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01-26)
박 군.
밤을 새웠네. 지금이 26일 새벽 4시, 설날이 왔군.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
국민의 기억과 이 땅의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졌으면 하는 이 야만의 전설을 다시 입에 올리는 가슴은 지금 메어지고 있네.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으로 살해된 박종철 열사의 영혼은 지금 하늘에서 용산을 내려다보고 있겠지.
1987년 1월 14일, 스물세 살의 서울대생 박종철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중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숨졌네. 적어도 ‘민중의 지팡이’ 경찰 발표로는 그렇게 숨이 졌다네.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1월20일. 용산구 한강로에서는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시너 불에 타 죽었네.
공식 발표도 없는데 왜 이리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아다니고 있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은 것이 아닌 진실은 이들이 불붙은 망루 안에서 시너 불길에 싸여 불 타 숨졌다는 것이지.
왜 그들이 망루에 들어가 있었느냐를 설명하는 건 참으로 바보 같은 소리네. 그러나 어떻게 죽었느냐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네.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한 마리가 죽어도 왜 죽었는지 사유가 있고 과정이 있네. 하물며 6명의 인간이 정상적이 아닌 시너 불에 타 숨졌고, 어쩌면 그것이 공권력에 의한 희생일지도 모를 사건인데 어찌 질병에 숨진 듯 넘길 수 있겠나.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사건이고 세계가 관심을 갖는 사건이네. 그만큼 의혹이 많다는 거지. 때문에 거짓이 없어야 하고 정직해야지. 정직하면 믿네.
어디에다 조사 결과를 내놔도 어쩜 저렇게 조사를 잘했나 할 정도로 완벽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네. 우선 경찰이 처음에 발표한 것을 보도록 하세.
“진입 시 건물 주변에 안전매트를 설치하고 소화기를 최대한 준비하는 등 각종 안전 장비를 현장에 배치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농성장 내부에 신나 등 위험물질이 많아 일반 기동부대에 비해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공대를 투입했다.”
“경찰은 컨테이너로 망루를 밀지 않았다.”
“경찰 특공대원이 컨테이너를 이용해 옥상으로 진입한 후 망루에 접근하자 망루 안에 있던 농성자들이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지는 과정에서 불이 붙게 됐다.”
경찰 발표는 완전무결하게 철거민들의 책임이네. 절대로 경찰은 잘못이 없네. 사고가 났어도 경찰의 준비는 완벽했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뉴스와 동영상, 생중계를 보면서 컨테이너가 망루에 부디 처 흔들리는 장면을 본 것은 국민의 착시 현상이었는가. 경찰의 해명과 같은가. (검찰은 컨테이너가 망루를 부딪친 것은 망루 해체를 위해 접근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일 뿐 고의도 아니고 화재와도 직접적 관련은 없는 것으로 결론)
경찰과 용역은 아무 상관도 없는 관계라네. 그러나 경찰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찰과 용역업체의 합동 진압작전이었다는 정황이 더욱 짙어지고 있네. 해명이 거짓이라는 의혹은 더욱 커지네. 머리가 나쁜 사람들은 잘 모를 테니 기자 출신인 자네가 한번 판단을 해 보지.
06:25:08 (상급자) : “건물 2단에 철거반들이 있는데 왜 시정(잠금)이 됐지요?”
06:25:16 (보고자) : “그 용역들은 작전이 시작되면서 건물 밖으로 전부 철수한 것 같습니다.”
06:25:42 (상급자) : “아니 철거반원들이 3, 4층에 있는 장애물 제거 설치를 해야지, 가급적이면 철거반원들이 설치하도록 하고 만약에 바로 설치가 안 되면 우리 경찰력이라도 3, 4층 장애물을 신속하게 제거하도록…”
경찰이 발표하면 국민은 믿어야 되는가. 그러기에는 국민이 너무 속았고 경찰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했어. 국민은 백 년 천 년 바보가 아니라네.
1월 24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는 용산철거민 화재현장의 참상과 경찰의 다급한 목소리를 화면에서 그대로 보여주었네.
앵커 : 다음은 용산 화재 참사 속보입니다. 참사 현장 바로 옆에서 찍은 새로운 동영상이 공개됐습니다. 또 당시 교신한 무전내용 전체를 MBC가 입수했습니다. 임명현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 두 번째로 끌어올려 진 컨테이너가 망루 바로 앞까지 다가갑니다. 동시에 경찰 무전에서는 망루를 해체해야 한다는 말이 오갑니다.
싱크 : (경찰 무전) “2차로 컨테이너가 옥상에 종착했으니까 망루를 완전히 해체하는 게 급선무에요.”
기자 : 컨테이너의 특공대원들이 연장을 들고 지붕을 내려칩니다.
싱크 : “망루 제거만 하면 검거 조치가 될 텐데, 마무리 단계입니다.”
기자 : 망루 지붕을 벗겨 낼 목적인지 지붕을 향해 물대포가 집중됩니다. 컨테이너가 지붕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싱크 : “컨테이너를 이용해서 5층 망루 해체 작업 중에 있습니다.”
기자 : 망루 안에서 불이 났는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싱크 : “물 좀 이쪽으로 좀 쏴줘요. 옥상으로! 물포!”
기자 : 망루 안에서는 특공대원들이 농성 철거민 진압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강력한 물줄기가 망루 지붕 쪽으로 집중되던 중에 망루 앞쪽에서 불길이 일었습니다.
싱크 : “옥상 망루 앞에 불길이 상당히 강합니다.”
싱크 : “물포 빨리 쏴!!!!!!”
기자 : 망루 안에서도 불꽃이 보이고, 철거민들이 다급하게 창밖으로 시너통으로 보이는 물건을 내던집니다. 일부는 이미 불이 붙어 있습니다. 불을 끄기 위해 물대포를 계속 쏘던 도중 현장 지휘관의 다급한 보고가 무전기를 통해 터져 나옵니다.
싱크 : “지금 이게 기름이기 때문에 물로는 소화가 안 됩니다! 이거는 물로 소화가 안 됩니다!”
기자 : 하지만 물대포는 그칠 줄 모르고 불길은 점점 더 망루 전체로 번져갑니다. 몇 분 뒤 폭발과 함께 망루 전체가 엄청난 화염에 휩싸였고,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한 명의 생명도 망루와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MBC 뉴스 임명현입니다.
화면을 보여주지 못해서 유감이네. 이게 어느 나라 전쟁인가. 바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철거민과 경찰의 전쟁이라네.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고 했을 때 자네는 믿었는가. 경찰 총수인 강민창이 표정도 태연하게 국민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거짓말도 애국이라고 다짐했을까. 그때 그의 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엾기 그지없네.
탁! 억! 사건을 밝혀낸 사람이 바로 검사인 안상수였지. 지금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네. 원내 대표도 했지. 그때 영웅이었어. 그러나 지금은 영웅이 필요치 않고 올바른 상식의 검사를 국민들이 갈망하고 있네.
이것은 검찰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라의 법을 바로 세우고 국민을 실망의 나락에서 구하기 위해서네.
왜 참사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사체는 부검을 했는가. 부검 때 유족들은 입회를 시키지 않도록 규정이 되어 있는가. 박장규 용산구청장의 말대로 “참사 철거민은 떼잡이들”이기 때문에 맘대로 부검을 해도 괜찮은가. 신지호의 말대로 테러법이기 때문인가.
유족들의 말 대로 사체는 어느 정도 엉망이었나. “두개골이 쪼개져 있고, 손가락이 부러져 있고, 앞니가 다 부려져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죽었다”고 울음을 터뜨렸네. 컨테이너 안에서 불 타 죽으면 이가 다 부러지는가.
철거민도 사람이네. 설사 박장규 용산구청장이 말한 대로 ‘떼잡이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대접을 해야 하네. 부모 때려죽인 원수인가. 그들은 그저 돈 없고 힘없고 엄동설한에 갈 곳 없는 불쌍한 대한민국의 국민인 철거민이었네. 왜 또 눈물이 흐르는가.
법이 공정해야 국민이 안심하네. 지금 검찰을 비롯해서 경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이 사람아. 웃기는 왜 웃어. 답답해서 묻는데.
불신이 깊게 널리 퍼져 있네. 심각한 문제네. 그때 탁! 억! 거짓 발표는 정권의 종언을 고하는 신호가 아니었나.
지금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잠시 권력의 위력에 묻혀 사라지는 듯 보일지도 모르나, 그러나 아닐세. 반드시 밝혀지게 되어 있어.
그때 어떻게 할 작정인가. 대한민국은 대통령이나 몇몇 권력자나 권력기관의 소유가 아니라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네. 지금은 전두환 독재시절이 아니네.
해답은 이미 나와 있지. 누가 어떤 처벌을 받아도 한 점 의혹이 없어야 하네. 정직해야지. 철거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네. 그들의 죽음을 모욕해서는 하늘이 용서치 않네. 국민이 하늘이라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