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식당에서 본 한겨레 신문의 사설입니다. 좋은 글 같아서 가져와봅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명박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이를 수 있는가? 이미 독재정권의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닌가?
민주적 선거에 의해 압도적 표차로 선출된 정부를 독재정권이라고 이르는 게 너무 성급하고 단편적인 평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적 선거는 민주정부를 구성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민주정부로 불리려면 그에 합당한 정치적 행위가 뒷받침돼야 한다.
민주정부의 가장 큰 원칙은 법에 따른 지배다. 그러나 이 정부는 실정법을 짓밟는 위법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출범하자마자 공공기관 운영법에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들을 막무가내로 쫓아냈다. 감사원장까지 몰아냈다. 헌법에 임기가 보장된 공직자를 멋대로 몰아낸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도 헌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쫓겨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걸 이 정부는 알고나 있을까.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해임은 위법의 극치다. 대통령이 현행법에 없는 해임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쿠데타적 행위다. 법률에 해임권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임명권이 있는 대통령이 해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독재정권의 특성이다. 독재는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된 민주적 제도와 절차에 의하지 않고 권력을 자의적으로 강행하는 정치를 말한다. 이 정부는 독재의 의미에 꼭 맞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을 맞아 비리 기업인과 정치인, 언론사주들을 대거 특별사면함으로써 법치 원칙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는 사면과 관련해 “현 정부 출범 이전에 법을 어긴 사안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새 정부 임기 중 발생하는 부정, 비리에 대해서는 공직자, 기업인 불문하고 단호히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논리도, 개념도 없는 이런 ‘내 맘대로’ 법 의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할 뿐이다.
법치를 포기한 독재정권은 결국 폭력에 의존하게 된다.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폭력수단을 갖고 있는 경찰이 가장 먼저 동원된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경찰이 보여준 폭력은 시작일 뿐이다. 촛불이 타올랐던 서울광장은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됐다. 정연주 사장을 해임 제청한 한국방송 이사회도 경찰 보호 아래 진행됐다. 시민들은 사복경찰들의 상시적인 감시 아래 놓여 있다. 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 힘있는 국가기관이 국민 편이 아닌 정권 편에 서서 반정부 세력을 억압하는 것도 독재정권의 특성이다.
다양한 의견을 용인하는 민주정부와 달리 독재정권은 자신에 반대하는 의견을 무시하고 억누른다. 더 나아가 아예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언론을 손아귀에 쥐려 한다. 이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온갖 저항을 무릅쓰면서 언론 장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와이티엔(YTN) 사장에 대통령 특보 출신을 앉히고,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쫓아내고,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몰아붙여 무릎을 꿇렸다. 이제 반정부 성향의 다른 언론에 대해서도 광고 압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탄압하려 들 것이다.
이 정부의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실제로는 독재정권의 행태를 보이면서도 민주정부라고 착각한다. 소수의 수구·보수세력과 부유층, 그리고 그 기생 세력들의 이해만 대변하면서도 온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강변한다. 이것 또한 독재정권의 주된 특성 중 하나다.
광복 대신 ‘건국’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펄럭이는 날 아침, 북악산 기슭의 푸른 기와집을 휘감아도는 음습한 독재의 망령을 본다. 20년 만이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