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들 빼! 뭐하는 짓이야!"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DMC 누리꿈 스퀘어 3층 회의장. 최신식 회의시설을 갖춘 이곳에 눈물섞인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구본홍 사장 내정자의 취임 여부를 결정하는 YTN 주주총회를 막으려는 노조원들의 절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사측은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14일 첫 주주총회를 연기했던 사측은 이날은 작심한듯 검은 정장을 입은 용역직원들로 단상 아래 견고한 산성을 쌓았다. 용역직원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노조원들의 접근을 막았다. 마치 이명박 정부의 '명박산성'을 이곳에서 보는 듯했다. 소통을 거부하고 밀어부치는 모습이 닮았다. YTN을 지키고 달려온 시민 100여명은 아예 주주총회장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역부족이었다. 구 사장 내정자의 취임을 막을 길이 없어 보였다. 여기 저기서 노조원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서럽게 우는 여성 노조원들도 보였다. 안쓰러워서 눈 뜨고 보기도, 귀 열고 듣기도 힘들었다.
"(단상 위에 있는 사람을 보며) 당신이 선배 맞습니까? 술마시면서 기자 정신을 얘기했던 사람이..."
"어디서 깡패들을 데리고 와서 난리야!"
"구본홍은 물러가라!"
기자들의 시선이 노조원들에게 쏠여 있는 사이, 김재윤 주총 의장이 단상 위로 입장했다. 노조원들이 미쳐 항의할 시간도 없이 김 의장은 머라고 잠깐 중얼거리더니 바로 의사봉을 두드렸다. 불과 20여초. 이렇게 구본홍 사장의 YTN 취임 안건이 통과되었다. 날치기였다. 사측은 밤을 새워가며 YTN을 지켰던 촛불과 노조원들의 '낙하산 사장' 반대라는 요구를 날치기로 무참히 짓밟았다.
김재윤 의장을 비롯한 사측 관계자들은 바로 뒤쪽 비상출입구로 나갔다. 노조원들이 쫓아가봤지만 잡을 수 없었다. 성난 시민들은 피켓을 들고 "구본홍은 물러가라"라고 외쳤고 일부 시민들은 용역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부상자도 발생했다.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단상에서 용역직원들에게 밀려 바닥으로 떨어지며 머리를 다쳐 피를 쏟았다. 다행히 시민 의료진이 응급처치를 했다. 또한 용역직원들 사이에 끼어 질식한 시민도 쓰러졌다. YTN 노조원 중에서 한 명이 코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통령을 만든 언론인이 낙하산을 타고 사장이 되는 시대.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내치는 시대. 피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는 시대. 2008년 7월 17일, 나는 책에서만 봐왔던 암울한 7,80년대를 다시 경험했다.
용역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시민들과 노조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YTN 힘내세요, YTN 사랑해요!"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쥬쥬바'를 몇 박스 들고 노조원들에게 건네는 시민도 있었다. 노조원들은 "주주총회는 무효다"라고 선언하고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눈물을 닦아낸 노조원들과 시민들은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투쟁이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씩씩하게 외쳤다.
새벽 5시 반에 부천 집에서 나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제부터 출근저지 투쟁해야겠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