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글을 써보네요.
인터넷 공간에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것 자체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나이 서른 둘의 숫컷입니다.
그냥 ... 항상 만나는 친구들, 가족과 여자친구 외에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하고 응원이나 꾸지람, 공감등을 얻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편하게 횽들에게 하는 것처럼 쓸게요
우리 가족은 내가 철들기 시작할 즈음 항상 뿔뿔히 흩어져 있었어.
너무 어린 나이(지금의 제 나이와 큰차이가 없네요)에 공기업 상무직에 오르셔 버린 아버지께서는 자리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드셨던지 혹은 그게 다 무슨 뜻이 있었던건지 ..... 사업에 손을 대시고 크게 실패 하셔서 교도소에 가게 되셨어(아마 사업 자금을 융통하는 과정에서 공금을 땡기셨다거나 하셨나봐).
그때 내 나이가 열둘 이었나? 어느날 부터 아버지가 보이지 않으셨고 우리는 1년에 한번씩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
그 땐 그냥 어머니가 돈 해결하느라 힘드시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다른건 몰랐어 이사할 때마다 친구들 모아서 짐싸고 이사하고 그냥 재밌게 즐겁게만 생각했으니.....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교도소에 계시단 사실을 알았어 근데 난 충격 받지 않았어 ..... 난 눈치가 빠른 아이였던거 같아 ....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보는 아저씨와 집에 오셔서 하루종일 집 청소만 하고 용돈을 주시고 그날 밤 또 가실데가 있으시다며 나가신 뒤 보이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보며 교도소에 계시다가 형사랑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었거든 (어디서 들은 적도 배운적도 없는데)....
중학교 2 학년 때 혼자 감당하기에 힘이 드셨던지 나에게 아버지 계신 곳을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그날 밤 바가지 하나정도는 눈물을 쏟으셨을꺼야 .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
그런데 ... 그 당시엔 아무렇지 않았다가 충격은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을 움직였나봐 ... 그 뒤로 나는 조금 어긋나기 시작했어...
당시 우리 학교는 상위권 아이들만 따로모아놓고 야간 학습을 시켰는데(성적은 중 상위권 이상을 유지학긴 했었어 반에서 3등? ) 야간학습에 자꾸 빠지고 선생님께 대들고 .... 그전까진 신호등 빨간불에 친구들이 건너가면 뛰어가서 다시 데리고 오던 성격이었거든 ㅎㅎ 애치고 고지식했지 ;;
나는 점점 겉넘었었나봐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 자꾸 혼자 센티해 지는 날이 많아졌어 밝았던 성격이 점점 어두어 지는것 같았어... 친구들과 놀땐 즐겁게 놀다가도 돌아서고 집에 오면 어김없는 어두움... 아무도 없는 시간들... 혼자 먹는 밥의 외로움 ... 아무것도 달라진건 없었는데........... 어머니 아버지께선 그냥 당신들의 인생을 살고 계신거고 나도 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거였는데 ... 혼자 있으면 쓸데 없이 눈물이 늘고 별 이유도 없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늘었어.... 선생님들께 대드는 일들이 많아졌고 선생님들과 상담하는 일들이 많아졌어....
어머니께선 아버지께서 남겨놓은 빚을 떠안고 그걸 해결하느라 힘드셨었어... 90년대 초반에 집에 빚만 12억이 넘었으니 .... (지금도 어머니께서 우릴 버리고 도망가지 않으신 것 만도 충분히 감사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어 )
그 빚을 해결하시는 것만으로도 벅차셨을거야 나와 형을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밥하고 빨래하시면서 사시긴 힘드셨을거라고 생각해 ... 그래서 우리는 일찍이 냉장고에 있는걸 꺼내서 밥을 비벼먹는 법을 배웠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 너는 일을 배웠나봐. 그렇게 겨울이 두번 왔고 또 갔어. 나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
고등학교에 가서도 나는 더 어긋나기만 하고 있었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술을 마셨어. 그냥 혼자 겉넘어서 '힘들다' 하면서 동네 슈퍼에서 사다 먹었어. 지금으로 말하면 허세 같은건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문학동아리에 들었어 아는 형이 가입하라고 해서 했어.... 동아리에선 술을 자주 마셨고 난 그게 좋았어... 내가 망가지는데에 충분한 명분을 줬던거 같아.
인간은 힘든 존재니까. 힘들면 술을 찾아도 되니까.... 책도 많이 읽었어. 책을 읽을 때 마음을 비우고 책의 내용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난 항상 삐뚫어진 시야로 책을 봐서 그런지 점점 고차원적으로 삐뚫어졌었지....ㅋㅋ 난 힘들고 힘들어야하고 뭐 그런 사명감 같은걸 느꼈나봐 이제와 생각컨데 난 관심이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외로웠던 건지도 모르지... 내가 힘들어하면 말뿐이든 아니든 날 위로해주고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 지금와 보면 그 땐 왜 내가 외로운거라고 나한테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 ... 그것도 알량난 자존심 이었을까?
그러다 고 1 겨울 집을 나갔어. 집을 나가서 만난 친구들과 싸움도 많이 하러 다니고 여자도 몇 만나고 막사는 기분에 도취되었다가 어느 날 집나가서 어울리던 아이들과 트러블이 좀 생겼고 그자릴 떠나야 하는 이유가 생겼어.... 솔직히 말하면 성적이 걱정됐어... 위에도 언급했지만 그건 내 자존심이었거든... 내가 아무리 삐뚫어져 있어도 내 성적은 일정 수준 이상 유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시골학교에서 그래봐야 도진개진이지만.... ㅋ ...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 어머니께 많이 맞았지..... 그냥 무표정하게 맞았어... 난 그냥 다시 학교에 가기 위해 집으로 온 것 뿐이라고 생각했어. 내 마음이 많이 병들어있었다고 생각해.
성적은 많이 떨어져 있었어. 그냥 그런 마음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었어. 반에서 20등권까지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독서실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이후에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어. 고3이 되고 한 석달? 일주일에 문제집을 13권씩 풀었어. 국어, 공통수학, 수학 1, 한국지리, 일반사회, 국사, 윤리,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영어, 총정리.... 하루에 두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었어. 수업시간에 졸지 않으려고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잠이 든적도 있었어. 선생님도 얼마나 졸리면 저러고도 자겠냐며 깨우지 않으셨대. 그렇게 석달이 지나고 나니 성적이 다시 올랐어 예전과 비슷한 성적이 나왔어 그러고 나니 좀 나태해 졌나봐 ㅎㅎ 친구들과 어울려 술마시러 다니고 놀았어.
그러다 수능을 보는 날이 왔고 수능을 치르고 나니 나름 인서울에 원서를 넣을 수 있게 되었어.
집안 사정으로 미루어 어떻게든 국공립을 가는게 맞지만 어머니께선 절대 부모님 힘든 것 때문에 애들 인생을 그르치긴 싫으시다며 원하는 학교에 가라셨어. 그래서 원서를 넣고 합격 통지를 받고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돼....
쓰다보니 기네 .... 누구나 인생은 길고 어려운 거겠지? 나도 쓰면서 그냥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네 .....
여기까지 읽었다면 재미없는글 읽어줘서 고마워 그냥 쓰다보니 내가 날 돌아보는 것 같아서 계속 쓸까 싶기도하고...
쪽팔리니 이글도 지워버릴까 싶기도 하고 그렇네 ㅎㅎ
횽들 좋은밤 되구 내일도 활기찬 하루 돼~ 이어 쓰게 생기면 이어 쓸께 ~
(아, 중간에 넣기 애매한 이야기 아버지는 내가 고2 때 출소를 하시고 조금있다가 출가를 하셨어... 아버지께서 우리를 두번 버리시는구나 .... 하는 원망도 들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많이 힘들어하셨더라고 애초에 사업에 실패하실 때도 신끼가 좀 오셨었고 어찌보면 그런 힘든 시간들이 부처님께서 옆에 두시고 싶어 그러셨다고 생각하신다고..... 아버지는 어느 절로 들어가신게 아니라 텐트하나를 들고 산으로 들어가셨어. 낮이나 밤이나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서 기도하고 .... 그렇게 몇년을 보내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