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요소중의 하나는 마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인간들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꽤 탄탄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다가가는 것도 강점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디씨의 전략은 생각없이 그때그때 내놓는 것부터가 계속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성공적인 것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정도이고, 그것도 어떻게 감독의 성향과 맞는 스토리들이 유독 배트맨에 많았던 탓에 스토리를 조합해 쓸 수 있는 풀이 넓었던 반면, 나머지 캐릭터들은 만드는 사람들의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죠. 맨 오브 스틸마저도 사실 이런 지적을 피해갈 수가 없는 실정이구요.
캐릭터가 생각하는 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블의 캐릭터 구도들은 갈등상황이 명확합니다. 그렇기에 코믹스를 다 잘라버린 스토리가 나와도 캐릭터가 끌고 가는 형태죠. 반면, 이 영화에서는 모든 캐릭터에 대해 작가들이 전혀 모른다고 생각될 만큼, 철저하게 망가뜨렸습니다.
배트맨은 사람 죽이기를 밥먹듯하고 냉정이 아닌 감정에 디립다 휩쓸리는데다, 슈퍼맨은 당최 생각이란 걸 하고 있는 놈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캐릭터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부터가 치명적입니다. 인류의 힘이자 음험함을 과시해야 할 렉스 루터는 그냥 그런 음모들을 왜 벌리는지는 둘째치고 그런 음모벌리기도 벅차보이는 싸이코 찐따가 되어버렸고, 홀리 헌터라는 배우의 힘은 정말 너무 쉽게 갖다 버리고. 오히려 등장횟수도 적은데다 클라이맥스에서 쌈질만 하는 원더우먼이 더 돋보일 정도면......말 다한 거죠.
거기에 잭 스나이더라는 블랙홀이 합쳐지는데, 이번엔 제대로 잭 스나이더의 고질적인 문제를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 살리기는 차치하더라도, 그는 스토리의 재배열 자체에 소질이 없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적 구조 자체는 간단했습니다. 그 간단한 걸 영화가 시작하고 30분이 지나도록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를 지경의 흐름으로 끌고 가는 건 시나리오 작가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골라내지 못하는 잭 스나이더의 문제도 상당합니다. 브루스 웨인의 메트로폴리스 씬 다음에 차라리 바로 의회폭파씬으로 갔어도 효과만점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네요. 이것부터 시작해서,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이게 확 느껴질 겁니다. 원작이 탄탄한 것조차 거의 화면구성만 해서 그대로 다 떠다가 내놓는 수준이고, 나머지는 헐헐헐.....참.
파편적인 플롯들이 통합되는 느낌을 잃어버린 채 근거를 깔아야 한다는 의무에 급급해 이 얘기 저 얘기 중구난방으로 흐르고, 슈퍼맨 논란에 관한 이야기를 술취한 사람처럼 한 얘기 또 하는 모습으로 어떻든 어거지로 클라이맥스까지 오는데,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나오다 보니 말이 많아지는 한계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의 사건이 다음 사건을 부르는데 충실한 마블영화의 구조에서 좀 배웠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여간 이번에도,
DC는 깔끔하게 망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