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에 재밌다고 느낀 건 역시 실제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종이네요.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그랬고, 이번의 이미테이션 게임도 역시.
이 역시 극화를 위한 몇 가지 과장된 장치들이 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대충 감지한다 하더라도, 드라마의 임팩트가 꽤 높은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만족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 목숨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수준의 무게라는 장치라든가, 동성애라는 부분에 대한 억압과 소외의 문제가 전쟁이라는 배경과 맞물리면서 주인공을 고립시키는 장치로 쓰인다든가.
재밌는 건 역시 진실은 정반대라는 부분이죠. 환상깨기를 좀 하자면, 실제의 앨런 튜링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같은 팀원들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입니다. 극화 초반의 부분에도 도둑맞은 앨런 튜링이 경찰들을 쫒아보내지만 실제로는 그 경찰들에게 내가 동성애자다 경찰놈아 하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던 등. 기행을 일삼는 부분들이 좀 다분했었던 듯 합니다. 조안 같은 경우도 어떻게 보면 느낌이 좀 달라지는데, 실제의 앨런 튜링은 여성혐오자였습니다. 그가 동성애를 선택한 부분이 여성 따위 하등한 동물과는 떡제조 안한다는 이유였다는 일설이 있을 정도로.
뭐 이런 류의 영화속 미화는 뷰티풀 마인드 같은 종류도 있으니 그리 대단하다거나 부정적일 것도 없습니다. 요는 드라마틱한 구성의 흐름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의 부분이라는 문제인데, 이 부분에서는 '잡스'보다는 월등합니다.
잡스는 드라마틱한 걸 노린 건지 고소 안당하려는 걸 노린 건지 잡스라는 캐릭터를 너무 깎아내서 오히려 새마을운동틱힌 밋밋함밖에 남은 것이 없고, 그래서 오히려 월터 아이작슨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야 영화에서 나오는 상황들의 배경이 와닿으며 감상이 깊어지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미테이션 게임 같은 경우는 한 개인이 받는 전쟁시기 속에서의 압력이라는 부분을 동성애적 차별의 부분과 적절히 맞물려서 캐릭터를 재생산해내는 부분이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거기에 컴버배치가 아주 몸을 불사릅니다. 그냥 여성팬만 많은 허당은 아니었던 셈이죠. ㅋㅋㅋ (하기사, 스타트렉 칸의 분노에서도 대박이었던 걸 생각하면 허허)
캐릭터에 걸맞는 컴버배치의 연기력과 좋은 스토리적 요소가 만난, 간만에 본 좋은 영화였습니다.
(다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었다면!!!! 별이 5개!!!!!!!)
사족으로,
1. 잡스는, 음, 이를테면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같은 수준으로 잡스 캐릭터를 표현했었다면 오히려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입니다. 거기에 자서전에 나온 잡스의 내면을 관통하는 그 흐름, 어떠한 콤플렉스적 요소 때문에 일부러 다른 사람들을 닦달하고 큰 이상을 꿈꾸는, 그런 에너지가 더 쎄게 나오게 표현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만큼 잡스라는 캐릭터가 지금도 좀 많이, 아깝네요.
2. 알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애플 사의 로고는 앨런 튜링이 사과에 청산가리를 넣고 먹어 자살한 것과 연관된 거라는 썰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도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 잡스 전기에 나와 있어요. 읽어보세요. 살인적인 두께 우하하하핫!
그런데 이것 참........이 영화의 원작으로 동아시아에서 출판된 앨런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서적 띠지 부분에는 애플사의 로고가 그런 의미인 것처럼 홍보를 하고 있지요..........기획 담당들은 대체 잡스 전기를 읽어본겨 안읽어본겨!
3. 다행히, 극장 분위기는 아주 많이 차분했었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컴버배치 박순이들의 탄식과 괴성을 듣고픈 욕망이 있었습니다만 ㄲㄲㄲ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