆에서 구경 한번 안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소위 4천만의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예전엔 세명만 모이면 화투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최근엔 인터넷을 발달로 굳이 세명까지 모으는 수고가 없이도 얼마든지 화투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경우엔 당연히 법적으로 통제를 해야하지만 이 화투라는 것은 그러한 불건전한 면보다는 어느정도 친목도모의 형태로 애용되어 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저 또한 가족들을 만나면 가끔씩 즐기는 편이니까요. 전작인 [범죄의 재구성]이란 영화를 통해서 성공적인 감독 데뷰를 했던 최동훈 감독은 차기작인 이 영화 [타짜]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이런 장르영화에 얼마나 재주가 있는 인물인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마치 무대만 은행털이에서 화투판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두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들 및 그들간의 애증과 복수, 음모와 배신 등이 어우러진, 꽤나 비슷한 느낌의 괜찮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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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꺼어든 화투판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고니.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그 중심인 박무석 일행을 뒤쫓다가 전설적인 타짜 평경장을 만나게 됩니다. 잃은 돈의 다섯배만 벌면 그만 두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에게 화투기술을 배우게 되는 고니. 평경장과 지방원정중 도박판의 꽃이라 불리는 정마담을 만나게 되며 이에 고니는 그녀와의 화려한 도박인생을 선택합니다. 평경장과 헤어지는 날 기차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타짜계의 독종중에 독종 아귀. 경찰의 급습으로 어쩔 수 없이 정마담과 헤어지게 된 고니는 그와 호흡이 잘 맞는 고광렬과 함께 또 다시 전국을 순회합니다.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주인인 화란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고니. 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고니가 화투판에 몸담게 만들었던 박무석과 그를 조종하는 곽철용 일행은 만나게 되며 고니와 고광렬은 멋지게 복수를 가합니다. 하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곽철용 수하들의 부탁으로 전부터 고니를 벼르고 있던 아귀는 고니와 애증의 관계에 있던 정마담을 이용해 고광렬을 화투판에 끌어들이며, 그것을 미끼로 고니마저 화투판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직감적으로 그 판이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하는 죽음의 판임을 느끼는 고니.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습니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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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범죄의 재구성]과 전체적인 흐름이 무척이나 비슷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자유자재로 오버랩되는 형식에 다양한 인물들의 여러 이야기가 등장함에도 스피디한 구성으로 인해 좀처럼 지루하거나 늘어지는 인상은 전혀 느끼질 못합니다. 게다가 [범죄의 재구성]에 비해서 늘어난 액션장면이라든가, 다소 애로틱한 장면들도 심심치않게 등장해 어느정도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 [타짜]를 이끌어가는 힘은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의 개성있는 연기인데요. 워낙에 유명했던 원작만화를 영화화했던 이유로 제작당시부터 수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캐스팅에 관한 찬반여론이 뜨거웠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우선 주인공인 고니역의 조승우는 약간은 단순과격형의 캐릭터로 평소 조승우의 이미지와는 약간 매치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약간은 거만하면서도 복수에 불타는 냉철한 모습을 인상깊에 보여줍니다. 과거 [하류인생]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을 기억하신다면 그렇게 무리한 캐스팅이라고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라톤]과 [도마뱀]에서의 착한 모습만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하류인생]에서의 과격한 모습이나 [H]에서의 싸이코틱한 모습을 기억하신다면 선과 악, 사랑과 애증, 분노와 복수 등 영화속 그의 말대로 "파도"가 많았던 캐릭터를 무난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생각보다 비중이 크진 않지만 평경장역으로 등장했던 백윤식은 예의 굵고 짧은 강렬한 이미지와 적당하게 가미되는 썰렁한 유머, 게다가 카리스마가 절로 느껴지는 비장함 등을 선사합니다. 그외에도 고광렬역을 맡았던 유해진이나 아귀역의 김윤석 등도 꽤나 멋진 연기를 선사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아귀역을 맡은 김윤석은 탄성이 절로 나올만큼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잔인함과 소름이 돋게끔 하는 강력한 포스를 자랑합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도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수확이라면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긴 했지만 이 영화만큼 강한 어필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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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대나온 여자야"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라면 정마담역을 맡았던 김혜수의 변신인데요. 어느 기사에서도 봤지만 그녀만큼 오랜동안 주연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배우활동을 했음에도 히트작이나 상복이 없던 배우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기력으론 많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배우입니다. 그랬던 것이 재작년인가 [분홍신]이란 영화로 모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더니 이 영화 [타짜]를 통해서 드디어 배우 김혜수가 연기파배우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김혜수하면 그동안 섹시한 이미지로 꽤나 어필했던 배우임에도 그녀가 출연해온 영화들을 보면 그녀의 평소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역할을 주로 맡아왔습니다. 어찌보면 이 영화 [타짜]에서의 정마담역은 그녀가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물을 만난 배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내내 도도하면서도 고혹적이고 냉정하면서도 은근히 마음약한 모습도 보이는, 다소 이중성을 내포한 매력녀로 등장합니다. 이들 외에도 곽철용 역의 김응수나 박무석역의 김상호, 잠깐 등장하지만 짝귀역의 주진모와 화란역의 이수경, 세란역의 김정난 등도 주연들 못지않은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에 힘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각의 개성에 충실하며 두시간의 넘는 런닝타임이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숨막힐 듯 거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처럼 긴박하게 흘러갑니다. 단순히 꽃들의 화려한 싸움만을 그리는 것이 아닌 그 뒤에 숨겨진 음모와 배신 등도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으며 마치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도박판의 두 얼굴을 때론 비정하면서도, 때론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이 영화 [타짜]의 다양한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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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거 인생 뭐 있어? 어차피 인생 한방이야하면서 도박판으로 몰리는 사람들. 한번 돈 맛을 보면 그 맛을 절대로 잊을 수 없듯이 한두번 재미로 시작한 도박이 어느새 자신의 직업이 되어버리고 온갖 고난속에서 최고의 타짜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어느새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는 빈털털이 인생이 되어버리는 그곳. 온갖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배신과 살인까지도 서슴없이 치뤄지는 잔혹한 세계. 과연 고니는 그 세계에서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좋게 말해서 인생의 축소판이지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 세계속에서 맛보는 행복 또한 구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실력이란 것도 상대가 눈치를 못채게끔 하는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 남을 속여야 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하는 세계. 평경장의 가르침대로 야수성과 눈보다 빠른 손놀림을 자랑하는 실력을 보유하게 된 고니에게 이 세계는 마치 자신의 천직인양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유한 부와 사랑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평경장이 가르쳐준 나머지 교훈들, 이 세상에 안전한 도박판은 없으며, 누구도 믿지 말 것이며, 이 바닥에선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 고니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속에 자신이 빠져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어느곳도 안전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고립감. 그리고 덧없는 희망. 구라로 성취한 거짓된 만족. 그가 성공의 가도를 달릴수록 그의 주위 인물들은 모두 다치거나 죽게되고, 그 자신 또한 성공의 길을 걸을 수록 알 수 없는 복수와 원한의 칼날이 자신을 겨누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구라의 세계.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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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일전에 이 [타짜]라는 만화를 한참 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만화의 매니아분들만큼 전편을 모두 본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띄엄띄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볼때마다 이 만화 무척 재미있네하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알기로도 이 영화의 원작이 무척이나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원작의 재미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더군요. 어차피 그런 분들의 비난을 어느정도 감수해야할 운명을 띄고 제작된 영화이니 비난하는 분들의 의견도 어느정도 수렴이 되야한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어느 감독도 방대한 원작(이 영화는 총 4부작 중 1부를 영화화 함)은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라면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스크린속으로 투영할 수 있는 감독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원작을 모두 잃어보지 못한 관계로 영화속 캐릭터들에 대해서 원작과 일일이 비교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만화가 만화로서의 재미가 있다면 영화는 또 영화로서의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로 표현못하는 부분을 만화는 가능하며, 만화에서 느낄 수 없는 부분이 영화에서는 가능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단순히 원작은 이랬는데 영화는 왜 이래하는 식으로 비판만 하지 마시고 영화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비판을 하는게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 [타짜]가 모든 관객들에게 만족스러운 영화는 될 수 없습니다. 저또한 대체적으로 만족스럽긴 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영화가 갑자기 무력해지는 느낌이랄까, 영화내내 개성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캐릭터들이 갑자기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구라의 세계이지만 "혼"이 담긴 구라를 열망했던 그들. 결국엔 상처만이 남아버리는,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허탈한 인생이지만 최고의 경지를 향한 그들의 치열한 머리싸움은 시종일관 잠시도 긴장감을 늦추게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치열한 인생속으로 인도하고 있을까. 비록 구라가 난무하는 구라같은 인생이지만, 적어도 패를 받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정도로 절체절명인 순간만큼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고 치열합니다. 비록 결국엔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할지라도, 돌아보면 후회막급한 인생이었다고 허탈해할지라도, 이 비열한 세계의 최후의 승자가 되는 짜릿한 순간, 짜릿한 손맛만은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단순히 도박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의 인생에 승부를 거는 승부사로서의 강한 집념과 혼이 담겨지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점 때문에 도박이라는 것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비록 그들의 삶이 일반인들이 보기엔 허황된 인생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에겐 자신의 모든 것이 걸린 치열한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음모와 배신, 사랑과 증오, 그리고 생사가 걸린 그들의 거칠고도 냉혹한 승부의 세계. [타짜]입니다.  

 

E7723-25.jpg[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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