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 영리하고 훌륭한 영화

NEOKIDS 작성일 11.08.01 16: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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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은 영리한 영화입니다. 

굳이 6월 개봉 맞추지 않았던 부분에서도 감잡았지만, 

이데올로기에 잔뜩 쩔어서 그걸로 밥먹고 살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지리들이 본다면 

재미없어 할 것들만 잔뜩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간들의 특징은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는 데 있죠. 


대부분 전쟁영화의 틀은 비슷합니다. 

이긴 자가 어떻게 이기는가, 지는 자가 어떻게 지게 되는가, 그것에만 관심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것은 프로파간다라는 것, 또 역사적 해석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해석이 이긴 자를 추종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가야 한다는 것,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흥행하지 못한다고 믿는 것 같은 이치죠. 


그렇게 해서 중요한 큰 틀의 줄기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줄기 이야기를 따라 서브플롯과 모든 전쟁의 장면들이 뚜드려 맞춰져 삽입되는 것이 보통 전쟁영화의 특징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블랙호크다운, 라이언일병구하기 등등등의 대부분 전쟁영화들이 이 큰 틀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더 생생해진 차이일뿐. 


그런데 이 고지전은 이런 고정관념적인 큰 줄기 스토리를 아예 무시해 버렸습니다. 

도입부부터 미스테리 형식으로 들어가지만 그것도 쉽사리 답을 내주어버리고, 

캐릭터 개개인의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는데 치중합니다. 


그 결과 순수하게 혼돈스런 전쟁이라는 이미지만 남게 되지요. 

이런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연결컷도 휙휙 잘라버립니다. 편집감각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또 씬레드라인과 비교되는 부분이, 씬레드라인은 이런 느낌을 강조한답시고 말만 줄줄줄줄 늘어놓는데, 

고지전은 오로지 상황요소만으로 꿋꿋이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정답이지요. 


순수한 전쟁의 이야기라는 것이, 결국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들이라고 해석한다면, 

사람들이 밴드오브브라더스를 재밌게 봤던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가 아닐까 합니다. 

큰 줄기만 죽자고 따라가는 것보다는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개개인들의 플롯들을 원하게 된 것이죠. 


이제,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을 것인데, 

고지전이 또 영리한 부분이 이런 겁니다. 

주제를 '아이러니'로 설정하고, 그 주제에 충실했다는 것. 


첫 시퀀스부터 선전포고 하듯이, 방첩대원이 빨갱이숙청에 대한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고 나서부터, 

전쟁의 비참함을 잘 살렸네 뭐했네 미사여구 넣을 것도 없이, 모든 것은 아이러니 한 단어로 끝납니다. 

아이러니라는 주제에 대한 스토리 자료들을 많이 찾아본 노력이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공부가 될 지경이더군요. 

그저 생각이나 말로만 때우고 대강 당위성이나 이데올로기를 집어넣는 샷 첨가해

흥행요소로 삼지 않으려는 그 노력과 시각이 훌륭했습니다. 


찍는 것 또한 전쟁이었을 이 영화, 강추입니다.




사족으로, 

장훈 감독의 프로필을 보면 연극 연출을 한 경험은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하나하나의 시퀀스들이 연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 생활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 싶은데, 이런 부분은 좀 더 경험과 생각이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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