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연을 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펜타5 작성일 18.08.20 18: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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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연을 끊고 살아가고 있는중입니다. 저는 아들 하나이구요

 

사실은 여기 글을 올리고 어떤 댓글이 달리더라도 제 마음이변할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되기 까지 가장 큰 계기가 된것은 제 딸아이가 태어나고부터였던것 같습니다.

 

딸아이를 키우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예쁜 자기 자식한테 우리 엄마는 나한테 어떻게 그럴수가 있었을까?

 

보통 자식을 키워보면 부모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점점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제 기억이 6살 7살부터 시작이니 그때 부터였겠죠 좀더 전일수도 있구요. 6살 7살 무렵부터 엄마에게 

 

정말 심하게 맞았습니다.여러분들이 말하는 "다 부모한테 맞고 자라는 거야 나도 많이 맞았어" 라는 수준이였다면

 

저도 좋을것 같네요. 맞은 이유는 늘 비슷했습니다. 시장이나 어디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면 하루종일 저를 끌고 다니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보통 5시간 이상? 그정도 되면 아이들은 당연히 힘들겠죠 집에 가고 싶다고 찡찡대면 "넌 왜 다른 집 애들처럼

 

구순히 따라다니면 되지 이렇게 지랄이냐고 넌 집에 가면 죽을줄 알라고" 그러는 순간 저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사색이

 

되었습니다. 집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문이 열림과 동시에 저를 구석으로 쳐박아

 

놓고 때리기 시작합니다. 발로 막 밟을 때도 있고 주로 가느다란 쇠파이프 같은게 있었는데 그걸로 많이 맞았습니다. 그냥

 

닥치는대로 맞았습니다. 막아도 별수 없고 울어도 별수 없고 온몸에 피멍이 들어서 제발 그만좀 때리라고 해도 때리고

 

화가 다풀릴때까지 맞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도대체 내가 왜이렇게 맞아야 되나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항상 그러면서 하는말은 "넌 왜 다른집애들 같지가 않고 유난히도 지랄이냐고 다른집 애들은 아무소리 않하고 잘 따라다니

 

던데 도대체 너는 왜그러냐고" 그렇게 유년기를 맞으면서 자랐습니다. 아빠는 뭐 엄마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분이라

 

제가 그렇게 맞아도 별 말씀 없으셨습니다. 뭐 그래도 아빠한테는 큰 원망은 없습니다. 저런 엄마와 같이 사셨으니

 

초등학교 시절에도 크게 다를건 없었는데 그때는 다른 이유로 맞았습니다. 놀다가 늦게 들어온다고 위에 설명한것처럼

 

그때도 그냥 닥치는대로 맞었습니다. 입술터지고 피멍들고 학교가면 맞은 자국 애들한테 보여주지 말라고 하고.. 아들이

 

저하나여서 외로운게 너무 싫었었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라던지 컴퓨터가 있었으면 집에를 좀 일찍 들어왔을수도 있

 

었겠네요 밖에서 친구들과 놀때도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더 놀면 들어가서 또 맞을텐데 들어가서 또 혼자 멍하니 

 

있는건 싫고 밖에서 놀때마다 항상 그 고민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어린나이에도 엄마랑 같이 있는게 싫었습니다.

 

아...공부를 안하고 미친듯이 놀았다고 하기에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담임선생님들 마다 여기 있기는 아까우니 서울쪽으로

 

중학교 보내시라는 말을 매번 들었으니까요. 초등학생 시절에 하루에도 몇번씩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때도 못죽은 이유는 엄마가 슬퍼하시겠지가 아니라 아플까봐 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줄 알았거든

 

요 내가 정말 다른집 애들 같지가 않고 지랄맞은 애여서 그런가보다. 나랑 같이 논애들도 집에가면 나처럼 엄청 맞을거야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해할수 없는 일중 하나인 일이 초등학교 6학년때 생깁니다. 전날에 엄마랑 아빠랑

 

부부 싸움을 하셨는데 뭐 그런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는데 저를 끌고 친척집으로 데리고 가더라구요

 

그리고는 이제부터 너는 여기서 학교를 다니라고 전학을 시켰습니다.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고 있었는데 친구들한테 잘있어

 

라는 말 한마디 못해보고 몇일후에는 생판 모르는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게 됐습니다. 그때도 뭐 초등학생이 무슨 힘이 있겠

 

습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사는거지 그런데 몇일 뒤에 아빠가 엄마를 찾으러 오더니 두분은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저만

 

남겨두고요 그래서 혼자 친척집에 얹혀 살면서 초등학교들 다녔네요 근데 당시에는 서운하다기보다 엄마랑 떨어져있어서

 

좋았던것 같습니다. 이제 때릴 사람이 없으니...오랜만에 엄마를 봐도 별로 반가움이 없었고 그런 저를 보면 항상 "다른집

 

애들은 엄마랑 좀만 떨어져도 보고싶다고 난리라던데 저건 어떻게 저러냐며 어디서 저런게 태어났냐고" 이렇게 글을 써

 

놓고 보니깐 이 이야기들이 다 뻥이면 좋겠네요. 그렇게 타지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동네에서 다니게 될줄

 

알았는데 중학교도 타지에서 혼자 다니게 하더군요 동네에서 다니고 싶다고 말했는데도 서울쪽 학구열 높은곳에 위장전입

 

까지 시켜서 그쪽에서 학교를 다니게 하더군요 그렇게 타지에서 다시 중학교 시절이 시작되었고 그러다가 하교길에 교통사

 

고를 크게 당하게 됩니다. 트럭에 치였는데 죽지는 않았고 발목쪽이 아작나서 2달간 병원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고가 나니 그때야 동네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 올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3부터는 맞는 일이 없었

 

습니다. 맞는게 너무 싫어서 그때부터는 피하거나 막고 힘으로 제압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화가 나면 온갖 욕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욕내용은 차마 입에 담을수도 없어서 안올릴게요.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기숙사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17년동안 살아오면 처음으로 행복이란 감정을 느꼈던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단한번도 사는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거든요. 기숙사를 가니 친구들이랑 매일매일 같이 자고 외롭지 않고...무엇보다 지금생각해보니 어머니랑 떨어져 있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이후는 육체적 보다 정신적으로 괴로웠거든요 "옷이 그게 뭐냐 밥먹을때 누가 그렇게 먹냐

 

다른집애들은 벌써 뭘 한다더라. 용돈이 니가 뭐가 필요하냐 다은집애들은 용돈 줘도 그대로 남겨서 엄마 다시준다더라".

 

집에 있으면 이런 이야기를 눈뜰때부터 눈감을떄 까지 들어야 하니깐 기숙사가 저한테 천국이였어요 그래도 이모든걸 다 

 

참은 이유는 성인이 되면 벗어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어서였습니다. 그래도 성인이 되면 뭐라 안하겠지 성인이

 

되면 그래도 자유가 허락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버텨왔었는데 뭐 허튼 생각이였죠 대학생이 되고 얼마 안되서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우리집의 모든짐은 내 어깨에 옮겨지게됬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 돌아가시는게 내가 쓰고도

 

뻥이였으면 좋겠네요 이떄부터 본격적으로 엄마의 한풀이가 나에게 시작됬습니다. "서방복 없는건 자시 복도 없다더니 

 

어디서 저런걸 낳아서 내가 미역국을 먹었나" "저게 지 애비 잡아먹고 나까지 잡아먹을려고 한다" "니가 지금 놀때냐

 

다른집애들은 대학교가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서 장학금타고 용돈도 준다던데" 이런 이야기들을 제가 눈에 보일때 부

 

터 시작해서 본인이 지치실떄까지 계속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집밖에서 서성거리다가 불꺼지는거 보고 들어갈때도 많았

 

어요. 대학생이고 남자인데 12시넘으면 문을 걸어잠그셔서 들어오지말라고 해서 밖에서 잔적도 많았고....돈이 필요해서

 

알바를 하면 어떻게 아셨는지 니가 알바를 하면 집에 도움이 되어야 되지 않겠냐고 돈좀 달라고 하시고 과외를 물어오셔서

 

저한테 시킨다음에 반은 가져가신적도 있고...그래서 20대 내내 알바하고 알바하고 알바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알바를

 

하면 저한테 수고했다 고생한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까지 그렇게 알바 나부랭이나 하고 있을거냐 니가 돈이 뭐가 필요하냐

 

다른집 누구는 벌써 공부해서 뭐가 됐다더라..." 

 

그렇게 돈이 맨날 없으니 물욕이라는것도 사라지게 되고 점차 자신에게 박해지고

 

돈 쓰는 법을 까먹게 되더라구요. 옷도 싸구려만 사입고 먹는것도 싼것만 먹고 어딜가도 싼거 싼거 자존감은 점점 떨어지는

 

데 옆에서 엄마는 "옷좀 좋은것좀 사입지 알바해서 돈번거 다 어쩌고 맨날 저런 거지 같은것만 사입냐"

 

"누가 너보러 공부하랬지 알바하랬냐" 이런 이야기를 눈뜰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합니다. 술먹고 취하면 취한애를

 

새벽에 꺠워서 비몽사몽인 애를 앞에두고 두시간에서 세시간 동이 틀때까지 " 맨날 술만 쳐먹고 돌아댕기고 어쩌고 저쩌고"

 

너무 힘들어서 내일 뭐라고 하면 안되겠냐고 말하면 동틀떄까지 욕하고 다음날 저 눈뜨자마자 다시 기다렸다는듯이 욕설과

 

잔소리.....쓰다보니 고민상담이라기보다는 그냥 인생 넋두리를 하고 있네요 긴글 읽어주고 계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다가 취업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200정도 벌었던것

 

같은데 태어나서 통장에 백단위가 넘는 돈이 처음으로 있던거 였으니까요. 그동안 참아왔던걸 하나씩 해보고 싶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취업을 시작하고 엄마는 일을 그만 두셨고 이제까지 내가 힘들게 일했으니 이제는 니가 벌어온

 

돈으로 살겠다고 하셨습니다. 뭐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였습니다. 나만큼 엄마도 아빠없이 고생한건 사실이니깐 ...

 

넌 돈이 있으면 다 써버리는 성격이니 월급의 반은 무조건 내놓으라고 그때도 그냥 알았다고 했습니다. 워낙 참는데 

 

익숙했던지라 그래도 100만원이면 내기준에는 할거 다하고 살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다니던 직장을 옮기게

 

됬고 어쩔수 없이 공백기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줄돈은 없었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직장 구할때까지

 

줄돈이 없으니 이해해달라. 그런데 돌아오던 대답은 "그러니까 그렇게 돈을 펑펑쓰고 다니면서 여자나 만나고 기집질을

 

해대니 돈도 못모으고 이렇게 되는거 아니냐 난 모르겠고 한달에 100만원씩 무조건 내놔라 없으면 빚을 져서라도 내놔라"

 

그래서 정말 카드빚을 져서 직장이 없는 시절에도 돈을 줬습니다. 그리고 새직장을 얻으면 그동안 빚질건 갚느라 다시

 

예전 생활로 회귀 이게 반복 또 반복 그러다가 나이는 32이 되었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결혼 하고 싶다는 아내에게 솔직히 이야기 했고 난 모아놓은돈이 정말 하나도 없다. 결혼하면 고생하게 될거고 무엇보다

 

넌 우리 엄마를 견뎌낼수 없다. 오빠니깐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다른 애들같으면 벌써 자살했을거라고 그래도 아내는

 

저를 믿어줬고 오빠만 자기 편이 되어준다면 자기는 견딜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천사같은 아내를 만난게 운이 지지리도

 

없던 내삶에 유일한 행운이였던것 같습니다. 결혼에 드는 모든 비용 전체를 아내 돈으로 해결을 했고 집은 작은 아버지가

 

아빠 없이 사는 제가 불쌍했는지 본인집중에 한곳에 무상으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결혼전부터 엄마의 반대가 심했

 

습니다. 딱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디서 저런거를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와서는 삐쩍 말라가지고는 꼭 거미 같은게 애나

 

제대로 낳겠냐고 대학도 4년제도 못나와서 너랑 급이 안맞는다고 다른집들은 예단을 얼마를 가져왔니 뭐를 받았니..

 

모임가면 난 할말이 없다느니..." 모자관계를 떠나서 전 인간대 인간이 저런말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 엄마인데 나 여기까지 키웠는데 어쩌겠냐...아무것도 모르는 친척들은 만날때마다 "니가 그래도 엄마한테 잘해야지 

 

엄마 혼자인데 니가 잘해야한다" 그떄마다 잡고 다 설명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예예 하며 알겠다고 알하고 다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고 솔직히 처음에는 와이프랑 같이 산다는 기쁨보다는 맞벌이를 하니 당장 내일 돈 걱정안해도

 

된다는 사실이 더 기뻤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로부터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엄마와는 한달용돈 70에 합의를 봤고 엄마가 사는집 관리비랑 핸드폰비를 책임지기

 

로 했습니다. 와이프에게 감사합니다. 이래도 우리 부모님은 왜 용돈을 안드리느냐는 말 한마디 없이 이 모든 상황을 이해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결혼초에 잠시나마 고민을 잠시 덜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태어났고 애기 

 

키우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돈이 참 많이 듭니다. 이것저것...없으면 없는대로 키우면 되지라고들 말씀하시는데

 

한맺힌게 너무 많았는지 적어도 내 자식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뭐 최고로 좋은것만 해주고 먹일수

 

있지는 않지만 남부럽지 않을 정도는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살아오다가 저는 조그맣게 사업을 시작했고 제 예상과

 

다르게 사업이 잘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한달 수입을 확인해보니 800만원 한달에 800만원을 벌었더라구요. 어벙벙

 

했습니다. 제 통장에 그런돈이 처음 있어봤거든요. 그떄 눈이 좀 뒤집혔던것 같습니다. 그동안에 한을 풀듯 먹고싶은거

 

사고 싶었던거를 꺼리낌없이 샀는데 제가 눈이 뒤집혀 봤자 남들이 보면 아마 귀엽다는 수준이였을거에요. 그래도 돈이

 

한참이 남더군요.....와씨.....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씨x 살만한데....사는게 재미있을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결국 돈이였나봅니다 그동안 억눌렸던것에 대한 해방감을 맛봐서 인지...처음으로 행복하더군요....행복이 아니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생에 처음으로 느껴봤던 감정인것만은 분명하니깐요. 그리고 놓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돈없는 생활이 너무 싫었고 지긋지긋했으니까요....그렇게 잠시 행복을 누렸었는데 본격적인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됬고 와이프는 육아 휴직 기간이 끝나서 복직을 하게되었습니다. 아이를 봐줄 사람 없고

 

엄마는 자신이 애를 봐줄것을 자청하셨습니다. 솔직히 싫었습니다. 그런 엄마 밑에서 애가 자란다는것이 그런데 뭐 우리나

 

라 보육 시스템상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결국 엄마는 매일 우리집을 드나들게 되었고 그만큼 와이프랑 많이 마주 칠수 밖에

 

없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잔소리...폭언....퇴근하고 집에 와보면 와이프는 울고 있고....왜 우냐고 물어보면 듣게

 

되는 황당한 사연들..... "관리비를 보니 수도세가 왜케 많이 나왔냐 물을 아끼지 않고 펑펑써대니 이렇다" 

 

"게을러 터져서 집이 더러운것 봐라" "회사가 끝났으면 바로바로 와야지 무슨 유부녀가 회식이냐" 그리고 제일 황당한건

 

내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전 성인이 되서부터 엄마한테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기승전

 

잔소리와 욕으로 대화는 끝이 나기 때문에 될수 있는대로 도화선이 될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아무말도 안하

 

고 있으면 니네 혹시 싸웠냐 왜 아무말이 없느냐... 아니라고 우리는 싸운적이 없다고 해도 "아니다 내 척보면 안다 니네

 

분명히 싸웠다 누굴 속이려 드느냐 내가 이렇게 맨날 싸우고 이럴지 알았다 내가 뭐라했느냐 이러니깐 결혼을 반대한거

 

다" 이미 본인 말이 다 맞다는 전제하에 내가 무슨말을 하던 그건 다 거짓말이고 변명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됩니다. 그리고

 

와이프를 앞에 대놓고 하는말이 "쟤가 원래 저런애가 아닌데 너 만나고 저렇게 됬으니 니가 책임져라 내 아들을 다시 돌

 

려놔라" 저에게는 "니가 지금 속고 있는거다 정신차려라" 이 모든일들이 거짓말 같지만 실제 있던 일들입니다.

 

제가 그래서 " 내가 그러면 이혼이라도 하면 속이 시원하겠느냐 "라고 했더니 "차라리 이혼을 해라 애기는 내가 키울수 있

 

으니" 라고 하더군요 이런 생활이 몇개월이 반복되었고 와이프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가 애기를 키우면 안되겠냐고 묻

 

더군요 와이프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런대 당장 그러라고 말을 못했습니다. 저 혼자 버는걸로는 다시 생활이

 

빠뜻해 질것 같았고 돈없는 생활이 너무 싫어서 그떄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와이프에게 울면서

 

부탁했습니다. "니 상황 다 이해하고 힘든거 아는데 그렇게 되면 또 돈없는 생활로 돌아가게 되고 난 이제 다시는 그떄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고" 지금 생각하면 못할말을 했죠. 근데 그때는 그랬어요 와이프에게 미안합니다. 와이프는

 

너무 고맙게도 자기도 그럼 좀만 더 참아보겠다고 말을 했고 직장을 더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나아진것은 없고 

 

같은 생활의 반복....퇴근하고 집에 와보면 와이프는 울고 있고 저에게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고...엄마한테 진지하게

 

이야기 해본적이 있습니다. 같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자 이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것 같다. 그때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설은 거의 다들은것 같습니다. "니까짓게 어디서 나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느냐 기집한테 혹해서 지 애미

 

를 정신병자로 모는 새끼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나도 불쌍하지만 엄마도  불쌍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와이프는

 

회사를 그만 두었고 딸을 혼자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좋아하더군요 자기는 아이랑 함께  있는것이 너무 좋다고

 

나는 돈이 없어도 이렇게 셋이 있으면 너무 행복하니 오빠도 너무 돈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더군요.....할말이 없었습니다.

 

정말 하염없이 울었던것 같습니다.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와이프는 저렇게 말했지만 돈더 많이 벌어서 우리 모두

 

행복하게 해줄게라고 다짐했습니다. 와이프가 애를 보니 엄마가 집에 찾아오는것은 줄어 들었고 올때마다 푸닥거리가

 

이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만했습니다. 딸아이가 커서 5살이 됬는데 정말 너무 너무 예쁩니다. 이 세상 모든것을 줘도

 

바꿀수 없을정도로 사랑스럽습니다. 그때 부터 제 유년 시절이 겹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저런 자식을

 

그렇게 때릴수가 있었지?.....난 감히 딸을 때린다는것을 상상조차 할수 없는데? 솔직히 억울했습니다. 항상 어린나이에

 

맞을까봐 눈치보고 긴장하고 실패하면 혼나고 그렇게 유년 청소년기를 보내온게 너무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엄마에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내가 엄마랑 멀어진건 와이프 떄문이 아니다. 딸을 낳고 보니 나는 더욱더 엄마란 사람을 이해할수가

 

없다. 그 어린애한테 어떻게 그럴수가 있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전 그냥 그때는 미안했다 나도 애를 처음 키우니 그래야

 

되는줄 알았다고 얘기 할줄 알았습니다. 그렇게만 이야기 했어도 전 그냥 다시 묻고 참으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더군요"부모가 자식한테 그럴수도 있지 니가 다른애들 같지가 않고 유별나게 지랄맞으니 그런거 아니냐

 

그걸 이제 와서 나한테 앙갚음 하겠다고 이런거냐"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내가 출퇴근길도 멀고 너무

 

몸이 힘들고 괴롭다 그러니깐 나봤을때 잔소리좀 그만하면 좋겠다" 그러자 하는 말이 "그러게 누가 그딴데다가 직장을

 

얻어서 그딴 직업을 가지라고 했느냐 그러니깐 내말 들어서 공부해가지고는 공무원이나 되라니깐 힘들다고 찡찡 대느냐"

 

이날이였던것 같습니다. 얇게 나마 이어져 있던 그래도 내 엄마인데 라는 유대감과 불쌍했던 마음이 끊어졌던게....

 

그 이후에 선언했습니다. 아버지 제사 명절 차례 모든것은 내가 다 책임질거고 엄마에게 하던 경제적 지원도 계속 될거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에게 정서적인 부분은 기대하지 말아달라 그렇게 해서 엄마와 연은 끊기게 되었고 그게 1년이 되었네요

 

쓰다보니 글이 엄청 길어졌고 솔직히 못한 이야기도 많은것 같습니다. 사실은 도움이라기 보다 어디엔가 가슴속에 있던

 

이야기 한번 시원하게 하고 위로 받고 싶었나봅니다. 그동안 고생했다 수고많았다. 

 

다시 한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짱공인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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