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나사 풀린 공군’이란 말은 제발 쓰지 말아 주세요.”
지난달 31일 낮 공군 케이에프(KF)-16 전투기(사진 왼쪽) 한 대가 충남 태안반도 서해상에 추락한 뒤 공군 관계자가 국방부
출입기자들한테 한 하소연이다.
2000년 이후 각종 전투기 추락사고는 이번이 18번째다. 1년에 두번꼴로 사고가 터지는 셈이다. 잇단 추락 사고에 대해 언론에
서 ‘나사 풀린 공군’이란 비판을 할 만하다.
그렇지만 공군은 ‘나사가 풀렸다’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욕을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사 풀렸다’가 자칫 정비 불량이란 인
상을 주기 때문이다.
군에선 엔진 등 기체 결함, 조종사의 비행 착각, 공중 충돌 등 때문에 일어난 추락 사고는 불가항력으로 여긴다. 사고 원인을
조사중인 이번 사고를 빼면 2000년 이후 일어난 케이에프-16 추락 사고 다섯 건 가운데 세 건이 엔진 결함이었고, 한 건은 비
행 착각이었다. 이런 사고 뒤에는 재발 방지책은 마련하지만, ‘책임자’를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비 불량 사고는 사정이 다르다. 정비 불량 사고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2007년 2월 케이에프-16 추락 사고 원
인이 교체하도록 되어 있는 엔진 부품을 교체하지 않은 정비 불량으로 드러나, 당시 공군참모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공군 관계자는 “전투기가 비싼 첨단 장비이고 공군의 핵심 전력이기 때문에 다른 사고에 비해 국민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케이에프-16 한 대가 400억원이고, 10년차 케이에프-16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90억원가량이 든다. 전투기가 떨어지고
조종사가 다치면 말 그대로 ‘국가적 손해’가 막대하다. 게다가 사고가 나면 같은 기종은 별도 지시까지 비행을 중지한다. 요즘
처럼 북한 로켓 발사를 앞둔 민감한 때에 공군 주력 전투기인 케이에프-16이 비행을 중단하는 것도 군사 안보상 부담이다.
사고가 난 케이에프-16은 공군 보유 기종 가운데 비교적 신형이지만 엔진이 하나인 단발기라 엔진이 정지하면 바로 추락하기
때문에 에프-15케이처럼 엔진이 두 개인 쌍발기에 비해 사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공군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일면 속앓이를 한다. 세계 평균 전투기 사고율에 견줘 높지 않지
만, 사고를 낸 처지라 내놓고 반론을 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군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에프(F)-16(오른쪽)은 10만번 뜨고 내릴 때 3대가량 추락한다”며 “미국은 10만번 이착륙 때 0.5
2대가 사고가 나는데, 우리는 미국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다”고 말했다. 한국 공군 사고 발생 빈도가 세계 평균에 견줘 높지 않
다는 설명이다.
각국의 에프-16 사고 발생 빈도를 놓고 보면, 한국은 1994년 도입해 160여대를 운용하며 반파와 완파를 합쳐 사고가 11번 났
다. 98년부터 에프-16 150대를 운용중인 대만은 10번 사고가 났고, 91년부터 240대를 운용중인 터키는 23번 사고가 났다. 92년
부터 170대를 운용중인 그리스는 13번 사고가 났고, 83년부터 362대를 운용중인 이스라엘은 32번 사고가 났다.
전투기 추락을 막을 근본 대책은 없다. 공군 관계자는 “전투기에 몇 겹으로 안전장치를 두고 첨단기술이 동원되지만 완전무결
한 전투기는 없다”고 말했다. 안전 운항이 우선인 민항기와 달리 전투기는 예측 불허의 전투 상황을 가정해 극한 훈련을 하기
때문에 기계나 전자부품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조종사가 실수도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 권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