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 조기영어교육의 정치경제학

가자삐카츄 작성일 08.08.03 22: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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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 조기영어교육의 목적

제2의 IMF가 올지 모른다는 경제위기설이 유포되고 있다. 정부는 10년 전의 불쾌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젊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용어를 동원해 '3차 오일쇼크'라고 규정한다. 이 어려운 상황을 맞아 조기유학, 조기영어교육이란 말이 신문지상, 방송지상에서 싹 사라졌다. 하지만 조기유학과 조기영어교육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만큼 조만간 다시 사회 문제로 떠오를 것은 확실하다.

몇 년 전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녀에 대한 영어교육이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최상위의 가정에서는 아예 미국이나 영국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아래쪽에 조기유학이 있었다. 물론 조기유학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미취학 시절에 유학을 가느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재학중에 건너가느냐는 차이 말이다.

사람들은 조기유학, 조기영어교육을 통해 자녀의 사회적 신분이 유지되거나 상승하기를 기대한다. 그 목적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유창한 영어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또 유창한 영어는 충분한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런 생각이 믿음이 아니라, 진실일 때 발생한다. 조기유학과 조기영어교육으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충분한 투자를 해야 원어민에 가까운 언어구사능력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민 자녀는 그 만큼의 투자를 받지 못하고, 당연히 '콩글리쉬'를 구사하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조기유학, 조기영어교육이 옳은가, 또 영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사회적 평가가 결여된 상태에서 조기유학과 조기영어교육이 묻지마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실 일생동안 영어 한 번 제대로 구사할 기회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영어는 사람의 가치조차 재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야말로 우리는 영어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조기유학의 성공률은 5~10%

조기유학을 통해 애초에 설정학 목표가 달성될 확률은 성공률이라고 한다면, 실제 성공률은 5~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는 조기유학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또 일부는 오히려 유학을 가서 더 나쁜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이국 땅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이미 언론지상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조기유학생 중에는 알콜이나 약물중독, 학업 중도탈락생 등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또 이와 동시에 정상적으로 가족과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유형, 사회부적응, 부모와의 애착관계 미형성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질환이 수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유학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자녀를 조기유학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최소한 중산층 이상이어야 한다. 이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과잉경쟁 끝에 이른 바 '스카이 대학'에 입학해도 그 이후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하버드, 스탠퍼드, 캘리포니아주립대 정도 졸업해야 신분상승의 최상위권에 명함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영전문대학원(MBA), 로스쿨 등을 이수하면 금상첨화다.

조기유학을 보내는 사람은 자녀가 설사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어차피 본전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막대한 돈을 들이기는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고, 최소한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영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영어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한국의 사교육시장이 널려 있고, 미국 대학 학위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니.

그리고 이 사람들은 조기유학에서 실패한 사람은 어차피 한국에서도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들에게 조기유학은 마치 로펌 '김앤장'에 맡기듯 실패를 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알리바이를 남기는 행위다. 최소한 조기유학을 보내는 사람에게 조기유학은 정치경제학적으로도, 개인주의적 가족윤리적로도 최선의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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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영어교육은 빈자의 투자방식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조기유학 미만의 투자는 성공확률이 낮은 투장방식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실패할 확률이 낮지만 그 만큼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3~5세 어린이에게 '00영어'를 시킨다고 생각해보자. 이 아이가 1주일에 몇 시간 영어를 한다고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과 유창한 언어구사능력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돈을 더 들여 영어로 된 영화, 영어 멀티미디어 교재를 구입하고 매일 아침 전화통화로 영어를 점검하는 사교육을 시킨다고 해보자. 그럼 작은 차이가 발생하겠지만, 그래도 결과가 아주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토익 680점과 700점이 인생에서 큰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이 작은 차이를 위해서라도 투자를 해야 한하고 생각하면 조기영어교육을 할 것이고, 이 차이가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기영어교육을 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의 조기영어교육은 가난한 자의 투자방식이다. 물론 여기에도 서열이 있다. 원어민 강사가 소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영어전문학원이 비교적 높은 수준이고, 종합학원 단과반이 중간 정도라면, 동네 보습학원은 비교적 낮고, 영어학습지는 매우 낮은 수준의 투자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비용이 적게 든다고 효과가 적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효과가 많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내의 어학교육은 비용차이에 비해 그 효과 차이가 크지 않으니 말이다. 어차피 원어민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언어교육은 현지에서나 가능하다.

 

언어습득에 대한 학문적 접근

일단 한국어를 구사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언어는 수없이 많은 반복과 노력, 즉 노출시간에 의해 습득된다. 일부 학자는 인간의 뇌에 언어습득장치가 있어서 10세 전후까지 1차적인 언어(음성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외국의 언어학자들은 조기유학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에 따르면, 4세에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도 원어민과 구별이 되는 영어를 사용한 예가 보고되었다고 한다. 즉, 원어민은 아주 이른 나이에 이민을 온 사람에게서도 발음과 늬앙스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다.

한국의 조기유학, 조기영어교육 옹호자들은 국내에서도 영어를 쓰는 나라와 같은 영어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 24시간 영어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인위적인 지역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영어마을, 영어타운을 건설하고 심지어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다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영어마을은 상시적이지 않고,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를 중심으로 영어로 생활하는 타운을 건설하자니 이런 저런 것이 걸린다. 그래서 이참에 외국계 교육자본이 들어와서 수업 자체를 영어로 하는 외국교육기관을 현실적 대안으로 내놓는 것 같다. 물론 등록금은 외국에 있는 학교에 보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야말로 귀족학교다. 부모는 이런 학교 출신으로 자녀가 '귀족' 반열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부모는 귀족학교 출신의 성공률이 높고, 기업이 이런 귀족학교 출신을 우대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그런 양태가 나타났다. 이른 바 스카이, 그 다음은 서울지역 대학, 수도권 대학, 나머지는 3류대학 취급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학적으로도 맞지 않다. 경제학에 기댄 부모의 조기유학, 조기영어교육은 실제로는 비경제학적인 측면을 많이 갖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비경제학적인 측면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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