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이 읽기 불편하시다고 하셔서 고치려 했으나, 고쳐지질 않아 다시 적습니다.
이혼 소송을 당하는 입장 입니다.
저. 47세 처. 44세 자녀 중,1.2 남아 2명
짱공엔 현명한 분 들이 계셔서...
부디 한 말씀씩 부탁 드립니다.욕하셔도 됩니다.
사실 정해진거 같긴한데....
혼란합니다
이건 수정이 가능해서 오늘 변호사 사무실 근무하시는 사무장님께 쓴 글을 올립니다.
[ 내용증명 내용]
1.귀하와의 이혼을 결심
본인은 귀하와 1998년 12월 경 처음 통신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귀하와 연애 및 동거 도중, 귀하와의 성격과 가치관이 맞지 않아 귀하와 헤어지자고 말씀 드리고, 헤어지려 하였지만, 귀하께서 저에게 결혼 후, 며느리 생활이며, 아내로써도 제대로 잘 하겠다고 하여, 그 말에 믿음을 갖고 결혼을 결심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전 귀하의 댁에 인사 드리러 간 저에게 귀하의 부친께서 상당한 모멸감을 주셔서 파혼을 말씀 드렸으나, 기거하고 있는 여관까지 찾아오셔서 같이 살고 싶다고, 귀하의 부모님을 설득 시켜 달라고 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여하간,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아래에 기재한 내용과 같이 귀하는 결혼 생활에 있어서 저희 가족과 저에게 과도한 거리감과 육아에 너무도 무관심하므로 저는 설득과 이해를 시키며 무지 애를 썼지만, 이를 무시하여 잦은 부부싸움이 있었습니다.
저의 계속되는 설득과 이해를 무시하고, 계속되는 저희 가족과의 과도한 거리감 및 무시, 육아에 대한 유기 등이 있었지만, 한 번 맺은 가정 꼭 지키고 남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인해하고 설득을 시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귀하는 아래 기재한 결혼 1기, 2기, 3기 초반기까지 유기에 가까운 육아와 본인 가족과 저에 대한 무시, 집안 경제에 대한 일방적 통제 및 배임 등이 극에 달 하였습니다.
결국, 저는 공황장애, 우울증, 홧병 증세를 보이기까지 하여, 결코 저질러서는 안되는 가정 폭력이라는 행위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귀하가 내용 증명으로 보낸, 사안 중 2007년 부터 2009년 경 사이에 거짓말을 자꾸하고 외출이 잦아졌다는 것은 하등의 대꾸할 가치가 없는 사안입니다.
오히려 귀하는 00 어학원 원장으로 제직 시, 외국인 강사와의 은밀한 카톡이 저에게 발각되자,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핸드폰에 잠금 장치와 보지 못 하게 하였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또한, 과도(칼)의 사건은 제가 너무 힘들어서 도와 달라고 하였으나, 계속된 저희 가족에 대한 거리감과 방임에 가까운 육아를 참다 못하여, 차라리 이렇게 나를 피 말려 죽일 거면, 이걸로 나를 찌르라고 과도를 준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2018년 2월 9일 23시경 다툼은 아래에 기재한 내용과 같이 귀하의 무시를 참다 못해 찾아가 따지던 저에게 귀하가 한 언행에 화를 이기지 못해서 그러한 것이며, 2018년 4월 26일 23시경 발생한 가정 폭력은 변론한 가치도 없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폭력에 대한 사항은 제가 모두 잘 못하였으므로, 법원이 판결하는 데로 따르려 합니다.
하지만, 제가 큰 아이를 침대에 눞혀서 때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제가 큰 아들과 이야기하기 전부터 큰 아들이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겁니다.
다음 날 출근을 뒤로 하고, 아이들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작은 아이를 기다리던 중 귀하가 저에게 오려던 작은 아이를 귀하가 근무하는 학원으로 오라하고, 저에게 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학원으로 오라던 큰 아들은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저에게 “어제는 제가 잘 못 했다. 시험을 망쳐서 맘이 너무 아픈데, 아빠가 장난을 쳐서 화가 났었다”고 용서를 빌었고, 저는 큰 아이에게 “아빠가 나빴다. 큰 아들이 나를 용서해줘..”라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도 사라지고, 더 이상 귀하에게 믿음이 가지 않아, 귀하가 준비 중인 이혼 소송에 변호사를 선임하여 맞소송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2. 귀하에게 요구하는 사항
가. 귀하와 원만한 이혼이 조만간 진행 될 수 있도록, 현재 시세에 맞게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고 싶습니다.
귀하는 4억 9천에 내어 놨지만, 현재 시세는 4억 1천 정도 입니다.
나.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죄 없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십시오.
다. 장기 출장 중 아이에게 출장기간을 설명 할 터이니, 그 동안만이라도 아이를 보살펴 줄 것
라. 귀하가 법률 사무소 브라이트를 통하여 요청한 내용은 모두 수용 합니다.
3. 결론
조속한 이혼이 원만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부첨. 만남부터 이혼 결심까지의 과정 ? 1 부
만남부터 이혼 결심까지의 과정
너무 긴 여정이므로 결혼 1,2,3기 로 나누고, 각 결혼 회기 별로 육아, 부부유착, 친가와 처가, 경제 순으로 그간 있었던 일 들을 나열 합니다.
1.만남과 연애
1998년 경 PC 통신 시절 천리안에서 만나서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애 도중 처는 경기지역, 저는 부산이라 거의 만나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처는 캐나다에 어학 연수 차 약 10개월 가량 다녀오면서 서로 약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처가 한국에 와서 사귀는 중, 가치관이 너무 맞지 않아 고민 끝에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는 맞지 않다. 미안하다. 헤어지자”고 하였습니다.
처는 자기가 잘 할 자신 있다고, 잘하겠다고 계속 해서 저에게 구애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와 결혼하기 위해서 캐나다 생활도 접고, 서울 생활도 접었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끝까지 밀어내던 저는 정도 들었고, 처의 잘하겠다는 약속도 있고, 혼기가 차서 결혼을 결심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2002년 4월 7일 혼인을 하였습니다.
2.결혼 생활
2-1결혼초기.2002. ~ 2010
[신혼집]
본인 사업처에 가까운 곳인 영도에 기거를 원하였으나, 처가 해운대 신시가지에 살고 싶다 하여 장거리 출.퇴근 임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원하니 아내가 원하는 신시가지로 정하였습니다.
당시 출, 퇴근 시간이 각각 40분에서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신혼여행선물]
본인은 편모 슬하에 육 남매 중 막내이고, 처는 부모슬하에 오누이
입니다.
신혼여행지에서 처가 및 본가의 선물을 구입할 때 처는 시댁 식구가 많고,
처가 식구는 적으므로 형평성에 맞지 않으므로 모두 하지 말자 하였으나, 그건 도리가 아니라고
하여, 결국 옥신각신 끝에 가격에 맞춰서 본가 형제들
미화 US100에 선물 다섯 개. 처가 미화 US100에 한 개로
하기로 하여 진행 하였습니다.
[육아]
큰 아이가 생겼을 때(2003년), 출근 길 제일 먼저 장모에게 전화 해서 고맙다고 전화 드리고, 차 안에서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육아는 본인이 90 프로 이상하였습니다. 세탁, 식사, 청소, 설거지, 아이들 목욕 및 돌보기가 모두 저의 몫 이였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나 산후 조리원에서 퇴원하여 집에서 육아를 시작하는데, 제가 아이를 침대에 눕히자, 처는 아이와 같이 자는 거 아니라고, 아이를 바닥에 혼자 재우려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는 부모 심장소리 듣고 스킨쉽이 있어야 된다고 설득 하였으나, 처의 완강한 거부로 제가 혼자 애와 함께 바닥에서 잠을 청하였고, 둘째가 태어나 우유를 떼기까지 아이 둘을 데리고 약 4여년간 새벽수유를 하였습니다.
[처가 및 친가]
용돈;
처가는 부모 모두 생존해 계시고, 본가는 늙으신 모친 혼자입니다.
당시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저는 처가와 본가에 각각 십 만원씩 용돈 드리자고 이야기 하였으나, 처는 처가는 두 분이니 “이십만원”이고 본가는 편모이니 “십만원”이 타당하다고 이야기 하기에 이건 사람 숫자가 아니라, 집안에 드리는 거라 설명하며 옥신각신하다가 그래도 장인 장모에게 가는 돈이니 집사람이 원하는 데로 진행 하였습니다.
부양;
결혼 전부터 처에게 이야기 한데로 저희가 사는 곳과 저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 머니, 두 달간만 모친을 모시자 했다가, 단칼에 거절 당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서운하여 처에게 한 달 넘게 설득했으나 요지부동인 처에 더 이상 설득할 힘이 없어 포기 하였습니다. 그 모친은 2005년 경 치매 판정을 받으시고, 현재까지 요양원에 계셔서 이제는
모시려고 해도 모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죽기 직전까지 한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본가 가족 방문
또한, 막내 아들 장가 갔다고 신혼 집 구경 오신 본가 가족들에게
불손한 태도로 일관하여 2박 3일을 계획한 형제들은 1박만 하신 채, '처남, 다시는
너희 집 안 온다'는 말씀과 함께 각자 집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처가 여행
처남이 캐나다 밀입국하여 장모가 십 년 넘게 아들을 못 만났다 하여. 그간 모아 논 사업 자금의 일부를 사용하여 장인, 장모, 처 이모, 처와두 아이를 캐나다에 보내 드렸습니다. 당시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여행 전 통신비를 아껴야 하니, 전화는 너무 비싸니, 문자나, 전자우편 혹은 천리안 채팅으로 연락하자고 하였으나,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어, 제가 먼저 전화하여 도착을 확인 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딱 한 통만 왔습니다.
장모님의 대처
결혼 전 장모님께서 말씀 하시길 “만약, 처와
저 둘 사이의 문제가 있으면, 장인 장모가 이야기 하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집사람과 아이 육아 문제 및 살림 문제로 다툰 후 장모님에게 상의 드렸으나, 장모님
왈 "우리 딸이 뭐 잘 못 했는데, 이 따위로 이야기하냐, 너희 가정 교육이 잘 못 되었다"고 호되게 꾸지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시는 장인, 장모님에게 이야기 저희 집안 일에 대해서는 일절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 이모와의 동거
일본에 살고 계시던 처 이모 방한 후. 약 한 달여간 같이 저희 집에서 기숙하였습니다. 저는 처 이모이기에 별 꺼리낌 없이
잘 해드렸습니다. 처 이모는 떠나실 때, 신세 잘
지내고 간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용돈을 주셔서 뿌리치고, 오히려
제가 얼마 안되지만, 차비 챙겨 드려서 보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 이모와 장모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이제는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부부유착]
본인.
위 상황과 같이 지내다 보니, 자꾸 지침. 혼자 자취를 오래해서 결혼 전부터. 조식은 꼭 같이 함께
먹기를 약속하고, 원 하였으나, 결혼 후, 밥 아침 식사는 차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려서 불러도 침대에서 나오질 않고, 쟁반에 아침밥을
차려서 침대에 가져다 줘도 귀찮다고 안 먹습니다.
그럼 제발 부탁이니, 나 밥 먹을 때 식탁에 앉아서 같이 얼굴 보면서 커피나 차라도 마시라고
부탁했으나 이마저 거절 당하였습니다. 그 이후, 결국 아침 저녁
모두 혼자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매년 봄, 가을 2차례에 걸쳐 여자는 옷 잘 입어야 된다고 용돈 모아 각 분기 백 만원 상당의 의복을 구매하게 해주었습니다.
처.
계속 사회생활 핑계로 애 들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늦은 시각 집에 들어오지 않아, 연락을 하여도 답이 없습니다.
또한, 저의 십년지기 친구 중 몇몇을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만나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처와 처가 집 근처 스키장에서 스키 타다가 처가 무릎 미세골절 발생 하였습니다. 입원 후 병간호 도중, 십여 년 만에 오는 친구를 만나러
잠시 나갔다고 온다고 이야기 했다가. "넌
부인보다 친구가 더 중하냐"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경제]
사업 자금 이외에 제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처의 통장으로 송금 하였습니다.
저의 용돈은 제가 알아서 사용 하였습니다.
+ 첫번째 부부 싸움 ++++++++++++++++++++++++++++
아이가 없을 때, 사업초기에 거래처 확보를 위하여 저녁 접대가 길어 지다 보니, 처가 외로움을 호소하여 어떠한 접대자리라도 24시 이전 귀가를 약속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사업상 중요한 손님과 접대 약속이 있어 제 사정을 이야기하고, 저희 집과 가까운 곳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아내와 약속을 지킬 시간이 되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간신히23시 57분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처는 “시간 딱 맞춰서 오는 당신 같은 사람 어쩌고 저쩌고…” 바가지를 약
한 시간 정도 긁었고, 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 저러한 상황 이였다. 사업상 중요 손님이다. 등등 설명하던 중 처는 내 이야기는 전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빈정거렸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설명하던 도중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다가 실수로 장모가 사준 스캐너 커버가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처의 말이 "우리 엄마가 해줄 걸 부순다"고 더 공격적으로 저를 대하였고, "그게 아니라 답답해서 탁자를 친다는 게 실수로 스캐너를 쳤다. 의도 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과 백배 사과하여도 막무가내로 "넌 폭력적이고, 우리 집에서 해준 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 두번째 부부 싸움 ++++++++++++++++++++++++++++++
손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 처에게 아이(당시 1,2살로 기억)놀이방 픽업을 부탁 하였습니다. 손님과 한 참 술자리와 업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놀이방 원장님께서 전화 하셔서 애 엄마가 연락이 안 된다고 어서 아이 데려가라 하셨습니다. 우선 처에게 전화를 해 봤으나, 연락은
되지 않아,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놀이방 이동 중 처에게 계속 전화 했으나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 픽업 후 집에 도착하여 분유를
찾았는데 집에 분유는 없었고, 놀이방 원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놀이방에도 역시 분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본인에게 분유 살 돈이 없어 보리차 끓여 먹이게 되었습니다.
약 새벽 한 시쯤 작은 애 포데기로
업어 재우기 시도 중 처는 술 냄새와 함께 귀가 하였습니다.
너무 심하지 않냐고 이야기 하면서 목소리
커졌고, 결국 큰 아이 깨서 나와서 울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도대체 정신이 있냐 이게 무슨 꼴이냐, 집에 분유는 없고 엄마는 연락도
안되고, 술 마시고 새벽 한시 넘어서 들어오는거 너무하지 않느냐” 하니까
처는 대꾸도 없이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습니다.
얼굴보고 이야기 하자로 문 열라고 소리치다가, 열지 않아서 소화기로 문 손잡이 내려쳤으나, 분말형 소화기
터지고 말았습니다. 정신 없는
와중에 분말을 치우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어보니, 경찰이
와있었습니다. 처는 현관문 열리자마자
바깥으로 나가서 그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상황도 설명하지 않은 채 그렇게 부부싸움은 끝 났습니다.
아마도 이 때부터 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거 같습니다.
+ 세번째 부부 싸움 ++++++++++++++++++++++++++
싸움의 윈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도 이번에도 아이 문제였던 걸로 생각 됩니다.
부부싸움 도중에 첫 번째 싸움에 처가 했던 말이 생각 났습니다.
“우리 엄마가 해 준 것만 부순다.”
그래서, "그럼, 내가 산 건 부숴도
되지?" 하고, 내가 구매한 어항, 냉장고, 티비 다 박살 손괴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때부터 부부싸움 시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된 거 같음
2.결혼중기. 2011 ~ 2014
[육아]
본인이 여전히 70 ~ 90프로
여전 수행 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사업과 육아에 지쳐 처에게 휴직을 하고 양육을 부탁 하였으나, 커리어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였습니다.
그러면, 내가 사업 접고 애를 돌볼 테니, 당신이 돈 벌어 오라고 했으나, 처는 거절하였습니다.
특히, 처의 지인인 처의 사수 에게 사주하여 처의 휴직을 적극 말리고, 집요한 설득 끝에 사수가 경리 이사로 전직한 회사(00 어학원)에 5시 퇴근 조건으로 취업에 동의 하였으나, 9시 전, 후 퇴근은 여전 하였고, 당연히 아이들 돌보는 것과 가사는 제 몫 이였습니다.
맞벌이의 특성상 아이를 낮에 돌보는
것이 불가능 하여 아내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로테이션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시기(아이 나이 7~8세)에 가정의 따스함이 중요하니, 그러지 말고 육아에 전념해주면 안되겠나.”라고 부탁 하였으나, 처는 일방적으로 학원들을 등록 시킨 후 아이들이 저녁 늦게(약 7~8시) 귀가 하도록 하였습니다.
큰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끝에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눈치 채고, 큰 아이와 이야기 해 본 결과, 학원 때문에 너무 지쳐있고, 부모 사랑에 너무 굶주린 것을
알게 되어, 집사람의 만류에도 본인이 일방적으로 학원 모두 퇴원 시킨 후, 아이가 원하는 것 위주로 방과 후 수업진행 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계속 이상하고,
본인도 심리 상태가 이상해서 가족 모두 정신과 진료 받았고, 정신과 진단 결과 아이들은 ADHD증후군 초기 증상이 발견 되었고, 본인은 화병에 우울증, 처는 우울증 초기로 진단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덕망 있고, 진료를 잘 할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하려 하였으나, 처는 집과 가까우니, “남들 눈이 무섭다”며 반대를 하였습니다. 저는 “현재 남의 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가장 중요하다. 남들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우선은 명망 있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자”고 설득하여, 집 근처 명망 있는 병원에서 정신분석 진료를 받았습니다.
처는 의사가 권고하는 약을 아이에게 투여하길 원하였으나, 본인은 정신과 약물은 아이에게 매우 좋지 아니하니, 우선은
처의 휴직은 권고하고, 본인도 아이에게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이야기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그 때 약물에 의존하자고 하였습니다.
처.
처는 정신과 진료 이후, 울면서 퇴직하고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 하였습니다.
본인.
본인은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부모와의 바람직한 유착관계 형성을 위하여, 자전거 여행. 농구, 축구, 직소퍼즐, 레고, 크레시오브 클래, 크래쉬 로얄 등 매주 같이 하며 돌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시기 아이들 담임 면담은 제가 진행 하였습니다. 4학년 둘째가 담임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던 시기. 처는 담임을 만나지 않고, “다른 언니들 이야기 들어보니, 자기 성격에 그 여자하고 말하면 폭발 할 거 같다”고 해서 제가 상담 하였습니다. 그 후, 둘째 아이 담임은 더 이상 둘째를 편향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고, 학교 생활에 현재까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 처가 및 친가 ]
처가. 왕래 업슴.
처와 장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러지 마라 부모 병 나시고 돌아가시면, 다 헛 거다. 부모자식간에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장인과 처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며, 이야기 하였습니다. 또한, 장모님 가끔 생활이 힘들다고 금전 요청 시 처 모르게 도와 드렸습니다. 그리고 장인이 특정한 직업 없이 브로커 생활을 하시는데, 어느 날, 좋은 땅이 나왔으니 땅을 구매하라고 하시였습니다.
처음에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거니와 땅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했지만, 장인 장모의 집요한 설득으로 빚내어 처의 명의로
구매 하였습니다.
본가. 왕래 없슴
[ 부부유대 ]
여전히 늦은 시각까지 오지 않아 걱정되어
전화해도 반응 없었습니다.
주로 결혼 초반기 사수인 사람 만난다며, 늦기 일수였습니다.
처의 사수는 여자인데, 남편과 별거하는 사람 이였습니다. 처의 사수는 어느 날 저에게 “우진이 아빠 내가 외롭고 한데, 진이하고 나 다른 남자 만나도 이해 해줄 거죠?” 라는 질문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나는 당황도 하고, 어이가 없어 대답을 못 하였습니다. 제 맘에 들진 않지만, 처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처형'이란 호칭과 함께 잘 대해줬던 게 착각이라 생각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하여도 아무래도 처가 이 처형이라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감정이 전이 된 걸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았음 했으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 왜 못 만나게 하냐"는 핀잔을 듣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이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밖에 나가면, 연락이 되지 않아, "사람이 연락이 안되면 얼마나 걱정되는 줄 아느냐, 제발 죽었는지 살았는지 좀 알게 해달라"고 통 사정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결국 처가 하는 말은 '전화기를 핸드백에 넣어놨네, 전화기를 신경 쓰지 않았네, 주변이 시끄러워 몰랐네'가 주요 답변 입니다.
한 날 집에서 울부짖으며,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네가 현장에 와서 보면, 나한테 이러지 못 할건데... 내가 너한테 바라는 게 큰 것도 아니고, 그냥 따스한 밥 한끼 먹고, 애들 잘 키우고 하는 건데, 너무 서운하다." 통 사정하였는데도 별 반응도 하지 않고 완전히 돌 부처처럼 사람을 내려 보더군요. 저는 이때 "집사람에게는 아예 미련을 접어야지. 아이들이나 신경 쓰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부관계]
세 차례 거부 당하여 그 뒤로 없습니다.
본인 만나는 여자나, 성 매매 경험 없습니다.
성욕은 자위행위로 해결합니다.
이런 생활 도저히 견디지 못 할거 같아서 이혼서류 작성 후 처에게 내밀었다가 결국은 잘해 보자고 화해를 하였습니다.
본인.
2010년경 발생한 전세계적인 리먼 사태로 사업에 큰. 타격을
입어씁니다.
직원은 2억대 횡령 후 자살을 하였고, 거래처의 부도로 약 8억대의 금액을 손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혼란한 시기에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 처에게 너무 힘들다 괴롭다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돈 만들어
오라는 게 아니라, 나 좀 따뜻하게 대해달라 요청하였으나, 애정결핍이라고 무시 당하였습니다.
그 당시, 친하게 지내는 후배에게 아내와의 사이의 고민을 털어 놓으며, 연락 닿지 않는 부인에 대해 고민 이야기 하던 중. 후배는 “형수 생각에 형님이 형수 걱정에 시간 불문하고 연락하는 거 자체를 구속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인데. 그것도 아닌가? 처의 입장에서는 그도 그렇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처에게도 “그거 마저도 구속이라고 당신이 느끼면, 연락하지 않으마” 하고 그 뒤로는 신경 안 쓰기로 하였습니다.
본인 치질 수술 후, 병원에 입원 중 처는 병원에 단, 한 차례도 들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꾸 피가 나와 생리대 착용법을 알려 달라 했으나 무시 하여, 엉덩이에 붙이는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친 누나에게 물어보고서야 착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혼자 킥킥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처.
집에 있으니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직장 갖기를 원 하였습니다. 직장을 갖는 이유는 "집에 기여하는 것과 자기 만족"임을 이야기해주고 격려해 주고, 그래도 아이들과 가정은 돌봐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흔쾌히 처의 공부(아동 심리 자격 및 외국인을 상대로하는 국어 강사 자격증)를 도왔고, 처도 방과후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전세(당시 39평)로 거주하였으나, 이제 이사가 싫다며, 집을 갖고 싶다고, 아파트를 사자고 하여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는 50평형을
원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나이나 형편으로는 너무 벅차다.”며 누차 만류 하였으나, 처의 "젊었을 때 살아보지 늙으면, 이런데 살지도 못한 다고, 우리 집 갖게 되면, 더 잘하겠다"고. 집요하게 요청하여 모기지론을 이용해서 현재 거주지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거주지 구매 전에 저는 처에게 “이사
갈 집에 가장 작은 방으로 내 서재 겸 방이 있었으면, 그걸로 만족 한다. 단, 이사를
가면, 모기지론 할부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 생활비 아껴서
알뜰하게 살자”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사 후 두 달도
안되어 결국 저의 조그마한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저의 공간은 안방에서 화장실 가는 사이 전실의
일부(옷장)가 되었고, 처는
새 집에 새로운 가구를 들여 놔야 한다며, 사전 협의 없이 가구를 몽땅 맞춤하여 새 걸로 바꿨습니다.
[경제]
회사 운영비 빼고, 벌이는 모두 처의 통장에 입금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도 미래에 대해서 설계를 해야 하니, 급여 통장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으나, “나를 못 믿냐”는 답을. 듣고, “너 믿지만, 그래도 세세한 거 보다는 전반적인 걸 알고 싶다”고 이야기 했지만, 끝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표 만들어서 처가 가입한 보험 금액만 적어 달라 해도 무시 당하였습니다.
3.결혼후기. 2015 ~ 2018
[육아]
본인이 40프로 정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여전히 냉장고는 비어 있고, 밥솥은 일주에 두 번 정도는 밥 한지72시간이 넘었다는 표시가 들어 오기 일쑤였습니다.
큰 아이 사춘기가 도래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춘기의 에너지를 폭발 시키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이와 상담한 후에 드럼을 하도록 유도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축구부에 입단하여, 체육 선생님(김경석)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아이가 삐뚤어지지 않도록 지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큰 아이 중학교 때, 축구 선수 하고 싶다고 해서 겨울방학 내내 제가 개인 트레이닝 시킨 후, 00 FC의 입단 TEST를 통과 시켰습니다.
큰 아이 중 1학년 주말 연습 경기에 저는 거의 관람가서 응원하고 처는 3회 정도 참가하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주말 리그 선수인데, 일 없으면 무조건 제가 경기장까지 가서 돌보았고, 집사람 단 한 차례도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출장 중 한 겨울에 보일러 소리가 너무 크다며, 보일러를 다 꺼 놓았다고 하기에, 아이들 방에 전기 장판도 없으니, 안방으로 불러 같이 자라고 하였는데, “지들이 아쉬오면, 오겠지”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부부유착]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로 늦은 시각 들어오지
않아 연락해도 반응이 없거나, 연락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어, 지금 가고 있어.”라는 식의 답이 옵니다.
결국 12시 이전까지 집에 못 온다면 서로 미리 안전만 확인하기로 연락하기로 하였습니다.
살아 있다는 거만 아는 걸로...
한 날 이렇게 나를 피 말리게 할 거 같으면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과도를 던져 줬습니다. 이건 사는 게 아니라 죽자는 건데, 그러려면 차라리 니 손에 죽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 이혼 소송 예정 내용증명을 봤는데,
이걸 내가 칼로 위협한 걸로 기재하였습니다.
[ 본인 ]
경기가 힘들지만 열심히 해서 전세지만 건물을 통째로 빌려 공장을 제대로 꾸미고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출발 하였습니다. 처에게 공장 옮겼으니, 같이 가주면 안되냐고, 응원해달라고 했으나, 두 달간 응답이 없어 결국, 가족에게 응원 받기 위해 외식을 핑계로 공장에 데려가 구경 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공장 견학 감상을 부탁한 저에게 처는 “공장이 좀 낡았네” 라는 답만 왔습니다.
정신과 상담.
한 날 너무 답답하고 기분이 우울하여 정신과에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진단 결과는 공황장애. 우울증. 화병 이였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처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요청 하였으나, 역시, 무시 당하였습니다.
또한, 한 달에 70만원 정도하는 아파트 관리비 문제로 관리사무소와 다툰 후, 관리실 통하여 자재만 구입한 후 제가 직접 수리하였습니다. 자재비가 좀 많이 나와서 처에게 현금 영수증 받아 두라고 부탁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관리 사무실에서 현금 영수증은 불가하고, 세금 계산서 발행만 가능하다고 하여 처와 협의 후 저의 회사로 세금 계산서를 끊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처는 저에게 "내가 당신 회사 여직원이야?"라고 따지더군요. 정말 이해하기 힘 들었습니다.
결국, 별거를 하는 게 어떤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집에만 가면 죽을 거 같다고, 숨이 턱턱 막힌다고. 처는 나도 죽을 거 같으니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 처.]
학원을 해야겠다 하여, 좋은 생각이다 격려하고 학원이름 로고 같이 고민하고, 대출 받아서 차려주고 대출금은 다 갚았습니다.
학원에 행사 있을 때 마다(영어 학원이므로 크리스마스 데코, 할로윈 데코, 수업 교재 준비 등)
적극 도와 주었습니다.
[본가와 처가]
본가. 왕래 거의 업슴.
유일하게 모친 생신 날, 저희 가족과 형제들끼리 전라북도 진안에 모여
놀았습니다
처가. 왕래 거의 업슴
처가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던 중, 동네 크린토피아에서 옷을 찾아 오던 중 운영권을 내 놓아야겠다. 는 운영자 말에 그거 다른 사람에게 말씀 마시고, 저에게 주시라고 빨리 결정하겠다고 하고 처와 상의하여 장인 장모님 내려오셔서 저거 운영하시게 하면, 노동의 강도도 크지 않고, 양쪽 모두 편안할 거 같다고 하고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보자고 했으나, 장인 장모님의 의견을 존중하여 포기 하였습니다.
[ 경제.]
통장 카드 계산해보니, 2015 년 부터 집에 정식으로 가져다 준 게 세 후 연봉 개념으로 약 칠천~팔천이고, 본인이 회식이나 아이들 의복, 아이 선수 장비, 여행 경비 등등 합하면, 약 9 천 언저리 연봉으로 계산 되었습니다.
저는 처에게 이정도 연봉이면 우리는 대한 민국에서 상위 5% 이내의 삶이데, 내 생각엔 가정 경제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발 통장 좀 보고 같이 머리 맞대고 상의 하자고 하였으나, 처는 여전히 집안 통장 열람 거부 하였습니다.
결혼 생활 중기에 이야기한 내용 데로 빈칸 채워달라 통사정 하였으나, 여전히 무시하여 본인이 보험 약관 통 다 뒤져서 보험사 알아내고 보험사 전화해서 도표를 완성 하였습니다.
도표 보내면서 집에 너무 많은 금액이 들어가니 조금 아끼자고 검토 부탁했으나, 식대와 외식대가
작게 책정 되었다고 답이 왔습니다.
나도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관념적이 이야기로든 어떠한 형태로의 회신 없었습니다.
큰 아들 훈련 중 다쳐서 병원 응급실 치료 후, 제가 직접 보험금
청구해 보니, 그간, 아이들 보험만 들었지, 보험금으로 지급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보험금 청구에 신경을 써서 잘 청구하라 하였더니, 알아서 잘 챙기겠다고 하더니, 이런 경우가 생겼습니다.
[처가.]
장모의 금전요구 한 차례 도와 드렸으나, 두 번째는 회사 사정
말씀 드리고 거절 하였습니다.
장모가 처에게 재차 요청 하였고, 처가 속상했던지 울며불며 난리를 쳤습니다.
오빠는 캐나다에 있어서 자기가 다 해야 하는데, 미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고 달랬습니다.”
+ 네번째 부부싸움 +++++++++++++++++++++++++++++++++
발단,
2월 6일 23시경 접대 후 귀가 하였습니다.
과음에 너무 피곤하여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물 한 잔만 달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아무도 물 한 잔 안 주더군요. 물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역시
난 이 집에서 이런 대접이군.’ 하며, 한 숨을 뒤고 있는데, 너무 조용한 집 화장대에서 처가 크림 바르는 소리만 들리더군요. '톡, 톡, 톡......'
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처에게 가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서운하다 했더니, 니가 떠다 먹음 되지 왜 나한테 그러냐...
말문이 막혀서 우이씨~~ 소리와 함께 문을 화장대쪽으로 팍 밀쳐서 화장대와 문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처가 말하기를
"그래 다 때려 부셔라! 너는 내가 이혼 해주길 바라잖아! 지금 꼬투리 잡으려는 거잖아. 니가 잘하는 것처럼 다 부셔!"
그래서 문짝 잡아 뜯고 화장대를 드라이기로 쳐서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처는 이불 가지고 안방에서 나가서 거실 소파 기거하였습니다.
계속되는 휴전 상태
본인은 2월 10일에 타 지역 장기출장 (약 25일반)으로 명절에
집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처와 아이는 미리 예약한데로 구정 연후 기간 중 처의 사수, 사수 아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 경비 중 항공 숙박은 본인이 부담 하였습니다..
여행지에서 아이들이나 처에게서 단 한 통의 문자나 카톡도 없었습니다.
겸언적은 마음에 처에게 “잘 지내냐”라고 톡을 날렸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추후, 가족 톡방에서 서운하다고 이야기하니, 큰
아들만 '할라고 했는데.. '라는 답장 왔습니다.
별거(여건이
되질 않아 5월 경) 하겠다고 이야기 하였고. 집사람도 동의 하였습니다.
4월 26일경
지인과 음주 후 귀가 하였습니다.
큰 아들과 이야기하던 중 버릇 없는 행위에 훈계하다가 아이의 행위에 화가 돋아 손찌검 하였습니다. 처는
큰 아이 방에 들어와 말리다가 저에게 손찌검 당 하였습니다.
처는 경찰에 신고 후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 갔습니다.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 거실 대리석. 티비
손괴 하였습니다..
중국출장 후 귀국하니, 장모 와 계셨습니다.
장모에게 그간 사정 다 말씀 드렸습니다.
장모는 딸과 이야기 하겠다고 처와 함께 나가셨습니다.
이야기하고 들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 딸은 하나도 잘못 없다 하십니다.
5월 5일 찬거리가 없어 찬을 만들던 도중 00경찰서에서 출두명령 조서 쓰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5월 6일 집사람 간단한 카톡 왔습니다.
"당신도 알겠으나, 제 짐을 다 빼서 나왔어요."
저는 모두 포기 하였습니다.
현재 ++++++++++++++
처 폭행으로 고소장 접수. 전치 2주 : 6월 27일 가정법원에 소환 됨.
폭행으로 의한 이혼 소송 준비 중(등기 받아 봄)
[ 본인 생각 ]
폭행
무조건 잘 못함. 생각할 가치도 없슴 모두 인정하고 법이 시키는 데로 할 생각.
이혼
지쳐서 더 이상 혼인 생활 못 하겠슴.
가장 공포스러운 게 처가 미워졌음
가끔 얼굴만 봐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옴.
양육권 친권 포기
사유.
장기출장 중 아이에게 만일 일이 생기면 출장 시 돌보기가
불가능 함.
아이들은 도우미를 원하지 않음. 본가 형제는 너무 멀리 살고 있슴.
출장 후 저녁 열시 경, 둘째아이 저녁 밥.... 및 집 냉장고
이게 계속 이럽니다.
카톡 내용
중국 출장 중 한겨울에 방안 보일러 꺼놓고 대처하는 자세
정말 힘들다고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이마트 장보러 갔는데.. 큰 아들 신발이 찢어진거 발견하고....
신발 사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