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디 법정

야쿠르트81 작성일 09.01.22 13: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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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거리는 아니지만 패소 경력이 남부럽지 않은 탓에, 기본적으로 상담 자세가 엄청 부정적이다. 꼭 패소 경력 때문이 아니

 

더라도 좋은 변호사는 적어도 선임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보수적으로(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자문하는 사람이라

 

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건 당사자들은 언제나 숫자로 된 승산까지 궁금해하는데, 그런 질문에는 언제나 “모든 사건은 반반

 

이다, 이기지 않으면 지니까. 승산이 99%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머지 1% 때문에 질 수 있는데, 그럼 누가 책임지느냐”고 되묻

 

는다. 번잡한 이 이야기의 요지는, 내가 법적 결론을 예측하는 데 매우 보수적이고 조심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선

 

배들이 돈을 잘 못 번다고 비웃을 정도다).

123233212992_20090120.JPG » 코미디 법정.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극소심쟁이의 큰소리

 

그런데 이런 극소심쟁이인 나도 이번에는 달랐다. 검찰이 미네르바를 체포했다고 하기에(사실 체포하러 다닌다는 것도 잘 몰

 

랐다. 그렇게 한가할 리가!) 제대로 헛발질한다고 생각했다. 누구 말을 옮기자면 “검찰이 정부를 물먹이는 의도를 가지고 있

 

지 않다면, 뒷동네 양아치에게 맞은 형님의 상처를 굳이 까 보여주는 꼬봉 짓”을 왜 하는지, 우습기도 했다. 미국 대학에 들인

 

등록금이 얼마고, 월급이 얼마이며, 연구기관과 언론 수단이 몇 개인데, “미네르바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감소됐다, 미네르바

 

때문에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십억이 소요됐다”니- 설마 이런 말이 얼마나 창피한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영장을 청구해

 

도 코미디, 하지 않아도 코미디라고 생각했다(이때까지만 해도 상상력이 빈곤하여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도 코미디, 발부하

 

지 않아도 코미디’까지는 나아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평소의 소심함을 뒤로하고 “구속은 안 될 거다” 큰소리쳤다. 혹시 모른

 

다는 후배(이 친구는 나보다 더 소심한 건 아닌데, 확실히 세상에 대한 감은 더 있었던 듯) 말에는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

 

다, 법원이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지극히 꼰대스런 멘트도 날려주셨다. 그런데 정말 영장이 청구됐고, 게다가 발부까지 됐

 

다!

 

…으응?(내 말투가 비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동네 반응을 실감나게 옮기다 보니 이렇게 된다.) 드라마도 막장이어야 뜬다

 

더니, 막장이 되자 법원이랑 법조인들, 유명해졌다. “야, 법조인으로서 한마디 해봐. 이런 일로 구속될 수도 있는 거야?” 질문

 

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정말 내가 판사님·검사님도 아닌데, 법으로 밥 먹는다고 말하기가 낯간지러운 날들이었다.

 

내가 모르는 무슨 법리나 사실관계(항상 법조인들이 즐겨 하는 말씀이다. 언론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법리를 모르면서 여

 

론을 호도한다면서)라도 있나 해서, 법전도 뒤져보고, 검찰에서 발표하는 자료도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봐도 모르

 

겠더라. 다른 것은 다 떠나서, 도대체 왜 이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 난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런 일로 사람을 구속까지 해야 한다는 게 법전 어디에, 민주국가 법의 정신 어디에 쓰여 있는지(쓰여 있다면 왜 나한테만 그

 

런 걸 안 가르쳐준 거야, 법대 4년에 대학원까지 등록금 꼬박꼬박 가져다 냈는데!).

 



고용안정센터 대기실의 사람들

 

인터넷에서는 “저 잡아가지 마세요, 그냥 다른 데서 퍼온 거예요” 따위의 말이 붙은 글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설마 이런 걸 진

 

심이라 보고, 미네르바 체포의 효과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며칠 전 라디오에 나와 국회 싸움이 외신에 보도돼 창피하고 슬

 

펐다는 당신, 이 일이 보도된 외신은 보셨나? 혹시 이게 자랑찬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란 걸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정말 슬픈 것은, 창피한 걸 모르는 당신이나, 이 동네에서 법으로 먹고사는 내가 아니다. “도대체 미네르바가 뭔데 온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워? 그게 사람 이름이야?” 영문도 모르고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 타러 온 고용안정센터 대기실에서 이

 

런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 이 모든 ‘생쇼’를 벌이면서 정작 책임을 방기하는 사람들 탓에 이 추운 날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어야 하는 이 겨울이다.

 

김진 변호사

 

============================================================================[펌] 한겨레21 웹사이트==============

 

오늘 미네르바의 수사가 종료된다는 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사뭇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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