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엔 오랜만에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았습니다. 과연 명작이더군요.
본 김에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아마데우스 리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감상하는 관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영화에 대한 견문이 좁은지라 다각도로 분석하지는 못 합니다.
그냥 제가 중점적으로 보고 느낀 점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만 미리 말하자면 아마데우스는 오페라에 입문하기에 참 좋은 영화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아마데우스는 반전영화가 아닌지라 딱히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게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지만, 아마데우스를 감상할 예정이어서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으시는게 좋습니다.
영상을 사용해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서술했거든요. 글 잘 쓰시는 분들은 짧은 글로 느낀점을 간략하게 쓰시던데 저는 글 솜씨가 부족해서인지 말씀드리고 싶은 바를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질에 욕심을 조금 냈더니 버퍼링이 느립니다. 영상을 볼 때 다음 영상 버퍼링을 받아가면서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ㅇㅅㅇ)
아마데우스는 노년이 된 살리에리가 죄책감에 못 이겨 자해를 해, 정신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살리에리가 자해를 하면서 외쳤던 '모차르트, 내가 자네를 죽였네'라는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 한 신부가 살리에리를 찾아와 고해성사를 할 것을 권유하고,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회상으로 영화는 전개됩니다.
(살리에리 표정연기 쩔지효? 난 왜 이렇게 약간 과장된 연기가 좋은 걸까요;;;)
자신의 음악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에 허무함을 느끼는 살리에리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과연, 살리에리가 실제로 그렇게 빨리 잊혀졌을까요?
실제로 살리에리는 당시에는 비엔나 황실의 최고 작곡가로 50년 이상 일했으며 비엔나 작곡가협회의 강력한 후원자로, 음악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잘은 몰라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부와 명성을 충분히 누렸을 겁니다.
영화에 나오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영화의 주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현 시대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후로 나오는 살리에리의 모습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살리에리라는 이름의 신사라고 생각하셔요.
아무튼, 살리에리는 신부에게 어릴 적부터 음악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던 모차르트를 동경했음을 고백합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자신의 아들이 음악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아들을 데리고 연주여행을 다니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습니다.
반면에 살리에리는 아버지의 반대로 뒤늦게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빈 궁정에서 초청을 받아 궁정 작곡가로 임명되는 등, 빠르게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만나게 됩니다.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첫 인상입니다.
뭐.... 이 영상은 꼭 넣을 필요는 없었는데, 콘스탄체 슴가....가 아니라, 살리에리의 놀라는 표정이 맘에 들어서 올렸습니다. ㅇㅅㅇ
모차르트의 명성이 빈에 알려지자, 빈의 궁정에서 모차르트를 초청하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 등장인물들 간의 알력 관계가 한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어차피 뒤에 나오지만, 이 장면에서의 등장인물을 소개해 보자면...
살리에리 오른쪽에 서 있는 푸른색 옷을 입은 남자는 반 스위트 남작. 그냥 남작으로 칭하겠습니다.
그리고 왼쪽에 서 있는 2명의 사람 중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오페라 극장장, 검은 옷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교회악장입니다.
황제의 뒤에 서 있는 챔벌린이란 사람은 시종장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오페라 극장장. 교회악장, 살리에리는 이탈리아인으로, 일종의 당파(정치가 아닌데 써도 되는 용어인지 모르겠네요)를 이루고 있고, 음악에 관해서는 강한 권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작과 시종장은 오스트리아인입니다.
오페라를 비롯한 오라토리오, 칸타타, 소나타 등 대부분의 클래식 장르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력은 다른 나라에서 자국어를 사용하는 오페라가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할 정도로 절대적이었지요.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탈리아의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오페라 극장장을 필두로 한 이탈리아인들은 오스트리아인인 모차르트를 견제하고, 오페라에 독일어가 사용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모차르트가 치는 악기는 피아노가 아니라 하프시코드, 챔발로라고 불리는 17세기경의 건반악기입니다. 피아노와는 다른 소리가 나죠. 요즘은 디지털 피아노에서 하프시코드의 소리를 재현할 수 있더군요.)
모차르트의 경솔하고 경박한 성격과 더불어 천재성도 잘 보여주는 장면이죠.
그나저나 황제 참 귀여운 캐릭터이지 않습니까? ㅇㅅㅇ
어쨌든, 그래서 나온 오페라가 '후궁에서의 유괴'입니다.
브롸~~바~ 마담!
남성 독창일 때는 브라보, 여성 독창일 때는 브라바, 남녀 혼창일 때는 브라비라고 하죠. 별로 중요한건 아닙니다만...
살리에리가 흠모하던 소프라노 가수를 모차르트가 오페라에 출연시켜서 살리에리가 삐치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그건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편집했습니다.
(꼭 그런 이유를 안 갖다 붙여도 모차르트가 살리에리한테 미움받을 짓 한게 한 두 가지입니까? -ㅁ-;;)
황제가 체면상 지적한 내용을 죽어라고 물고 늘어지는게 모차르트는 전형적인 센스 없는 타입이군요. ㅇㅅㅇ;;
후궁에서의 유괴를 작곡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 결혼합니다.
검색질하다가 주워들은 바로는, 혹자는 이 시기가 모차르트의 짧은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하더군요.
이런저런 이유로 살리에리의 미움을 산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견제를 받기 시작합니다.
황제가 모차르트를 궁정의 음악교사로 채용하려 하자 살리에리가 공정하지 않다고 간언합니다.
이 때는 음악회나 공연을 해서는 돈을 벌 수 없었나 봅니다.
음악교사를 해야 생활비를 벌 수 있는데, 모차르트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평가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콘스탄체가 나서지요.
뭐, 여차저차해서 밤에 정신줄 놓고 찾아온 콘스탄체를 살리에리는 망신만 주고 쫓아냅니다.
(궁금하신 분은 풀버전 다운받아 보셔요. 콘스탄체의 처진 슴x를 볼 수 있... -ㅅ-;;)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그리고 신에게 악의를 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모차르트를 음해하기 시작하지요.
살리에리의 계략으로 모차르트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좋은 친구이자 후원자로 행세하죠.
그래서 살리에리의 계략으로 궁지에 빠진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찾아와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살리에리는 작은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미약한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주지요.
나쁜 소문이 퍼져 아무도 음악교사로 채용해 주지 않는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리는 한 귀족을 소개해 줍니다.
하지만 그 귀족은 음악에 대한 교양이 부족합니다. 음악을 연주하는데 애완동물을 잔뜩 데리고 큰소리로 떠들지요.
하지만 모차르트가 조금만 자존심을 버리고 융통성이 있었다면, 굳이 음악교사를 못 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애초에, 궁정교사를 채용할 때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작품 샘플을 제출했더라면 모든 일은 잘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차르트의 파멸은 반드시 살리에리의 악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교사 자리를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장면이 아주 훌륭합니다. 물론 제가 그 시대를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재현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살리에리가 추천해준 교사 자리를 쿨하게 걷어차고 집으로 돌아오자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자 아들의 생활을 확인하러 온 것이지요.
반갑게 포옹은 했지만, 집에 들어서자 문 어귀에는 빈 술병이 굴러다니고 테이블에는 카드가 널려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는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고 작품활동과 경제상황을 물어보지만 모차르트는 대답을 어물쩍 넘겨버립니다.
요즘으로 치면 옷 한 벌씩 사 입고 클럽에 가는 것과 같으려나요.... 아닌가? 저도 이제 구세대가 되어 놔서...
아무튼 이렇게 흥청망청 쓰고 노는 아들의 생활이 마음에 들 아버지는 없을 겁니다. 시아버지와 붙어사는게 마음 편할 며느리도 없을테구요.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불편한 동거생활 중 어떤 계기로 콘스탄체와 싸우고 잘츠부르크로 돌아갑니다.
위 영상의 마지막 부분, 모차르트가 당구대에서 작곡을 할 때 나오는 음악은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입니다.
대충 '나를 용서해 주오'라는 내용의 아리아인데, 아버지와 아내에 대한 모차르트의 심정을 잘 반영해줍니다.
한편, 살리에리는 은밀한 정보통으로부터 모차르트가 어떤 오페라를 작곡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 오페라가 바로 '피가로의 결혼'입니다.
오페라는 작가들이 쓴 가사집에 작곡가가 음악을 붙이는 것인데, 가사집 '피가로의 결혼'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금지시킨 작품이었지요.
여기서 잠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내용을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피가로이고, 백작의 하인입니다. 피가로의 약혼자인 수잔나 또한 백작의 하녀입니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곧 결혼할 예정이었는데, 피가로가 사는 지방에는 좋지 않은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었지요.
초야권이라고 하는 것인데, 봉건시대의 악습으로 서민들이 결혼하기 전 영주가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동침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백작은 이미 결혼한 몸이지만, 바람기가 있어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고 호시탐탐 유혹하려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그러자 백작은 초야권을 사용해 수잔나와 동침하려 합니다.
수잔나의 약혼자인 피가로는 백작의 부인에게 백작의 계획을 알리고 백작 부인의 도움을 받아 백작을 뉘우치게하고 무사히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줄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배계층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왕족은 혈통만으로 백성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피가로의 결혼'의 대사 중에는 그런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사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실제로 '피가로의 결혼'이 연극으로 프랑스에서 초연 되었을 때 루이 16세는 격분하며 상영 금지 조취를 내렸고, 그로부터 몇 년 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마데우스의 오스트리아 황제가 종종 언급하는 '누이 앙투아네트'가 바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정치적인 요소 외에도, 서민을 주인공으로 한 희극이라는 점도 왕궁에서 공연하는 오페라의 자격에 위배됩니다.
오페라는 16세기경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난 것이 오페라이지요.
르네상스의 이념은 학문/예술의 재현, 특히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를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피렌체의 시인과 작곡가들은 그리스 시대의 연극을 재현하려고 했는데, 그들은 그리스 시대의 연극에는 모든 부분에 음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오페라의 시초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연극의 내용은 신화, 혹은 위대한 왕이나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많았지요. 따라서 초기 오페라의 내용은 주로 그리스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페라는 다른 장르의 음악에 비해 의상과 소품, 무대장치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음악이었기 때문에 왕궁, 혹은 귀족들의 연회에서만 연주되었습니다.
초기 오페라는 왕과 귀족들만의 음악이었지요.
하지만 17세기 중반부터 상업용 오페라 극장이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오페라는 귀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일반 시민들, 대중들이 오페라를 즐기게 되면서 작곡가는 오페라의 대중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중적인 흥행을 위해 작가는 희극을 쓰기 시작했고, 작곡가는 내용전달을 중시한 레치타티보보다 아름다운 아리아에 중점을 둔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오페라는 음악성보다는 내용전달에 중점을 둔 레치타티보 위주의 오페라였습니다. 초기오페라의 성격을 이어받아 발전한 것을 오페라 세리아, 대중적인 오페라의 성격을 이어받아 발전한 것을 오페라 부파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차르트는 오페라 부파를 즐겨 썼다고 합니다.)
동시대 비평가들은 이렇게 대중화 된 오페라를 열등한 오페라라고 비판하고 초기 오페라의 성격을 고등한 것으로 평가했었습니다.
아마데우스는 이러한 오페라의 변천사를 영화에 아주 잘 반영하였습니다.
그나저나 오스트리아 황제는 참 귀엽고 관대하군요.
(모차르트가 20중창에 대해 설명 할 때 기대감에 움찔움찔 하는거 귀엽지 않습니까? =ㅅ=b)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피가로의 결혼은 완성되어 공연하게 됩니다.
위 영상의 4막 부분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의 대략적인 내용은 위에서 설명 드렸죠?
수잔나와 동침하려는 백작을 골탕먹이기 위해 피가로는 계략을 써서 선수를 칩니다. 수잔나가 먼저 백작에게 밀회할 것을 제안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약속장소에는 수잔나 대신 백작부인이 수잔나로 변장하고 나가는 겁니다.
수잔나로 변장한 백작부인을 보고 백작은 수잔나를 유혹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모두 들통난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백작부인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든 오페라이지만, 사람들은 그 가치를 깨닫지 못 합니다.
아마데우스 전체를 통틀어 오직 살리에리만이 모차르트의 음악성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죠.
(근데 피가로의 결혼은 저도 좀 지겹던데... ㅇㅅㅇ)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이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자 모차르트는 술과 파티로 나날을 보냅니다.
제가 아마데우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바리톤을 좋아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곡 때문이었습니다.
'돈 지오반니'의 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실제 오페라에서는 뒤에 아리아가 하나 더 있죠.
음악과 살리에리의 독백이 어우러지는게 아주 환상적입니다.
'돈 지오반니'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돈 조반니는 오만하고 방탕한 귀족입니다. 레포렐로라는 시종을 데리고 다니죠. 여기저기 여행을 하며 여자들을 유혹하고 다닙니다.
극 초반에 안나라는 여성을 희롱하다가 안나의 아버지(기사장)에게 들켜 조반니는 기사장과 결투를 하게 되고, 조반니는 늙은 기사장을 칼로 찔러 죽이고 달아납니다.
안나와 그의 약혼자(옥타비오)는 조반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조반니를 추적하고, 조반니는 여행을 계속하면서 약혼자가 있는 시골처녀(체를리나)를 유혹하는 등 악행(..?)을 계속합니다.
여행 중 조반니는 우연히 자신이 죽인 기사장의 무덤을 지나게 되고, 무덤에 세워진 기사장의 석상을 보며 저녁식사에 초대하겠다며 조롱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를 하려는 조반니의 집에 진짜로 기사장의 석상이 찾아아고, 조반니는 기사장에 의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조반니를 추적하던 안나와 옥타비오와 기타등등은 조반니가 천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행복해하며(;;;) 끝이 납니다.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장면은 기사장의 석상이 조반니를 찾아온 장면입니다.
아래는 살리에리의 독백을 무시하고 오페라의 가사를 해석한 영상입니다.
가사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성악곡은 내용을 알고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성악곡이 발달한 이유가 가사에 의한 내용전달의 목적 때문이었으니까요.
영화에서 연출된 장면은 실제 오페라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조반니가 지옥으로 떨어지는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 그렇고, 기사장의 석상도 검은색이 아닌 하얀 대리석 석상으로 분장을 하지요. (흰색을 강조해서 신의 대리인임을 나타내려고 한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건 그냥 제 생각이구요. 참고로 조반니는 무신론자입니다.)
그리고 오페라에서는 기사장의 석상이 조반니의 손을 잡은 다음 놓아주지 않습니다. 물론 연출은 하기 나름이고 실제로 조금씩 변하지만, 제가 보기엔 대체로 그렇더라구요.
말 그대로 조반니는 기사장의 '손에 이끌려' 지옥으로 떨어지지요.
(위의 영상의 가사도 사실은 '이제 나를 내버려두고 떠나시오'가 아니라 '이제 나를 놓아주고 떠나시오'가 맞습니다. 연출에 맞게 조금 바꿨어요.)
레포렐로도 죽지 않습니다. 살아 남아서 조반니를 응징하려고 쫓아온 사람들에게 조반니의 최후를 말해주지요.
영화에서는 '돈 조반니가 아버지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설정을 위해서 연출에 변화를 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눈치채기 힘들게 교묘하게 빠진 부분이 있는데 온전한 버전을 듣고 싶으신 분은 아래 음악을 들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