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증(嫌韓症) 계속 고조돼 양국 정부차원에서 시정 시급
요즘 대만 언론에는 ‘몰염치(沒廉恥) 한국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몰염치의 주 내용은 ‘(한국인은)예의 없는 민족이고, 남의 역사(歷史)를 훔치는 민족’이라는 것. 한국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예의가 없고, 무슨 역사를 얼마나 훔쳤길래 대만 언론들은 우리에게 몰매를 때리는 것일까?
‘한국인들은 공자도, 노자도 다 한국인이라 한다’ ‘심지어 석가모니조차 한국인이라 우긴다’…. 이런 보도가 나오면 중화권의 젊은 네티즌들은 당연히 흥분하게 마련이다. 즉시 ‘아예 히틀러, 뭇솔리니, 빈 라덴도 한국인이라 우겨라’는 비아냥을 한국인들을 향해 쏟아낸다. 한국인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내용들이 대만에서는 그럴 듯하게 왜곡 포장돼, 한국을 비판하고 냉소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억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대만 언론들의 ‘혐한증(嫌韓症) 부추기기’ 기사들은 근거마저 찾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현지 언론들은 심지어 ‘조선일보’ 같은 한국 유력 매체들 보도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그럴 듯 하게 포장하면서 날조기사를 만든다. 조선일보에 확인만 해도 됐을 것을 확인 절차를 생략하고 무책임하게 기사를 작성했다는 얘기가 된다. 어느 누군가 독자 신뢰를 사기 위해 한국 유력 매체 기사라는 포장 하에 인터넷에 흘리면, 이를 현지 유력매체들이 그대로 믿고, 고스란히 되받아 혐한증을 재확산시키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혐한증을 부추기는 대만 언론과 인터넷의 한국 왜곡의 실체를 들여다 보자.
◆“한국인은 석가모니가 한국인이라 주장한다”
중국시보는 지난 6월1일 ‘한국인들은 석가모니를 한국인이라 부른다’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부터가 참 허무맹랑하다. 기사 도입부부터 왜곡된 시각이 엿보인다. “한국의 문화확장 활동이 또다시 거세지고 있다. 노자·공자를 한국인이라 하더니, 이제는 석가모니조차 한국인이라 말하고 있다.”
본문은 더 황당하다. 아예 ‘조선일보’ 보도로 포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조선일보는 보도한 사실이 없고, 해당 기사를 취재한 사실조차 없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취재 대상조차 될 수가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르게 조선일보가 보도(?)했다는 내용은? “성균관대 연구 결과, 기원전 700년을 전후해 제주도의 한국인들이 항해에 나섰다. 일부 사람은 일본으로 갔고, 일부는 말래카해협, 또 일부는 뱅골만(灣)으로 흘러 갔다. 그런데 성균관대 조사 결과, 석가모니가 속한 석가족(族)은 아리안족이 아니었다. 석가족 생활을 살펴보면 동아시아 생활 색채가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추론하면 석가모니는 한국인이었을 것이라는 게 연구결과였다는 것. 조선일보가 썼다는 이 보도가 중국 본토 인터넷으로 퍼지자 즉시 현지 언론의 화제가 됐고,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비꼬다 못해 아예 한국인들을 염치없고, 몰상식한 민족으로 비하했다. ‘히틀러, 무솔리니, 빈 라덴도 한국인이라 주장하라’고….”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또 이렇게 비아냥거렸다고 중국시보는 전했다. “세계에 이렇게 무뢰(無賴)한 나라가 있을 수 있나! 어느날 한국 사람들이 팬더·펭귄·재규어 등도 한국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콩국도 한국 것? 한국인은 역사 좀도둑!”
우리가 전혀 알 지도 못하는 음식문화까지 들먹이며 한국인들을 한껏 조롱하고 있는 게 대만 언론이다. 중국시보는 지난 6월9일 타이베이(臺北)발 보도를 통해 “한국인들은 단오절은 물론 ‘중의’(中醫)까지 한국 것이라고 주장한데 이어 중국본토 네티즌들은 최근 심지어 또우장(豆漿·콩국)이 한국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건너온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주장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 이러다간 중국인들이 모두 한국인들의 후예가 되는 것은 아닐 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문은 그 근거로 상하이(上海) 인터넷 신민왕(新民網) 보도를 인용, 한국의 한 식품회사가 ‘한국은 또우장의 발원지(發源地)라고 상품에 표기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민간기업이 한국식 콩 식품을 상업적으로 홍보하다 벌어진 광고문구 하나를 가지고 마치 전 한국인이 나서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을 일방 매도한 것이다.
대만 케이블 tv인 tvbs는 작년 6월9일 보도를 통해 “콩국을 중국인이 발명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한국이 발명했다는 것은 일종의 (역사)좀도둑질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만리장성도 한국이 축조했다” 주장도
연합보 등은 작년 10월 ‘만리장성도 한국인이 축조했다’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때는 이름마저 희한한 오가능((吳可能)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교수가 허위 인용됐다.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우커넝(吳可能, 오가능의 중국 만다린발음)교수는 2007년 7월 5일 서울의 최대 학술지 ‘추리(追理)’에 기고한 ‘한국역사의 만리장성에 관한 고찰(韓國歷史萬里長城考)’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 교수는 한국인이 한자(漢字)를 발명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만리장성을 중국인이 만들었고, 이를 세계 7대 기적이라 부르는 것은 한국인을 무시(無尊重)하는 것이며, 평가단의 무지(無智)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한국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한국인 민족감정을 매우 손상시키는 일이다. 당연히 시정돼야 한다.”
대만 언론들의 한국 역사왜곡은 소설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우 교수는 또 ‘중국의 영토 80%는 이미 한국의 통치를 받았다. 대부분의 만리장성은 한국인이 축조한 것’이라 주장했다. 수양제가 고구려를 세 차례 침략했음에도 모두 실패했다. 이후 한반도의 국가들은 수(隋)나라에 복수하기로 했다. 고구려와 남쪽의 신라·백제 삼국 연합군이 동시에 중국 중원(中原)으로 진공해 들어가 금새 중국 영토의 80%를 점령했다.”
대만 언론들은 또 한국이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역사왜곡에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부 공직자 회의에서까지 거짓뉴스가 진실로 둔갑
연합보는 지난 14일 황푸치(黃福其)·저우메이후이(周美惠) 두 기자 실명으로 다음의 기사를 올렸다. ‘핑시티엔덩(平溪天燈)행사 신청 반려되다’ 제목의 타이베이현(縣)발(發) 보도였다. 핑시티엔덩(平溪天燈)는 ‘핑시’(平溪)지역의 고유 민속행사. “타이베이현 정부는 지난 5월 핑시티엔덩(平溪天燈)행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유네스코에 신청하겠다고 밝혔으나, 행정원 문화건설회(文建會)가 신청을 반려했다. 대만이 유엔회원국이 아니라 신청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타이베이현 관광국은 ‘핑시티엔덩지에(平溪天燈節)행사가 최근 디스커버리(discovery) 채널 투표조사 결과 전세계 두번째로 큰 축제 카니발로 선정됐다면서 정부의 ‘헛수고 하지 말자’는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그런데 ‘용모양의 배젓기’(劃龍舟) 행사는 원래 중국인들의 단오절 전통의 민속놀이였다. 그러나 한국이 유네스코에 (단오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해 승인 받았다. 한국은 올 2월 관계자들을 타이베이현으로 파견해 핑시티엔덩지에(平溪天燈節)행사를 참관 조사했다. 정말 한국이 핑시티엔덩지에(平溪天燈節)를 표절(剽竊)해 자기네 나라 민속놀이화 할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당연히 이를 바로잡아 시정해야 한다.”
대만 공무원들의 한국에 대한 오해는 계속 이어진다. 타이베이현 문화국 리빈(李斌)씨 얘기. “한국 참관단이 타이베이시 공자제전(祭孔儀制) 행사를 시찰했다. 당시 시 정부는 성심성의를 다해 지원했다. 각종 의식·복장(服裝)자료까지 제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대접했는데도) 한국이 유네스코에 공자제전(祭孔儀制)을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은)심지어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행히 중국공산당이 공자제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 한국이 이를 훔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한국인은 어느새 대만 공직사회에서 남의 은혜도 모르고, 역사마저 훔치려는 좀도둑이 된 것이다.
◆대만 방송들도 한국 때리기
방송들의 보도내용도 혐한증(嫌韓症)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위험천만스럽다. 대만 케이블 tv인 tvbs는 작년 12월18일 ‘풍수(風水)문화를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것이며, 중국은 불만’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내용은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다. 한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들이다. “최근 한국이 계속해서 콩국도 한국 것, 중의(中醫)도 한국 것, 한자도 한국이 발명한 것이라고 한데 대해 중국인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한국이 또 유네스코에 풍수(風水)를 한국의 비물질자산이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유네스코에서 이를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베이징 풍수사(師)들이 경악하고 있으며, 이를 강도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현지 한국인들도 “황당하고 빨리 시정해야”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이 한국과 한국인에게 드리워진다. 대만의 신문 독자와 네티즌, 시청자들은 ‘한국인들은 무뢰한 국민’이라며 노골적으로 혐한증(嫌韓症) 증세를 드러내고 있고, 그 정도 역시 심해지고 있다는 게 현지 한국인들의 얘기다. 현지 대만업체에 근무 중인 한 교민은 “공무원들이 한국인들이 자기네 문화를 훔칠 지 모른다는 얘기를 버젓이 할 정도로, 대만의 거짓뉴스가 대만인들에게 큰 악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나 언론 차원에서 대만 정부와 언론에 공식 항의를 통해 이를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광회 기자 santafe@ch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