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예상만큼 쓰레기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DC팬이었다면 아마 샘레이미의 스파이더맨3편을 보는 기분이 아니었을지.
1.
어디서부터 적어야할지 손대기 무섭네요.
2.전 '나의 슈퍼맨은 이렇지 않아!'따위의 감정은 없습니다.그런 감정은 오직 샘레이미가 만든 스파이더맨 때만 들었죠.
따라서 '나의 뱃맨은 이렇지 않아!'하는 감정 또한 없습니다.
오히려 벤 애플렉의 연기나 톤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추천하냐면 그건 또 아닌게,저스티스리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급하게 만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있어서 DC팬들에게 추천하기 미안하고,일반관객들에게는 '한시간 반 이상만 참으면 볼만해요'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다 나름 재밌었다'라고 하는 분들의 취향은 존중해드립니다만,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오늘 극장에서 숙면취하시며 코를 고는 분을 두분이나 보았네요.거짓말이라고요? 저도 차라리 거짓말이면 좋겠습니다.물론 9시반 상영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3.이 영화의 전반부가 지루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배트맨에게 슈퍼맨과 대립할 이유를 만들어줘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시간반을 넘는 시간을 할애해가며 배트맨의 고뇌와 무력함과 각오를 봐야했습니다.그걸 보는 도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차라리 벤 애플렉의 배트맨 하나를 따로 만들면 좋았을 것을.'
영화내에서 브루스 웨인에 관한 설명이 나오는 것은 세가지 정도입니다.하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것. 이건 배트맨의 고유명사와 같은 것이지요.다른 하나는 브루스 웨인의 현재 나이가 과거 아버지 나이보다 늙었다는 것-그러니까 적어도 30대 중반은 넘었다는 것.마지막은 그 짓을 한지 20년정도가 되었다는 것.
20년간 어둠속에서 범죄자를 때려잡았지만 나아지기는 개뿔 맨날 잡초처럼 여기저기 생겨나는데존나 짱짱쎈 외계인이 갑툭튀하니 그동안의 고생이 헛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을그저 대사 몇마디로 처리하는 것을 보고
마치 샘 레이미가 밴 파커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4.배트맨, 브루스 웨인이 조연이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겁니다.그런데 배트맨은 극을 이끌어가야하는 양대 기둥중에 하나입니다.영화 제목이 배트맨V슈퍼맨인 이상, 슈퍼맨과 버금가는 존재감이 있어야합니다.그런데 지금 DC확장유니버스에서의 배트맨은 최초로 나온겁니다.
놀란감독의 배트맨도 아니고, 그 이전작들의 배트맨도 아니며, 코믹스의 배트맨이 그대로 날아온것도 아닙니다.새로운 세계관에서 새롭게 창조된 배트맨인데 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날림입니다.
마치 '그동안 많이 봤으니까 대충 알잖아?'하는 느낌입니다.
이것은 DC가 가진 딜레마인데,그동안 배트맨과 슈퍼맨이 히트하고 리부트되고 하는 과정이 몇번 있었기 때문에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것은 관객을 질리게 만들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차라리 슈퍼맨은 텀이 길었으니 맨오브스틸이라도 뽑아내었지,배트맨은 놀란 감독이 잘 만든 덕분에 얼마전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니까요.
이것은 스파이더맨이 리부트 되었을 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갖던 딜레마와 마찬가지입니다.밴 파커가 죽는 장면을 이미 한번 써먹었는데, 그걸 다시 써먹자니 다 알고 있는 내용에 긴 시간을 투자하기 껄끄럽고그렇다고 대충 때우자니 피터 파커의 선행강박증을 설명하기에 모자랐기 때문입니다.스파이더맨이야 워낙 굴곡이 많은 캐릭터이다보니 그웬 스테이시를 전면에 내세워서원작을 파괴하지 않고도 피터 파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제대로 먹일 수 있었지만
배트맨에겐 부모님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진 트라우마가 처음이자 끝입니다.
5.그래, 어차피 배트맨이야 남녀노소 기본적으로 다 아는 히어로이니 넘어갑시다.
누누히 말하지만 이 영화는 한시간을 넘게 서로 싸울 이유에 대해 다룹니다.배트맨은 슈퍼맨을 미지의 위협으로 보고,슈퍼맨은 배트맨을 법을 무시하는 자로 봅니다.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여지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슈퍼맨 본인은 잘 모르지만 브루스에게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알 수 없는 존재를 넘어서지 잘난맛에 힘자랑하다가 사람들을 죽게 만든 녀석임과 동시에내 사원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든 나쁜놈입니다.그리고 마지막에 알프레도의 의문에도 '인류를 위한 일이다'라며 거창한 이유로 슈퍼맨과 맞다이를 뜨러가죠.
그런데 여기서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이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분명 인류를 위한 일이라는 이유를 대고, 불구가 된 자신의 직원이 폭탄테러를 감행하는 모습을 보고(그게 렉터의 짓인걸 알았다는 장면이 없습니다)완전히 결심을 굳힌 후였을텐데,그래서 대화를 시도하려는걸 쌩까고 선빵부터 날린걸텐데...죽기 직전에 엄마를 부탁한다는 모습에 마음이 홱 변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암시는 있었지만,무려 한시간을 넘게 대립할 정당성을 찾아헤매다가 몇마디만으로 '우리는 친구!'라는 급전개를 쉽게 이해받기는 힘들었을겁니다.이러한 흐름이 자주 보이는 곳이 전대물인데,특히 전대가 교체되는 시기에 스페셜로 방영되는 전대물을 보면 한결같이 이 패턴입니다.전 전대와 현 전대가 뭔 이유를 들어서 투닥대다가 악의 무리가 나타나자 앞의 모든 오해를 한방에 풀어버리고 힘을 합치고,그 와중에 다음 전대까지 나타나서 힘을 보태고 사라지지요.
어라, 그러고보니 지금 이 영화와 흐름이 같네요.
6.전 아직도 이 영화의 제목과 예고가 잘못되었다고 느낍니다.배트맨V슈퍼맨이라고 적어놓으면, 그리고 부제로 던오브저스티스라고 적어놓으면'슈퍼맨과 배트맨이 맞짱뜨나봐. 그리고 어벤져스같은 팀이 만들어지나봐'하고 기대하게 될겁니다. 실제로 광고도 그렇게 때리고 있고요.(DC팬들에겐 죄송합니다. 어벤져스가 먼저 나와서 예시를 그렇게 든 것 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스티스를 위한 예고편이죠.
마블 쪽의 어벤져스가 '그동안 나왔던 히어로들 결집!'이라면이 영화는 '앞으로 나올 히어로들 맛보기!'입니다.
그 방식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듭니다.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없는 다른 히어로들을 효과적으로 선전하기에 그만한건 없어보이기는 합니다.(쿠키영상 말들이 많던데, 그거 잘못했다가는 마블 따라한다고 비아냥받기 딱 좋으니까요)문제는 이 영화에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겼다는 겁니다.
배트맨도 소개해야했고, 브루스웨인의 고뇌도 이해시켜야했고,슈퍼맨의 방황도 그려야했고, 둘이 대립해야하는 환경도 만들어야했고,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모습도 비춰야했습니다.그리고 결론적으로는 힘의 한계를 느낀 배트맨이 그들을 소집할 결심을 갖게 해야했죠.
너무 많은 것을, 한편의 영화에 모두 담으려하다보니 관객들에게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물론 DC의 매력은 그 진지함에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관객이 쉬어갈틈도 없이 빽빽하게 이 일정들을 몰아넣었습니다.
다들 감독을 욕하지만, 이 모든걸 한큐에 해야하고 또 그것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보여야하니 과부화가 왔다고 생각합니다.이야기의 구조를 좀 더 따라가기 쉽게 풀어줬거나, 중간에 환기를 시켜줄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으면...아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캐릭터가 렉스 루터인데 번역을 발로해서 몰랐다고 하더이다.
7.이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원더우먼의 전투씬인데,영화 내내 이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원더우먼의 임팩트가 컸다는 말도 되지만반대로 그 이전까진 영화 전반적으로 별다른 임팩트가 없었기에 원더우먼이 상대적으로 부각된 면도 있습니다.
전투씬은 인상에 남을 정도로 호쾌한데,특히 배트맨의 액션 장면은 왜 저걸 이제서야, 그리고 왜 코딱지만큼만 보여주는지 원망스러웠을 정도.(그래서 주구장창 따로 영화를 내지 그랬냐는 이야기가...)슈퍼맨과 원더우먼이 힘을 합쳐서 둠스데이를 상대하는 장면 또한 흥미진진했는데중간에 그 흐름을 끊어먹는 감독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꼭 그렇게 갑자기 장면을 바꿔서 그렇게 오랫동안 할애해야했나?그냥 계속 급박하게 싸우다가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아이컨택을 하며 애잔함을 키우면 안되는거였니...
8.만약 이 영화를 누군가가 보겠다고 하면 신신당부해주고 싶습니다.이건 저스티스 리그를 위한 예고편이고, 기반다지기 작업이라고.그러니 어벤져스같은걸 기대하지말고 예고편을 본다는 기분으로 보라고.
덧붙이자면, 이 영화의 부제인 던 오브 저스티스의 DAWN은 새벽 혹은 여명입니다.
그렇다면 '저스티스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저스티스의 태동'같은 부제가 어땠을까 싶습니다.
기대라도 덜하게.
슈퍼맨 VS 배트맨이라는 좋은 떡밥을 들고도 시빌워와 대결을 피해서 개봉한게 의아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