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안정된 원작의 힘을 빌리면서 영화를 만들다 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얽매인다는 것이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한 잡지에서 이런 영화들의 문제점들 때문에 일본 영화가 양적으로는 성장 했을지는 모르지만 질적으로는 아직도 문제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영화적인 상상력의 구원에 대한 아쉬운 소리를 내뱉었다. 그가 말했듯이 원작의 안정된 스토리를 가지고 가면서 영화를 만들면 어느 정도의 성공은 보장되지만 영화적인 그 성향이 줄어든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이 세상의 진리는 영화라는 영역에서도 쓰이게 마련인가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1408’은 이야기적 상상력이 최고인 스릴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공식. 스티븐 킹이 만든 소설을 영화화하면 망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많은 소설들은 영화화 했는데, ‘쇼생크 탈출’, ‘미저리’, ‘샤이닝’ 등등 그의 천재적인 이야기에 많은 독자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긴 영화는 안 볼 래야 안볼 수가 없다.
호러 작가 마이클은 들어가면 한 시간 안에 죽는다는 돌핀 호텔의 1408호실을 들어가려 하고 매니저는 그가 못 들어가지 막지만 마이클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아등바등하는 그 때까지는 지루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일단 14층에 올라가면서 점점 조여 오는 압박감은 말로 설명하지 못하게 우리를 찾아오고, 1시간이라는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마이클의 숨겨진 자아의 공포인 죽은 딸까지 나오게 된다. 짧은 단편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에 영화적인 것들을 첨가했지만 그가 추구하는 밀폐된 공간, 정해진 시간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는 또 다른 자아의 공격 등은 계속해서 보여 진다. 역시 이런 삼각구도가 뭉쳐진 그의 이야기는 지루함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책을 잡기만 하면 밤을 새워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야기가 주는 매력도 있지만 마이클을 연기한 존 쿠삭의 연기는 좋다. 이 영화와 그 성격을 같이 하는 ‘아이덴티티’라는 영화에서 또한 주연을 맡았는데, 그의 포커페이스에서 나오는 연기는 미스터리적인 뭔가를 던진다. 잘 알 수 없는 그의 그늘진 얼굴과 어느 정도의 어눌한 말투는 조금은 어두운색이 나는 영화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마지막 1408에서 탈출한 그가 지옥 같은 그곳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딸과의 조우된 목소리와 마주할 때 미소도 아닌 슬픔도 아닌 그 모호한 얼굴을 보여준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그만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그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장점에도 원작의 힘을 100% 발휘하기란 어렵다. 영화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은 매번 반복되는데, 그러므로 위에서도 말한 영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1408’은 그것이 결부된 채 문제점을 야기 시키는데, 그것은 영화적 성격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잘 짜인 이야기와 좋은 연기가 리듬감을 주지만 호러인지, 스릴러인지, 드라마인지 영화를 보고도 잘 알 수 없다. 또한 돌핀 호텔의 매니저인 샤무 L. 젝슨은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가 신인지 천사인지 아니면 악마인지 그가 왜 마이클 앞에 나타났는지, 그것 또한 모호하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잘 이해 안가는 관객들은 조금은 지루했을 것이다.
그래도 원작의 장점을 잘 차용한 영화라서 그 반전의 처리도 좋았고, 이야기의 접합상태가 좋았던 ‘1408.’ 좋은 원작의 힘은 대단하다. 그러나 영화적 상상력이 빠져 있다면 언제나 원작의 그늘아래서 살아야 하는 족쇄가 채워진다. 원작을 기초로 하는 영화들. 그 열쇠 없는 족쇄에 채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