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도망쳤지만 끝내는 조때버린 커플을 위해 잠시 묵념을...... 어쩌면 이 영화는 솔로부대를 위한 영화일지도.....ㅋㅋ)
평생동안 극장에서 안봤다가 무진장 후회한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이 영화도 그런 쪽에 속하게 될 것 같군요.....ㅠㅠ
핸드헬드라는 건 일종의 기술일 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일종의 기법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평
중에는 블레어윗치의 기법을 비교하는 분들도 많이 있고, 그것 때문에 새롭지 않다고 말하는 분들도 꽤 계십니다만......전 그
냥 한 마디만 하고 싶네요. 새로운 게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라고.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런너 같은 경우는 어땠을까요. 블레이드 런너의 내용들은 혁신이고 놀라움이며 깊이였습니다. B급으로
만 취급되었던 SF물에 나름의 철학과 중층의 내러티브, 입체적인 캐릭터,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특수효과들까지. 하
나 같이 새로운 것들이었죠. 그러나 결과는 흥행 참패였습니다. 감독조차도 블레이드 런너 때문에 정신병에 걸리기 일보직전
이 될 정도였죠. 그 놀라운 영화가 시대를 읽지 못하고 개봉과 동시에 무너져 갔지만, 그걸 발견한 것들이 관객이었고, 그 당
시 비디오 시장에서의 꾸준한 대여를 시초로 결국 오늘날의 전설급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클로버필드가 그런 급과 동등하게 여겨달라는 건 아닙니다. 전 오히려 클로버필드를 다른 면으로 보고 싶어요. 철저하게 현실
적인 감각으로 마련된 기획의 승리라고 말이죠.
기획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아이디어들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잘 비벼 맛있
는 비빔밥을 만드는 방법들이 있죠. 인터뷰에서 에이브람스는 단 한마디만 합니다. 일본의 고질라를 보고 그렇게 도시를 두드
려 부수는 괴물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거야 별 새로울 것은 없죠. 하지만 그는 여기에다 다른 것들을 비벼넣기 시작합니다. 헨
드헬드 기법은 그 중에서도 가장 주효했죠.
잠시 옆길로 새서 FPS를 생각해봅시다. 처음 FPS게임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가장 놀라워 했던 건 시점이 관찰자 자신과 동
일한 시점으로만 제한되어 있는 한계상황이 주는 몰입감이었습니다. 그것을 처음으로 영화에서 잘 써먹은 것은 블레어 윗치
지만, 블레어 윗치는 되려 그냥 그런 류의 시초만 되었을 뿐, 누구도 핸드헬드를 유행의 선두기법으로 점찍지는 않습니다. 다
른 내러티브들을 FPS의 감성으로 해결하기엔 너무나 한계지점들이 많았던 것이죠.
그럼 여기서 또 다시 다른 괴수영화를 생각해봅니다. 다른 괴수영화들의 전통은 괴수의 전체 몸통을 풀샷 안에 집어 넣음으로
서 그 거대함을 어필하려는 데 혈안이 되면서 동시에 상황을 전달하려 해주죠. 하지만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관찰자들의 입
장에서는 아무리 괴물이 크고 그 앞의 인간이 왜소한들 엔간한 실감도에서 조금이라도 선을 낮추면 여지없이 코웃음을 쳐버
리면서 몰입감을 내팽개치는 사태가 생기는 거죠. 그 부분에 미국영화 고질라가 딱 대비됩니다.
쥬라기공원이 놀라웠던 건 이제 컨트롤모션으로는 코웃음을 치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생동감있는 크리쳐를 제작하고 애니
메이팅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 뒤로 돈 쏟아붓는 엔간한 크리쳐는 전부 CG로 대체되었죠. 고질라는 그렇게 관객들의
눈높이가 더욱 높아졌을 때 제작됩니다. 그 상황에서 그 놈의 풀샷 감각을 버리지 않죠. 그 결과, 그 크리쳐가 아무리 크고 인
간들을 해치면서 난리를 쳐도 괴물이 영화 화면에서 비춰지는 한은 그저 그렇구나, 쥬라기 공원의 티라노 아류로군, 하게 되
어버린다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예리하게 노렸던 기획감각이 아주 뛰어난 영화가 바로 클로버필드라고 생각합니다.
블레어 윗치가 보여줬던 건 핸드헬드 기술 뿐만이 아니라 한계시점에서 자아낼 수 있는 몰입감과 긴장감의 기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걸 유행화하진 않죠. 풀샷 감각으로 영화 화면에서 내러티브와 시퀀스를 보여줘야만 하는 수많은 전통적 영
화들은 이 새로운 기법을 부분적으로만 차용했을 뿐 이것 자체를 효과적으로 쓸 수 없는 한계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괴물
이라면 다릅니다. 거대한 괴물이라면 괴물인 만큼 사람이 아무리 전체적으로 보고 싶어도 어느 정도 시야의 한계성이 존재하
죠. 그리고 그 시야의 한계성 때문에 사람들은 집중하고 몰입하게 됩니다. 이건 FPS 게임의 재미요소 중 하나죠. 이런 것들
을 버무렸을 때 현실감이라는 건 훨씬 더 극대화될 수 있는 여지를 에이브람스는 발견한 겁니다. 영화이고 풀샷으로 잡아야
만 크리쳐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일탈한 거죠. 하다못해 에이리언 등에서도 보여준 이런 시야의 한계성을 왜
거대괴물이라고 갖지 못할까? 하는 특성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러티브는 간단해집니다. 왜 기어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원인을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캠코더는 녹
화됩니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초반 부분은 정말 다른 님들의 표현대로 약간 지루한 것도 사실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적어도
7분 안에 괴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심리학적인 면들을 잘 차용한 거라면 이런 부분에서 클로버필드는 다소 실패
합니다.
하지만 이후 후반부는 자동으로 흘러갑니다. 왜냐면, 작가가 집중하고 싶었던 부분은 일단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진행
되는 이후이니까요. 스펙터클이긴 하나, 좀 더 다른 개념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관객 개개인의 차
원에서 내가 현장에 있다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 수 있는.
그런 면에서 핸드 헬드로 마구 흔들리는 건 두 가지의 모순된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구 흔들림으로
써 그 캠을 들고 있는 사람과 상황을 의식하면서 영화의 몰입감에서 잠시 빠져나와 쉴 수 있는 상황. (이건 보통 스토리의 흐
름이 의문점?-상승-해결의 구조가 반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하면 당연한 부분이겠죠) 그리고 또 하나는 일단 벌어진 상
황에서 볼 수 있는 한계시점을 설정하고 현실감을 부여하는 상황. 관객들은 쉬면서도 계속 이 영화상에서의 현실감을 주입받
게 되어버리는 거죠. 블레어 윗치가 진짜로 던져준 건 이런 부분이었고, 클로버필드는 그 영역을 십분 활용한 영화라고 생각
합니다.
여러모로, 기획이란 것은 다른 여러 가지 부분들을 항상 생각하고 조합해봐야 하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적
어도 에이브람스의 기획력은 높이 사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클로버필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핸드헬드라는 기술을 빼고
다른 기술과 풀샷을 써서 만들었다면 클로버 필드는 고질라와 같은 지루함의 영역에서 끝나고 말았을 운명이라 생각해봅니
다.
사족으로......
아마도 FPS를 즐기지 못하시는 분들은 클로버 필드를 보시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쓸데없는 유추를......ㅎㅎ
(아니,.....화면의 크기가 다르니 또 다른 문제일지도.........-_-)
사족2로......
위에서 농담으로 써놓긴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솔로부대를 위한 영화같은 느낌이.........커플이었다가 솔로가 된 릴리는
살고, 죽자사자 자기 짝 구하러 간 롭과 베쓰는 다리밑에서 같이 디지고, 커플 되려고 했던 허드랑 말레나는 괴물들한테 죽
고.......좀 신기한데.....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