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종교수(경향신문칼럼)

삼사무 작성일 08.08.21 08: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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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앞뒤 살피지도 않은 채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이라는 선물을 들고 캠프 데이비드로 갔다. 그후 생겨난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당시 이에 대한 문제점을 보도한 MBC ‘PD수첩’에 대하여 검찰 수사마저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 해당 방송국은 공식적인 사과 방송까지 했다.

도대체 ‘PD수첩’의 잘못 이란 무엇일까?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내용을 보면 마치 100점 답안지를 내지 못하고 두세 문제 틀려서 95점 맞았다고 해서, 낙제라고 몰아붙이는 격에 불과하다. 부분을 침소봉대하여 전체가 오류라고 몰아붙이는 천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연 지금과 같은 상황을 전개시킨 진정한 책임자가 누구인가를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것이 온전히 ‘PD수첩’의 책임이며, MBC가 사과해야 할 문제인가. 아니 어쩌면 촛불로 상징되는 현 상황이 ‘PD수첩’의 책임이고, MBC가 사과하면 될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그것은 우리 사회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일반인들의 광우병 공포의 발단과 확산에 가장 기여한 것은 정부다. 수입 협상에 있어서 문제 지적에 대한 궁색한 합리화,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가 반영된 유럽연합(EU) 등의 기준은 무시하고, 미국의 기준만이 바람직하다면서 미국 정부나 축산업자의 대변인 행세를 한 정부의 태도. 이로 인해 촛불은 불붙었고 확대되었다. 누가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지금 정부나 일부 언론들이 말하듯이 국민이 단순히 한 방송 프로그램에 의해 그렇게 선동되었다고 본다면 국민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이다.

수많은 국민이 참여한 촛불상황에 대하여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현 시점에서 그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기에 그 희생양으로 등장시킨 것이 ‘PD수첩’일 뿐이다. 자신들의 졸속 협상으로 발생한 사태의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국가 권력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보수언론이 방조하고, 이 과정에서 사법부마저 가담한 모습은 성숙한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특히 거대한 삼성 비리를 담당한 검사의 숫자보다 ‘PD수첩’ 담당검사 수가 더 많았던 현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체적 사법부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지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희생양을 찾아 마녀 사냥에 나선 천박한 우리 사회의 권력에 의해 불행히도 붓의 힘마저 꺾어져 버렸다. 탐사보도로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음에도 과학논문처럼 엄격히 따져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하라는 사람들이야 원래 저들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서 보이는 천박함이라 치자.

그러나 이에 맞서지 못하고 사과한 MBC 역시 당장의 이익에 눈이 가려 권력에 타협한 모습이자, 권력을 앞세워 언론을 장악하려는 현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대학시절 겪었던 광주항쟁이 있은 후 어언 30년 가까이 흘렀건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천박함이 이토록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에 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도 새삼 한기(寒氣)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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