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 Marley - 레게 신이 부르는 구원의 노래 (1979)

소주정예 작성일 09.03.06 00: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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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Marley  -  Redemption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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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rising]  1979

 

 

통통 튀는 레게의 흥겨운 리듬은 절제되어 있고,

대신 밥 딜런의 포크송과도 같이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저항적인 가사가 밥 말리의 구성진 목소리에 실리는 노래.

 

마지막 정규앨범의 마지막 트랙임과 동시에,

밥 말리의 생전 마지막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곡이기도 한

'Redemption Song'은 밥 말리의 음악인생과 주제의식을

간결하게 정리한 일종의 Epitaph (묘비명)라고 해도 무방하다.

 

 

 

Wyclef Jean  -  Redemption song 

 

9.11 테러 추모공연 중에서

 

 

 

 

▣  Bob Marley (1945-1981, Jama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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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의 여름 휴양지로 알려진 중남미 카리브 해의 여러 섬들.

 중남미 서인도 제도는 옛부터 유럽 노예상들의 좋은 장사터였다.
 그곳엔 열대 기후를 이용한 바나나 농장이나 사탕수수, 오렌지 농장이 많았고
 그 농작물들을 재배하고 실어 나르는 데는 노예들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예상들은 농장을 가진 백인들에게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어온 노예들을 수없이 팔아 넘겼다.

 

 

 레게 음악 통해 저항의식 표출

 

 강제로 타향 땅에 끌려온 캐리비안 흑인 노예들의 뼈아픈 설움,

 그래서 그들은 조상 때부터 부둣가에 나와 고향 아프리카를 바라보며

 시름의 노래를 불렀고, 그것을 1950년대 이후 미국 흑인들의 R&B와

 혼합시켜 레게(Reggae)란 이름의 자메이칸 팝으로 발전시켰다.

 자메이카를 본거지로 하는 레게 음악의 대부로는 1980년대초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밥 말리(Bob Marley)를 꼽는데 그것은 그가 레게 음악의

 기본의식인 그들만의 신앙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에 기초를

 둔 가장 표준적인 레게를 구사했고 또한 전세계에 이 음악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등을 위협하는 총칼에 떠밀려 고향 아프리카를 떠나 이국만리 타향에서 인간 취급도 못 받으며 살아온

그들의 마음 속에 자라난 저항의식, 이것이 라스타파리아니즘을 토대로 레게 음악을 통해 강하게 표출되었던 것이다.

 

※ 라스타파리아니즘 (Rastafarianism)

 :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를 예수의 재림으로 숭배하는 아프리카 신앙

 

 

 

밥 말리, 그 전설의 인생 행로

 

레게 음악의 대부 밥 말리는 늘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신으로 신봉하며

무대 공연시 스플립스 담배(야생 대마초의 일종) 연기를 뿜는 신앙의식과 함께

저항적인 가사가 스며있는 레게를 끊임없이 불러댔다.
밥 말리!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밥 말리는 1945년 2월6일 자메이카의 세인트 앤스 패리쉬(St. Ann's Parish)란 곳에서
네스타 로버트 말리(Nesta Robert Marley)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꿈을 더 널리 펴지도 못하고 1981년 5월11일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공연 도중 쓰러진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겨우 36세라는 짧은 인생을 마감한 밥 말리.

그러나 그 짧은 생애를 그는 그 어떤 가수보다도 찬란한 업적으로 수놓았다.

최소한 레게 뮤직과 자메이카란 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영웅이자 위인이었다고 평가받아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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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겸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이기도 했던 밥 말리는 마치 유리알처럼 투명한 정직성을 가졌던 가수로도 유명했고,

자신이 구사하는 음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유명해진다는 사실을 극구 사양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구사하는 레게 음악이 지닌 의식을 세계에 알리는 것만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로 알고 살다 간,
단순하고 순수한 뮤지션이었다. 그에게는 부와 명예가 한낱 티끌로만 여겨졌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흑백 혼혈로 태어나 인간의 가장 비참한 밑바닥 감정을 어려서부터 깊이 체험한 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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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는 오로지 자신이 구사하는 레게 음악이 지닌 의식을

세상에 알리는 것만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로 알고 살다 간 인물이다.

 

 

 

오로지 레게만을 위해 살다간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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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어머니는 자메이카 흑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자메이카에

 주둔했던 영국군 장교였다. 물론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임기가 끝나자 그의 아버지는 밥 말리와 가족을

 남겨둔 채 영국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섯살때 처음 고향을 떠나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Kingston)에 

 1년간 머물렀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거기서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일곱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열두살이 되던 1957년에는

 아주 킹스턴으로 이주해 살면서 음악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되었다.

 킹스턴의 가장 가난하고 험한 슬럼가인 트렌치타운(Trench Town)에서

 자란 밥 말리는 가난 속에서 당연히 악동으로 자랐다. 축구와 음악에

 남달리 심취한 밥 말리는 선천적으로 보스 기질을 타고나서 사람들을

 리드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재능이었지만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따랐다.

 밥 말리는 열다섯살이던 1960년, 버니 리빙스턴(Bunny Livingston),

 피터 토시(Peter Tosh)와 함께 집에서 만든 악기를 이용해서 그룹을

 출범시켰다. 밥 말리 자신은 소울 취향의 테너 목소리였고

 버니 리빙스턴은 더 높은 하이톤 목소리였다. 그리고 피터 토시는

 매우 힘있는 바리톤 목소리여서 세 명의 하모니는 사람들을 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들 셋은 그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던 샘 쿡(Sam Cooke), 브룩 벤튼(Brook Benton), 패츠 도미노(Fats Domino),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짐 리브스(Jim Reeves),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 드리프터스(The Drifters)

같은 가수들의 음악에 심취하여 주로 그들의 레파토리를 카피해서 연주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의 밥 말리는 이미 작곡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간자(Ganja, 마리화나)와 라스타파리아니즘에 관한 노래를 여러곡 작곡해 놓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인 구원 부르짖은 라스타파리아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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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밥 말리에게 뛰어난 능력이 솟아나게 했던 라스타파리아니즘은

1887년부터 1940년까지 살았던 자메이카의 전도사 마커스 모시아 가비

(Marcus Mosiah Garvey)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카리브 해에서

인종 차별에 대해 한탄을 하느니 아프리카인은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임을 주장하다가 1925년 미국에서 투옥됐던 인물이다.

그는 1927년에 "검은 왕이 왕관을 쓰는 곳에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I)를

예언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셀라시에 황제는 아프리카에서 그 당시 '유다족의 사자왕'(Conquering Lion of the Tribe of Judah)

로 불리웠고 본명은 라스 타파리 마코넨(Ras Tafari Makonnen)이었다.

라스타파리아니즘이란 명칭은 바로 셀라시에 황제의 본명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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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교는 쉽게 킹스턴의 악동들에게 대체 신앙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 종교 의식으로 채식, 평화행진, 수행, 사색을 주로 했으며

사색에 필요한 정신통일을 위해 자메이카 야산에서 자생하는 스플립스 잎

(대마초 일종)을 담배처럼 흡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가 흔히 레게 파마라고 부르는, 머리를 새끼 꼬듯 잘게 땋아 올리거나

늘어뜨린 헤어 스타일 역시 이 신앙의식 중의 하나라고 한다.

밥 말리가 항상 자기 공연무대에서 셀라시에 황제의 대형 초상을 걸어놓고

스플립스 담배를 피우며 고뇌와 저항의 노래를 부른 것은 모두

라스타파리안 종교의식이었다.

 

 

 

팝계의 거물들도 부른 밥 말리의 노래

 

밥 말리가 처음 레코드를 낸 것은 1962년으로 그 당시 레게음악의 대가였던

중국계 자메이카 레게 뮤지션 레슬리 콩(Leslie Kong)과 지미 클리프(Jimmy Cliff),

데스몬드 데커(Desmond Dekker)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의 그룹 웨일러스(The Wailers)를 이끌고 1970년대 이후 레게 음악을

전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밥 말리의 곡들은 에릭 클랩튼(I Shot the Sheriff),

바브라 스트라이잰드(Guava Jelly), 타지 마할(Slave Drives) 같은 팝계의 거물들이

가져다 노래를 부름으로써 레게 음악을 전세계에 파습시키는 길을 터놓았다.

더구나 밥 말리를 레게 음악의 대부로 평하는 것은 그의 백밴드였던 웨일러스 출신인

버니 리빙스턴과 피터 토시가 1970년대 이후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지 2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아내 리타 말리(Rita Marley),

그의 자녀들인 지기 말리 앤 더 멜로디 메이커스 (Ziggy Marley & the Melody Makers) 등은 물론,

그를 존경하는 후배 가수들에 의해 현재 레게 음악은 전세계인들에 의해 사랑받는

팝 음악의 한 장르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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