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오퍼나지 - 긴장감의 끈을 놓지못한 영화. 약간의 스포포함

메신져 작성일 08.02.23 07: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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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기에 영화를 보실려고 하시는 분은 읽지 않으시는 것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늦은 시간 마지막 영화를 보았다. 예고편을 봐두었기에 나름대로의 상상을 간직한채 스크린을 마주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영화를 다 본 후에야 왜 그리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지 이해될 법도 했다. 대단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제법 괜찮은 공포/스릴러/판타지 영화라는 평이 있었지만 나같이 헐리웃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영화의 초반은 어쩌면 지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섭고 끔찍한 장면들이 별로 없었음에도 놀랍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예고편 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영화의 진행이 느리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은 유지되었고 어느새 난 영화가 던져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심지어 빛이 가득한 장면들에서 조차도 웬지 모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흔히 헐리웃 공포영화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의 그 흔한 잔혹한 장면들은 볼래도 볼 수 없었지만 뜻밖의 충격적인 장면들에선 내 몸은 몇번씩이나 움찔하고 반응하였고 심장은 놀랍도록 뛰고 있었다. 충격에 따른 신음소리가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찌보면 이미 봤음직한 뻔한 스토리 뻔한 구도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뻔한 스토리 뻔한 구도를 가지고도 그흔한 CG에 기대어 내 눈을 고통스럽게도 하지 않았음에도 보는 나로 하여금 공포앞에서 어쩔줄을 모르게끔 했다.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던간에 보는 사람에 따라 영화는 충분히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며 같은 장면을 가지고도 천차만별의 반응들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했고 공포를 맛봤다.

 

영화는 세 번 정도 봐야한다는 얘기를 언듯 들었던 것 같다. 나도 내 나름대로 그것에 동감한다. 처음 볼 때는 의식이 아니라 나의 무의식이 보는 것 같다. 감정과도 깊게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깊은 감동일 수도, 깊은 슬픔일 수도, 터져나오는 웃음일 수도, 즐거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무서움과 긴장감을 본 것 같다. 영화를 다 본 뒤 난 내 기억에 남겨져 있는 여러 장면들을 나름 이해한 스토리에 맞춰 다시 이어보고 맞춰본다. 왜 그랬을까 하는 그런 의식의 활동이 이어진다. 뭔가 그 의미를 찾아볼려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역시 여자의 모성본능은 참으로 강한 것 같다. 같은 사건을 대하는 주인공 로라와 남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낳은 자식이 아닌 입양한 아들임에도 주인공 로라의 태도와 행동은 단순한 모성본능 그 이상인듯했다. 물론 로라의 남편이 입양한 아들을 쉽게 대하거나 쉽게 포기할려고 한 것은 적어도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순히 자식을 잃은 부모 그 이상의 태도로 로라가 일관할 수 있었던 것은 본질적으로 로라와 입양한 아들은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로라도 자신을 보호해주고 사랑해주어야 했을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아였고 입양한 아들 또한 고아이였기에 부모와 자식 그 이상의 동질감과 유대감을 로라로 하여금 가지게끔 한건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자식은 생명이란 끈으로 이어져 있지 않나 싶다. 부모는 자식이 먼저 죽으면 그 가슴에 자식을 묻는다고 하지 않던가. 살아있는 그 부모의 가슴에는 자식의 죽음은 항상 생생히도 잊혀지지 않는 현재이다. 그래서 그 시간 이후로는 부모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일게다. 난 아직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죽음을 넘어서도 자식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전혀 모른다. 단지 그렇겠거니 추측할 뿐 전혀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죽을때까지 말이다.

 

자신의 실수, 전혀 의도치 않았음에도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실수로 아들이 죽었음을 안 로라는 자식없이 살아가는 현실 보다는 아들과 함께하는 "네버랜드"를 택한다. 어른들은 결코 갈 수 없는 "네버랜드"에 어른인 로라가 들어갔다는 것은 아이의 눈높이와 상상력을 가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런지. 이점은 보이는 것과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받아들이려 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을 비현실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자신의 세상 밖으로 내몰아버리고 외면한 남편과 비교할 때 더욱 그러하다. 어른인 로라가 아들과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장면들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어드밴처 게임에서 주인공들이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을 연상케한다. 알다시피 퍼즐을 푸는 열쇠는 놀라운 상상력이지 않던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퍼즐을 다 푼 주인공 로라가 직면해야 했던 결과는 아들의 죽음이였고 그 자신 또한 선택의 순간에 서게 된다. 그러나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주인공 로라는 주저없이 죽음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 고민의 흔적이 없었음은 자식을 돌봐야 하는 부모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삶과 죽음이 그렇게 이질적인 것이 아님을 경험한 로라에게선 뭐 그리 큰 문제는 아닐 듯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다 어느 순간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것이 우리 삶에 분명 있지 않나 싶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때론 자신의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그런 결과로  내몰지도 모를 그런 진지함이 예상될 때 나는 "두렵고 떨리며" 한편으로 도망하고 싶고 또 로라의 남편과 같이 그저 "현실"에 남고 싶어할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것 처럼 말이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용기는 사라지고 이해되지 않는 내 현실과 세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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