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의 증언

신지현 작성일 09.01.31 17: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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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비아냥이 함께 느껴지는 이메일 이임사에서 세 가지 중요한 증언이 나옵니다.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률 예측치마저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

우선 코드가 맞지 않으면 옷을 벗으라는 외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금융연구원이 금융 관련 분야의 정부 용역연구를 많이 하고 금융연구원 출신들이 정부나 금융감독원에 많이 진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금융연구원은 시중은행이 출자한 사단법인으로 원장은 사원 은행들의 총회에서 결정하는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둘째, 연구기관의 경제성장 전망도 정치적 압력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말 삼성증권 리포트 사건이 오버랩됩니다. 지난해 11월 삼성증권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09년 마이너스 0.2% 성장을 전망했다가 불과 한 달만에 2% 플러스 성장으로 말을 바꿨던 일 말입니다. 외압 의혹은 강하게 일었지만 당사자가 부인하는 바람에 곧 잠잠해졌지요. 그런데 연구기관의 수장이 그런 압력이 실제했다고 폭로한 것입니다. 떠돌지만 확인되지 않는 의혹과 책임자의 증언은 무게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 성장률 예측치마저 정치 변수화..." -->모호한 표현이라 혹시 곡해할까봐 금융연구원 내부인에게 취재 들어갑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 금융연구원이 지난해 말 2009년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제시했다. 이 수치도 당시 IMF의 낙관적인(?)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당시 IMF가 2.2%로 세계 경제 성장률을 전망했는데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었다.(실제 IMF는 어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에 제시한 2.2%보다 무려 1.7% 포인트 낮은 0.5%로 낮췄습니다.) 그래도 다른 데이터가 없어서 그걸 전제로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을 했는데 1.7%로 나온 것이다. 이동걸 원장이 그 숫자를 승인하기는 했지만 자신은 1.7%보다 너 낮게 본다는 얘기를 했다. 마이너스까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1.7%도 너무 낙관적이라는 뜻이었다. 당시는 정부가 3% 성장을 얘기할 때였는데 국내 종합 경제 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1%대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그 뒤 사방에서 원장에게 전화를 해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전화 왔는지는 내가 물어보지 않았지만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경제는 심리라고 합니다. 근거없는 비관론의 지나친 확산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경제 전망 또한 정부의 정책 수립에서부터 가계와 기업의 경제활동 의사 결정까지 왜곡시키기 마련입니다. 잘못된 환율 전망에 기초한 KIKO가 수출기업을 도산으로 내몰았듯이 그 폐해는 상당히 실질적이기도 합니다.

이동걸 원장, 본격적으로 전공 분야인 金産분리, 보다 정확하게는 銀産분리를 거론합니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벌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개혁입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국제적 조류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금산분리가 가장 철저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은행을 빼놓고 증권, 보험, 카드 등 제2금융권 '대표' 기업들은 재벌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증권, 보험업을 해 온 '대표' 기업이기는 한데 한국 안에서만 '대표' 기업인,우물 안 개구리인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재벌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이 원장은 묻습니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 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학자로서 -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세번째 증언은 보다 더 폭로적(?)입니다. '요청' 뿐만 아니라 '압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학자적 양심을 고뇌하게 할 만큼의 강도로!

심하게 말하면 여론 조작을 기도했다는 건데 이 건 정말 아닙니다. 하물며 소통과 신뢰를 강조하는 정부로서 말이죠. 이구택 포스코 사장의 중도 퇴임 때도 같은 우려가 제기됐지만 이런 얘기들은 해외에 상당히 나쁜 시그널을 주게 됩니다. Korea를 아시아에서 일본類의 나라가 아니라 그저 그런 보잘 것 없는 수준의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것 같다"---->는 완곡한 어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게 현 정부가 처한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 건 정말 아니다라는 장탄식이 나오는 겁니다.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누구 못지 않게 많이 들었던 참여정부에서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反코드적 발언을 거듭했던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금감위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임기 3년을 다 채웠다는 사실이 새삼 대비되는 이유는 뭘까요?

지난해 1월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이동걸 원장이 배제된 당선자와 10개 경제 연구기관장과 간담회 장면은 이 원장 중도 사퇴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결론을 강하게 시사한 예고편 이후 1년 만에 상영되는 김 빠진 영화지만 포용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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