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기고 간 상처와 빚으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에밀리는
어느 날 길 건너 숲속에 사는 도널드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너무나도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두 사람은 계속되는 만남으로 가까워지고 점차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고급 주택지 개발을 위해 도널드의 오두막에 강제 퇴거 명령이 내려지고
그의 오두막을 지키기 위해 에밀리는 도널드를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특별한 변화가 시작된다!
'에밀리(다이안 키튼)'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영국 햄스테드로 이주해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든든한 울타리였던 남편이 몰래 만나던 애인의 사진과 빚더미만을 남긴 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버린다. 그렇다고 아들 '필립(제임스 노턴)'에겐 그를 대신해 에밀리의 삶을 책임질 의무도, 그럴 의향도 없다. 결국 난생 처음으로 인생의 주도권을 잡아본 에밀리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에밀리 앞에 놓인 선택지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친구의 말마따나 '남편이 죽으면 또다른 백만장자를 만나서' 현재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블루 재스민>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했던 캐릭터가 대표적인 경우다. 아니나 다를까 '피오나(레슬리 맨빌)'는 에밀리를 자신의 세계에 붙잡아두기 위해, 돈 많은 세무사 '제임스(제이슨 왓킨스)'와 연결시켜려 한다.
그러나 에밀리는 '재스민'과 달리 자본과 위선으로 가득찬 이 세계에 더이상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치 않는 것들로 둘러싸인 자신의 집에서 벗어나, 자신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도널드(브렌단 글리슨)'을 택한다. 두번째, 새로운 상대를 만나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사는 방법이다. 문제는 도널드가 오두막의 주인임을 인정받아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에밀리가 기여한 바도 크지만, 어쨌거나 집 주인은 도널드다. 자본주의 백만장자 남편에서 무정부주의 백만장자 남편에게로, 결국 또다른 남자의 울타리로 건너간 게 아니냐는 얘기다.
놀랍게도 영화는 도널드의 '이 모든 게 나를 백만장자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었냐'는 대사를 통해 이 위험을 인지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리곤 에밀리가 친구의 빚을 갚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구해냄으로써 세번째, 스스로의 힘으로 제 2의 삶을 이뤄내는데 성공한다. 결국 에밀리에게 도널드는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와 계기를 얻게 되는 일종의 '롤모델'일 뿐, 구세주나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다. 거기에 에밀리의 '집'과 도널드의 '배'가 나란히 함께하는 마지막 장면은 남녀가 결혼해서 한 집에 살아야 한다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거부하고, '따로 또 함께'라는 이상적인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하기까지 하다.
<햄스테드>는 햄스테드 지역에서 집을 짓고 살다 토지권을 인정받은 한 남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과연 무덤가에서 그 어느 비싼 레스토랑보다도 완벽한 피크닉을 즐기는 주인공의 모습은 진정 무엇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질문을 던져온다. 그의 삶의 방식은 모두가 핸드폰을 쓰고, 집을 사고,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현대인들에게 타인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포용이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던지고도 있다.
거기에 영화는 동년배 여성 캐릭터를 추가함으로써 로맨스를 가미했는데, '조엘 홉킨스' 감독이 중·노년 로맨스물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라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특히 각자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동시에 서로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나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인생 제 2막'을 그림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으로 느껴진다. 마치 온실 속 화초와 숲 속의 잡초가 만나 꾸려낸, 조화로운 정원을 보는 느낌이랄까. 최첨단과 자본에 잠식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 노년의 로맨스, 거기에 중년 여성의 독립과 성장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풍요롭게 잘 어우려낸 영화다.
다만 코미디에 대한 압박 때문인지, 배우들의 연기가 오버스러운 구석이 있어 연기 디렉팅이 아쉽게 느껴진다. 특히 <팬텀 스레드>의 '레슬리 맨빌'는 이 정도로 쓰일 배우가 아니라 특히 아쉽다. 놀랍게도 '브렌단 글리슨' 만이 가장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는데, 항상 영국 꼰대 아저씨로만 나오던 모습과 달리 의외로 연애 고수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꽃과 정원을 좋아하는 중노년층 관객들이 더욱 반길 영화가 아닐까 싶다. (왜 나이가 들면 다들 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일까? 정말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