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지막으로 일본만화책을 본 기억이 아마도 학생시절 보았던 [슬램덩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 연유로 최근에 공개되고 있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솔직히 그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을 적는다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들의 공통된 운명과도 같은 원작과의 비교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데스 노트] 또한 무척이나 일본에서도 유명했고 국내에도 이 만화의 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 또한 방대한 원작을 영화화한 관계로 상당수 축약되었지만 그래도 단 한편이 아닌, 두편의 영화로 나누어 나름대로 원작에 충실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 영화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 영화의 원작만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는 쪽이 더욱 적당할 것입니다. 과거엔 이런 만화도 무척이나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먹고 사는게 우선시되고 나이가 들면서 만화를 보는데 시간을 투자하는게 아깝다는 느낌에 멀리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따라서 국내 네티즌들의 열띤 찬반논쟁도 솔직히 저에겐 관심밖이었습니다. 원작보다 형편없다느니, 그럭저럭 영화로서 괜찮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처럼 흘려들었습니다. 뭐,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특히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뻔하지 않겠나하는 편견도 자리잡고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된 이 영화,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더군요. DVD로 새벽에 감상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1편과 2편을 정신없이 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덕분에 날밤을 꼴딱 세우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 시간엔 원작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영화 자체만 놓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누구나 상상해 보았을 스토리"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이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편한 구석도 많지만, 그 반대로 정말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까지 마지못해 접해야하는 불편함도 솔직히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괴로운 것은 엄연히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법은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하는 의구심이 들 때입니다. 이 영화 [데스 노트]의 가장 큰 줄기는 이렇게,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엄연히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악에 분개하고 슬퍼했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얼마든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장래 법관이 되어 사회정의 실현은 꿈꾸는 천재 대학생 라이토. 하지만 그가 매일매일 마주쳐야 하는 현실은 그렇질 못합니다. 당연히 법의 잣대를 적용한다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들이 버젓하게 활개치고 다니는 모습에 라이토는 분노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법학공부에 염증을 느끼게 되는데, 어느날 우연히 그에게 노트 한 권이 주어집니다.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 그냥 재미삼아서 노트에 이름을 적어넣은 라이토. 하지만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실제로 노트에 이름이 적힌 용의자가 원인불명의 심장마비로 죽고 만 것입니다. 현대판 살생부라 할 수 있는 이 비밀의 노트의 위력을 실감한 라이토. 그래, 법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면 내가 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처단하리라.
"두 천재의 치열한 머리싸움"
사람들에게 "키라"라는 닉네임까지 생길 정도로 열심히 사회악들을 처단해 나가는 라이토. 분명 그가 행하는 일들은 본인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만 반대세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당연히 사법당국의 조사가 시작되며, 세계적인 미해결 사건들을 해결해 온 명탐정 L이 이 정체불명의 사건해결에 투입이 됩니다. 아무리 라이토가 좋은 의미로 범법자들을 처단한다고 해도 이 또한 엄연한 살상이고 사회정의를 핑계로 자행되는 숙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흥미거리는 이렇게 사회정의를 위해서 범법자들을 처단해가는 라이토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용의자를 추적해나가는 L이라는 인물의 치열한 두뇌싸움에 있습니다. 어딘지 오타쿠냄새가 강렬하고, 왠지 모자라 보이는 첫인상이지만 천재적인 두뇌와 동물적인 후각을 자랑하는 L. 그는 경찰들도 거의 손도 쓰질 못하고 있는 이 사건을 아주 작은 미세한 단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용의자를 좁혀갑니다. 법이 해결못하는 일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서 고심하는 라이토와 그를 잡음으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L. 단, 목적은 비슷하지만 L로서는 천재로서의 자존심에 더욱 신경을 쓰는 눈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정의보다는 역사상 최고의 살인마를 잡는다는데 더 희열을 느끼는 듯한 느낌말이죠. 어떠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되는 라이토도 점차 원래의 의도와 벗어난 목적으로 데스 노트를 이용하게 됩니다. 자신의 신변을 위협하는 사람들까지도 살생부에 이름을 적어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도대체 이름도, 얼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제 2의 키라, 더욱 복잡해지는 스토리"
이러한 과정속에서 두 주인공은 원래의 취지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자존심 대결로 발전하게 됩니다. 자신을 잡으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의 정체를 알기위해 수사본부에 자원하는 라이토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면서도 라이토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흔쾌히 그를 맞이하는 L. 드디어 본격적인 두 사람의 두뇌싸움이 시작이 되는데, 영화는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데스 노트가 발견되며 라이토에 의한 살인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살인극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데스 노트의 주인은 바로 미사. 제 2의 키라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에 라이토와 L은 당황하게 됩니다. 정말 또 다른 키라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미사라는 인물은 과거 라이토에게 빚을 지고 있었으니, 흉악범에 의해 돌아가신 부모님의 원수를 라이토가 갚아주었던 것.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수명을 반으로 단축해가면서 "사신의 눈"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라이토가 상대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야만 데스 노트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미사는 상대방의 얼굴만 봐도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던 것. 그러한 미사가 라이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를 돕겠다고 나서니 라이토는 L을 처치하는게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하지만 L이 누구인가. L을 처치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라이토와 미사만큼 L 또한,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만화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 다소 황당스러운 스토리이긴 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긴박하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이 됩니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천재로 일컬어지는 두 주인공의 한치 양보없는 머리싸움이며 그 대결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정신없이 이어집니다. 두편으로 나누어져 개봉되었던 이 영화의 전편은 다소 싱거운 듯한 인상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데스 노트를 손에 쥔 라이토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범죄자들을 처단해나가며, 그의 정체를 캐기 위해서 이리저리 궁리를 하지만 좀처럼 물증을 잡지 못하는 L의 모습 등을 통해서 약간은 일방적이다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라이토의 활약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차츰차츰 라이토의 정체에 접근해나가는 L의 모습 또한 무척 인상적입니다. 마치 한가지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약간은 병적이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괴한 모습과 행동의 L은 깔끔하고 잘생긴 라이토의 모습과 대비됩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고, 상대를 죽이려 하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상황. 그리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처철한 자존심 대결. 범죄자들만 죽인다는 원래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처단해나가는 라이토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라이토를 잡으려는 L의 대결은 약간은 단순한 듯 하지만 영화속 이야기, 주인공들의 긴박감 넘치는 머리싸움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러했던 이야기는 2편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키라를 등장시켜 더욱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그 제 2의 키라덕에 L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라이토와 두명의 키라가 모종의 연관이 있음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캐치해내는 L. 1편에서 보여주었던 머리싸움은 그저 워밍업수준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듯 2편의 이야기는 더욱 세밀하고 다양하며, 머리아프게 진행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데스 노트에 적혀있는 여러 원칙들이 위치하며, 그 원칙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라이토와 L의 상상을 초월하는 두뇌싸움, 그리고 꽤나 괜찮았던 반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다른 사건이 없더라도 단지 두 사람의 칼만 들지 않았지, 언제라도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힐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예의 주시해가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켜 나가는 것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흥미위주로만 이끌어가는 영화가 아닙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이 사회에 엄연히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때론 그것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짐에 분개한 주인공이 데스 노트를 이용해 사회악을 처단해가는 과정은 분명 통쾌한 부분이긴 하지만 무조건 지지할 수는 없는 모습입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그래도 사회정의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땀의 대가가 법이라고 했던 라이토의 아버지의 대사처럼, 분명 인간들이 하는 것은 절대 완벽이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완벽한 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들의 사회는 어차피 이성과 감정에 휘말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이고, 인간들이 사는 세상인것을.
라이토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 또한 아무리 사회정의를 외친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인간이며 자신의 감정적인 면에 치우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순수한 의도로 시작되었던 살인이 점차 자신의 개인의 목적으로 이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영화는 두 천재가 벌이는 두뇌대결로, 다소 흥미위주로 진행이 되지만 내면에 숨어있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넌센스입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인정받고 존경의 자리에 있는 분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범죄자들을 심판한다고 하지만 그들 또한 어찌보면 아주 약하디 약한 인간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항상 무언가 부족해보이고 어딘지 어긋나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류크(라이토의 사신)가 던지는 마지막 대사처럼, 결국에 남는 건 "無"입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좋은 의도로 그랬건, 나쁜 의도로 그랬건 간에 남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인간들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어김없이 오늘도 아웅다웅 거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죽음의 사신마저도 "어쩌면 인간들은 이리도 잔인한가"했던 말처럼 정의라는 명분속에 잔인함을 내포하고 있는 인간들의 본모습. 과연, 이 사회의 진정한 정의는 구현될 수 있을까. 오죽하면 죽음의 사신까지 등장시켜서 사회정의를 실현해 보고자 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시종일관 우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라이토의 아버지(수사본부장)의 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너무나도 고칠 것 많은 사회지만, 그나마 이 혼란스러운 사회를 지탱해주는 것은 원칙과 굽히지 않는 소신이라고 말입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점차 완전한 정의사회를 구현해 나간다면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까요. 어차피 우리들 사는 세상이 현실은 바로 코앞인데 이상은 저 멀리 있는 듯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원칙과 소신마저 멀리한다면 모두가 소망하는 정의사회라는 것은 정말 뜬구름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비록 이 영화의 원작을 즐겨보았던 팬들에겐 어찌보면 당연히 욕을 많이 먹은 영화지만 적어도 원작을 보지않고 영화만 보신 분들에겐 꽤나 흥미진진한 재미를 선사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 또한 날밤을 꼴딱 세우는 희생을 치렀지만 보고나서 후회스럽지 않은, 꽤나 영화에 몰입하면서 보았던 영화입니다. 물론 간간히 약간은 억지스럽고 엉성한 구석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꽤나 괜찮았던 영화입니다.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두 천재가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이 정말이지 볼만했던, 시종일관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처럼 속고 속이는 반전의 짜릿함과 함께 은근히 여러가지 다양한 생각을 하게 했던 영화. [데스 노트]와 [데스 노트-라스트 네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