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연출력을 자랑하는 역작 - shogun"s sadism
무슨 영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검색을 때려보는 영화들이라는게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영화인지라 그 날도 흘러 흘러 어느 사이트엔가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film2.0의 김지환이라는 사람의 글이었다. "김지환의 금지된 dvd" 라는 칼럼이었는데, 리스팅된 작품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오호라, 꽤나 극단적인 영화들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첫번째로 리스팅된 dvd 가 소니 치바의 dvd 박스셋이었다. 20불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무려 10편의 영화가 들어있는 허접이었는데,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소니 치바를 언급한다는 것에 플러스 10점을 주기로 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호러 영화계를 한참 떠나있어서 그런 것인지, 내가 모르는 영화들도 꽤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은 pdbox 라는 공유사이트에서 방학을 즐겁게 해줄 호러 영화를 찾다가 "김지환의 금지된dvd" 에 올라와 있던 영화를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영화들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놀랍기도 하고, 어린 친구들이 그런 영화를 보고 어떤 악영향을 받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그 리스트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것을 차례로 다운받기 시작하였다.
김지환의 금지된 dvd
http://movie2.n*er.com/forbiddendvd/default.asp (현재 링크 깨졌음.)
그래서 제일 먼저 받은 영화가 지금부터 얘기할 "shogun"s sadism" 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b급 영화의 이미지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무조건 well-done 이어야 하고 소위 art film 의 이미지는 기본이며 제3세계에서 만들어서 뭔가 이국적인 신비감을 풍겨야 한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어느샌가 b급 영화에 심취해 있다니. 아마도, "예술성 좀 있다"고 하는 필름은 나오는 수가 적어서 내가 영화를 보는 수요에 대한 물량 공급을 못 따라갔기에 이리 저리 방황하다가 결국은 b급 영화로 간 것이리라. 아니면, 수많은 영화광들이 b급 영화에 미쳐있는 것처럼 나도 결국에 와서는 사소한 하나의 매력만으로 관객을 기쁘게 해주는 b급의 심오한 세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인가?
고등학교때 이미 world famous 한 "네크로맨틱2"을 구해서 소중한 컬렉션으로 가지고 있었던만큼, 왠간한 고어 무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나이지만 최근 들어서 일본 영화의 그 쓰레기같은 적나라함은 나를 몇 번인가 놀라게 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이치, 더 킬러" 나 "기니아 피그" 같은 녀석들이다. 특히 기니아 피그 같은 경우는 영화의 화질이 아닌 비디오 캠의 화질인데다 내용도 없고 개연성도 없고 단지 인간을 괴롭히고 자르고 찢고 하는 행동의 반복인지라 제작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내심 놀란 바 있다. 뭐, 헐리웃 배우인 찰리 신이 이 영화를 보고 스너프 필름이라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하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짐작이 가리라. 어쨌거나, 나 스스로 그런 영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단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데다가 영화의 제작 년도가 1976년이니, 사실 그다지 나를 놀래킬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 "심하다" 싶은 호러 영화, 예를 들어 루치오 풀치의 "좀비"와 같은, 를 비싸게 주고 사와서 무지하게 기대하면 플레이어에 걸어보곤 그 조악함과 올드 패션드함에 실망을 금치 못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영화, shogun"s sadism 은 그 시작부터 시종일관 뿜어내는 끊임없는 고문과 살인, 레이프 등으로 여지껏 쌓아온 나의 컬렉션에 또 하나의 획을 긋게 되었다.
우선,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자.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군주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창녀와 빈털털이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에피소드간의 상호 연관성은 전혀 없다. 두 에피소드 모두 권선징악과는 거리가 먼 참담한 결론을 맺고 있다. 악덕 군주에게 고문 당하고, 사형을 당하는 기독교인들. 그리고 그의 부하였으나 기독교인 애인을 둔 이유로 사무라이 직을 박탈당한 무사. 결국은 애인과 함께 처참하게 죽고 만다. 그리고 군주는 기독교인을 효과적으로(?) 탄압했기 때문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 잘 나갔다나 뭐라나? 두번째 에피소드는 빈털털이임에도 술집에서 하루밤을 즐기고 그 댓가로 일을 해 주던중, 눈 맞은 게이샤와 도망간 남자의 이야기. 도망가던 남녀는 결국 붙잡히고, 여자는 다시 게이샤로 돌아가고 남자는 지나가던 정신병자의 톱에 썰려서 목이 달아난다. 전체의 텍스트에서 굳이 어떤 작가 정신을 찾아 본다고 한다면, "세상 참 x같다. 더러운 세상" 정도가 될것 같다. 그리고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따져보자면, 한마디로 개쓰레기다. 차라리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 레이프 당한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을 조리있게 표현한 영화가 되겠다.
영화는 초반부에서 일본의 사형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함으로서 말문을 연다. 남편 살해 혐의로 끓는 물에 넣어서 사형당하는 여자를 보여주고, 그 밖의 몇 가지 사형 방법을 소개해 준다. 사실, 영화의 본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야말로 intro 에 불과한 것인데 어차피 별 내용이 없는 영화이긴 하지만, 이런 연관성 없는 내용을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제대로 된 영화이기는 포기했다는 선전 포고 쯤으로 보면 되겠다. 그 이후로 인물 소개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부터는 정말 다양한 고문 방법이 나온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인물은 3명이다. 실질적인 주인공인 쇼군, 그리고 얼굴마담용으로 내세우는 주인공인 사무라이와 그의 기독교도 애인이다. 아마도 이 사무라이와 애인의 쇼군에 대한 저항을 표면적인 줄거리로 내세우고 싶었던 모양인데,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처음에 둘이 만날 때부터 참 어이가 없다. 시냇가에서 씼던 사무라이가 엄하게 머리위 나뭇 가지에서 떨어진 뱀에게 물리고, 뱀에게 물리는 광경을 보 지도 못했던 여자가 멀리서부터 달려와 상처를 베어서 독을 빼준다. 거참, 이쯤되면 기독교도가 아니라 거의 초능력자에 가깝다. 그리고 주변 인물로 여자의 어린 동생이 있다. 고문으로 눈을 못 보게 되어 거리에 버려진다. 화형을 당하는 여자의 부모가 동생을 찾아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하고 죽는다. 이 정도의 복선이면, 뭔가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인물인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동생의 역할은 후반부에 가서 사무라이와 여자가 잡혀서 끌려갈 때 행렬을 방해해서 폭행당하는 것이 전부이다. 1분도 안 되는 장면으로 그녀의 역할은 끝난다. 감독은 결과보다 복선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이다. 겉에서 볼 때는 다른 것보다 크고 탐스러워 보이지만, 까 놓고 보면 쭉쩡이인 밤송이에 다름없다. 영화 전반에 걸쳐 없으니만 못한 부분이다. 굳이 합리화 시켜보자면, 기독교 탄압에는 어린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후반부에 가면 쇼군에게 사무라이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난 남자 주인공이 멋지게 여자를 탈출시켜서 도망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정말 몇초 못 가서 황당하게 잡히고 만다. 칼 들고 조금 저항은 해 보이지만, 감독에게는 약한자에게 주는 동정 혹은 연민은 없다. 1년이나 있다가 등장한 사무라이가 칼싸움은 어찌나 그렇게 못하는지, 허공에 칼 몇 번 휘두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창에 찔려서 죽고 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 장면에서 같이 반항 좀 해준 여자가 드디어 사형을 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는것 자체가 고통이었으니 이제 그 고통에서 벋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능지처참이라는 사형 방법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은 얼굴마담 주인공들은 다 죽고, 에피소드는 막을 내린다. 아니, 나와서 다 죽을 것을 뭐하러 등장시켰는지. 갖은 고초 다 겪다가 나중에 어디론가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지도 못하고 능지처참 당해버린 주인공들이 안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악덕 쇼군은 나중에 공로를 인정받아서 승진까지 한단다. 절대악의 승리다.
두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무일푼의 떠돌이와 아무 생각없는 순진한 창녀가 주인공이다. sadism 의 강도는 첫번째보다 덜하다. 가끔은 웃기는 장면도 나온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기분이 엿같아진 관객을 배려한 감독의 선물인 듯 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임신을 한 창녀를 혹사시키는것부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뭐, 중간의 내용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 괴롭히고 죽이는 것은 첫번째 에피소드와 별반 다른 점이 없으므로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떠돌이는 여주인공을 레이프하던 거렁뱅이들을 홧김에 죽이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관가에 잡혀서 사형을 당하게 된다. 거 참, 불쌍하기 서울역에 그지 없다. 여기서는 굉장히 오피셜한 고문 방법이 나온다. 기존의 고문 방법에 싫증을 느낀 첫번째 에피소드의 쇼군과는 달리, 이번에는 형사들이기 때문에 살인을 자백시키기 위해서 검증된 방법으로만 고문을 하는 것이다. 물고문이나 태형 등이 나오는데, 불쌍한 우리의 주인공들이 너무 당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어쨌거나 스토리 전개상 주인공들은 죽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두명이 같이 거리에 칼을 쓰고 앉아있게 된다. 옆에는 톱이 놓여 있는데, 누구든 그 톱으로 목을 자를 수 있으나 형식적인 것이라고 나레이터의 설명이 나온다. 당연하겠지.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사람 밉다고 톱으로 멀쩡한 사람 목을 잘라 죽이겠는가 싶었다. 하지만, 매정하기도 한 우리의 나레이터. 덧붙여서 사흘동안 칼을 쓰고 있다가 나중에 꼬챙이에 꿰어 죽인단다.
영화 전반적으로 재미도 없고 위트도 없지만,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독특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떠돌이는 톱에 당하고 만다. 밤길을 지나가던 광인이 톱을 보고는 눈이 돌아가서, 성능을 시험해 본 것이다. 그 톱은 앞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형식적인 것이라 날도 안 서 있는데 말이다. 그러곤 마지막 장면은 떨어진 목으로 광인이 장난을 치며 끝난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한 여주인공에게 잘 살라는 떠돌이의 나레이션과 함께. 들지도 않는 톱으로 목을 써는 장면이며, 굉장히 멀쩡한 표정으로 잘려있는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왠지 달관한 듯한 마지막 나레이션도. 이쯤 보여줬으니, 이제 니들도 익숙해지지 않았냐는 감독의 의도인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참 어이없던 것은, 이런 영화를 흥행하겠다고 만든 것도 아닐테고 그렇다고 뭔가 작품성이나 고발성을 가진 문제작도 아닌, 한마디로 개쓰레기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ichi, the killer" 의 경우 영화 자체는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져 있다. 피와 살이 낭자하긴 하지만 마치 만화 주인공처럼 악당을 처치하는 ichi 가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리고 영화의 짜임새도 평균 이상의 작품은 된다. 혹은 "guinea pig" 처럼 아예 막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스토리도 없고 개연성도 없고, 그냥 파괴본능만 충족시키는 영화로 만드는게 차라리 솔직하다. 쓰잘데기 없는 어설픈 스토리를 내세운 감독의 얄팍한 의도는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복선이나 인과 관계의 표현은 너무나 서툴러서, 마치 초등학생의 장난을 보는 것 같다. 물론 1970년대 작품이라는 점에 있어서 조금 선처를 베풀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일본 영화의 포맷이라는게 70년대라고 해서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 없다. 이미 70년대에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표현할 엄두도 못내는 잔혹함을 표현했고, 퍼르노그래피티와 특수효과물도 최고봉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영화, "shogun"s sadism" 은 한 오라기 만큼의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그 표현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가타부타 말이 많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못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어디 대회 나가서 상이라도 타오고 그러지 않은가? 그 사람 영화를 보면 기분이 찝찝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감독의 사상이 그런것이고 그걸 잘 표현해서 고발성을 가지면 나름대로 성공한 것이라 본다. 물론 shogun"s sadism 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 잔혹성과 개념 없음에 있어 거의 최고봉이고, 나같이 b급영화를 좋아하고 호러물이나 스플레터물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기념비적인 영화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3류 에로영화 수준의 연출력과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는 정말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이에, 올해 내가 본 최고의 개쓰레기 영화로 임명한다. 땅~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