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타즈: 거친녀석들 - 악동적 기질로 회귀

NEOKIDS 작성일 10.01.31 19: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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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먼저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저주받은 작품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블레이드 러너는 개봉 당시가 레이건 정부 출범 때였습니다. 그 때 쯤엔 레이건을 뽑으면서 새로운 장밋빛 희망을 사람들이 품을 때였죠.


그런 상황에서 산성비가 죽죽 내리면서 햇빛조차 안 보이는 어두운 미래도시가 배경이 되는 블레이드 러너는 그 내용상의 혁신적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배반하면서 당대의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강적이 하나 출현했죠. ET.


그나마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려봤던 시각효과상마저 ET에게 빼앗기면서 추락을 거듭했죠. 하지만 이후 비디오의 보급과 함께 이러한 명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소문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블레이드 러너는 급격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 레이거노믹스의 문제로 색다른 냉전체제가 유지되기 시작한 것도 한 몫 했구요.


뜬금없이, 왜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냐 하면, 바스타즈의 깐느 개봉때 벌어진 상황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은 때문입니다. 깐느 개봉 때 바스타즈는 평단으로부터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킬빌보다도 훨씬 초기 때의, 어떻게 보면 펄프픽션과 저수지의 개들 시절까지로 올라가는 듯한 캐릭터들의 축조와 함께 히틀러의 두개골이 깨져나가는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뜨악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사람들의 입장에서라면요.


이것은 기존에 2차대전을 배경과 소재로 한 수많은 전쟁관련 영화에서 보여졌던 일종의 고정관념이랄까, 정해져 있던 개념의 챠트들을 제멋대로 찢어발기는 행동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적과 아군이 확연하게 갈려있었던, 그것도 노르망디를 앞둔 유럽전역의 전쟁 상황에서 갑자기 적이 아군이 되려하기도 하고, 하다못해 조금 멋있는 척이라도 해야 할 아군들은 허망하게 죽어나가고, 무엇보다도 핵심인 히틀러가 그냥 걸레짝이 되어버리는 장면들을 보면, 이거 작심을 해도 아주 단단히 했구나, 라는 점이 느껴졌지요.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전 이게 타란티노가 계속 발전을 해나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왜냐하면 이런 해체의 테제들에 아주 쉽게 함몰되어 진짜 쌈마이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큰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캐릭터들이 얼굴을 맞대는 순간 벌어지는 긴장감의 고조들에서는 타란티노의 내공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묘하게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얼굴을 맞대는 순간부터 계속 긴장의 연속입니다. 그 긴장은 짧기도 하고 길게 지속되기도 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도 잊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특히 칼싸움과 잔인함에 함몰되어버린 킬빌과 궤를 달리하는데, 킬빌의 경우는 요란한 칼싸움과 액션씬 뒤에 있는 베이스는 사실 박찬욱의 복수3부작과 그다지 다른 궤적을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액션씬들에 함몰되어서 그 복수3부작의 밀도까지는 따라오지 못하죠. (타란티노가 예전에 깐느에서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봅시다)


킬빌의 경우는 오히려 초반부 블랙맘마와의 격투씬이 가장 인상적인데, 죽도록 싸우다가 갑자기 등장한 애 때문에 긴장감이 오히려 고조되는 그럴듯한 내공을 펼쳤죠. 그런데 그게 이후로 속편까지 가도록 유지가 잘 안된 케이스에 속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킬빌의 잔혹함만큼이나 훨씬 더 이 바스타즈의 잔혹함이 일반평에서 주요 골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때, 그만큼 타란티노가 피 튀기는 씬은 정서적 충격을 적절히 줄 수 있는 장치로만 사용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정적 장면들에서는 확실하게 잔혹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것이 생생해진다는 것이지요.


결국 극에서 남는 것은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긴장감입니다. 펄프픽션 때부터 이건 타란티노만의 장기였습니다. 그냥 겉으론 멀뚱히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실제로 한발짝 들여놓으면 토네이도가 몰아치고 있는 형국과도 같은 상황들을 만드는 것. 등장인물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절대는 것 같아도 오히려 대비의 효과가 살아나는 것.

 

이런 미묘함 때문에 이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외형적 상황에만 골몰하면 바스타즈는 그다지 큰 재미를 획득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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