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읽고 다시 보는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쫄깃한귓볼 작성일 12.08.18 22: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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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lt;십자군 이야기&gt; 시리즈가 완결이 됐습니다.

워낙 재밌게 읽었던터라 마찬가지로 십자군에 대한 내용을 다룬 &lt;킹덤 오브 헤븐&gt;을 기억해내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저로서는 상당히 오래 전에 봤던 영화였는데요,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처음 봤던 것 같군요. 보통 학기말에 영화 CD를 많이들 구워왔으니까요ㅎㅎ)

책을 읽으면서 그 어렴풋한 기억을 되새겨보니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대단히 충실하게 재현한 작품이었다는걸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다시 본 &lt;킹덤 오브 헤븐&gt;은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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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lt;킹덤 오브 헤븐&gt;은 시기를 잘못 타고난 영화입니다.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시기와 맞물렸다는 점에서는 감독의 의지와 시각이 잘 드러납니다만

그 당시는 서사 영화라 하면 &lt;반지의 전쟁&gt;, &lt;트로이&gt; 등과 같은 스펙터클한 전투신을 강조한 전쟁 영화가 대다수였고,

또 인기를 끌었던 그러한 시기였기에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의 재미를 느껴보고자 했던 관객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지루한 전개에 (따지고보면 그렇게 지루한 영화도 아닙니다만) 실망해버리고 말았죠.

요새 개봉했다면 어땠을까요? &lt;300&gt;과 같은 '파괴의 미학'이 이끌던 전쟁 영화의 시대는 지고 

&lt;다크나이트&gt;,&lt;인셉션&gt;과 같은 대중적이면서도 깊은 생각과 이해를 요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고,

그에 반응하는 관객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져있는 것이 현재입니다. '전쟁 영화'하면 때려부수는 대규모 전투씬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영화에서도 좀 더 생각하고 음미할 거리를 찾아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인지 옛날에는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이 영화를 봤던 저도, 오히려 그때보다 분량이 1시간이나 더 긴

감독판을 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놀란 감독 영화들이 워낙 러닝타임이 길어서 익숙해진걸지도?)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참 잘 재현하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에 나오는 주요인물들은 아래 사진의 티베리아스 경을 제외하면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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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아스는 오히려 십자군 국가 도시의 이름인데요, 티베리아스 경이라는 인물의 모티프는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의 가정 교사이자 예루살렘의 재상이었던 기욤 주교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가면을 쓰고 나오는 보두앵 4세입니다.

책을 읽기전에는 영화에서 예루살렘 함락에 극적 효과를 주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인물이었다고 생각했거든요.134529587931635.jpg
하지만 그 역시 실존인물이고, 실제로 문둥병에 걸린 몸으로 많은 전쟁에 나섰던 초기 십자군의 마지막 성군입니다.

(영화에서도 몇번 언급되지만 16세때부터 전쟁에 나섰던 영재입니다.) 24살에 요절했구요, 1차 십자군 이후에

유럽에서의 추가 원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죽음전까지 살라딘과의 평화유지에 많은 힘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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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 왕이 되는 기 드 뤼지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자왕 리처드의 3차원정때도 따라가면서 끈질기게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더군요. 이 남자가 초래한 '하틴 전투'도 미국 펜타곤에서도 참고할 정도로 유명한

살라딘의 작품입니다. 실제로도 십자군은 물이 없어서 갈증 속에 전멸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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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에서는 깨알같은 성십자가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실제로 처형당했다는 십자가로

1차 십자군때 획득한 이래로 전투 시마다 앞세웠던 십자군의 상징입니다. 책을 읽으신 분들은 책속의 내용이

고대로 펼쳐지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하틴 전투'에서 패한 후 살라딘에게 뺏기기 때문에 이후 십자군 전쟁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서 가장 거리가 먼것은 주인공 발리앙에 대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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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속에서는 프랑스에서 살다가 십자군 국가 영주인 아버지를 따라서 성지로 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계속 거기서 나고 자라서 고급 아라비아어까지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현명한 인물로 묘사를 했었는데요, 영화에서는 태생부터 바꾸다보니

상당히 감성적인 인물로 변해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하는 짓은 이공곈데 생각하는건 신학도 같아요.

물론 자잘하게 역사와 다른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리처드가 그 타이밍에 등장하는 건 좀 오버같더군요)

영화는 끝까지 역사적 사실 재현에 충실합니다.

항복 끝에 안전한 탈출을 보상받는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결말까지..

영화로서는 허무하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정말 낭만적인 결말입니다.

살라딘이 얼마나 명예로운 인물인지 알수있지요. 책에서는 영화에서보다도 조금 더 낭만적으로 묘사됩니다.

 

&lt;십자군 이야기&gt;의 독자들에게는 훌륭하게 재현된 역사를 보는 재미를 선사하지만

이 영화의 개봉시기, 그러니까 부시의 이라크 침략과 함께 영화의 마지막 멘트에 담긴 메시지와 여운도 상당합니다.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은 전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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