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영화잡지에서 많이 떠들길래......애니리뷰게시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다 끄적여볼께요......
문제있으면 애니로 옮기지요 머.....
이걸 극장에서 보고나서 다이어리에 쓴 걸 그대로 옮겨봅니다.
----에반게리온 서에 대한 후감....
나는 TV판 에바가 싫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괜히 있는 척 하는게 싫었다. 해답이 없는 선문답 같은 대사들이 쏟아지는 후반
부는 짜증이 솟아났을 뿐더러, 삶의 형태가 그렇다고 강변하는 것 같아 우습기까지 했다. 형태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 삶이란
게 획일적인 레일의 위라는 걸 깨닫고 나면, 그런 껍데기들은 위선 혹은 허위의식으로 비춰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인간성에 호소해도 국가 단위의 복수극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손을 내저어도 돈의 힘을 거부할 수는 없다. 아랫
도리는 또 어때? 이를테면 세상은, 에바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그런 피상의 차원보다 훨씬 단순했던 거다.
그렇게 안노 히데아키는 -영혼의 지방질-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사람들은 뼈대 없는 기호들의 나열 속을 허우적 거렸다. 그리
고 역설적이게도, 에바는 그 댓가로 모든 것을 석권했다.
완구로 만들어지고 싶지 않았다는 에바의 모든 기체시리즈들은 완구로 제작되었고, 역사상 이렇게 무표정한 이가 있을까 싶
은 히로인 레이는 이후와 이전의 애니가 점해본 적이 없는 독보적인 인기의 위치에 올라섰다. 보라. 세상이 얼마나 단순한지
를. -영혼의 지방질-이 그에게 돈을 벌게 해주고 있었음에도, 그는 그것이 싫다고 하고 있었다. 얼마나 웃기는 촌극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반게리온 서가 개봉했을 때 나는 봐야만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3D CG니 오타쿠적 기질이 충만한 비
주얼이니 하는 때문이 아니었다. 그 때 그 시절을 반추하고 싶은 맘도 없었다. 그 단순한 세상 속에서 그래도 단순하지 않고
뭔가 있다고 찾아 헤맸던 그 세대 하나하나의 발걸음 만큼이나, -그도 뭔가 찾아 헤메고 있어-라는 것은 전달받았고, 나중에
에바를 곰곰히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은 그것이었기에. 나는 확인하고픈 궁금증이 들어버렸다. 과연 그는 무엇을 찾아낸 걸
까, 하고.
결과를 말하자면, 그는 지방질에 질식당하고 있던 핵심 몇 개는 나락에서 건져올린 듯 하다. 야시마 작전 씬 같은 것이 그것인
데, 이제까지의 신지가 겪은 모든 고통과 자문의 시퀀스는 전부 야시마 작전을 위해 쌓아 올려진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된다. 야
시마 작전에서 저격초탄이 (응?) 빗나간 이후에 보여주는 에바 두 대와 신지의 움직임, 구도들은 확실히 이전의 모든 전투씬
보다 전달력이 큰 부분이다.
아직은 유효하기는 해도, 화두란 건 유행이 있게 마련이고, 이제 에바 속의 화두는 어느 것도 최신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
만 그럼에도 야시마 작전 씬 이후 전달받은 것이 있다면, 결국 나는 누구인가 따위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움직여보는 게 낫
다는 새삼스러운 걸 애써 말하는 안노가 거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건 꽤나 중요한 부분인 셈이다.
10년이 훌쩍 지나서 그는 이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아직 첫번째 이야기이긴 해도 예전의 -영혼의 지방질-로부터 많이 자유
로워지진 못했지만, 최소한 노력은 했다. 문제는 그걸 바라보는 내가 이번에는 그와는 색다른 -영혼의 지방질-로부터 자유롭
지 못하다는 아이러니다. 어쩌면, 에바를 향유했던 모든 세대들조차도.
이른바, 체념하는 게 속편한 법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