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성폭행 사건(피해자는 강간미수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더군요)때문에 요즘 민주 노총을 둘러싸고 말이 많습니다.
이번 민주노총 사건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윤리관 해이를 지적하시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딱히 그들의 윤리관을 탓할 마음도 없습니다. 저도 이제 슬슬 꼰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연령대로 달려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거대 조직의 윗대가리에 위치한 "꼰대"들 치고 인격이 똑바로 박혀있는 사람을 거의 못 보았거든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뭐, 그런 놈들이지, 라는 정도의 느낌입니다. 물론 성폭행 잘했다(!)라는 소리가 아니라 딱히 기대를 한 적이 없으니 실망도 안했다 정도로 정리하면 되겠군요.
다만 제가 이번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그래서 우려스러운 것은 그들의 정치적 무능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체(주1)을 "어떤 사상"을 기준으로 거칠게 둘로 나누어 보면 민주노총이 소속된 집단과 대척점에 존재하는 집단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싫어도 그 어떤 "집단"과 정치적으로 경쟁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상충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답답하고 또 미묘한 것은 민주노총과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는 "그 집단"은 박정희즘(ism)의 후광을 업고 사회적 포지셔닝에 성공했기 때문에 도덕성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스럽습니다. 대낮에 살인 강도를 저질렀다면 모를까, 성폭행 정도의 사건은 "경제를 살리자는데" (간혹 경제 앞에 우리 지역구 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만) 혹은 "빨갱이가 내려온다"정도의 슬로건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무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가카의 경우는 의혹의 수준에서 끝났으니 넘어간다고 쳐도 최연희가 성희롱 사건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도 자기 지역구에서 다시 당선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모 그룹의 회장님은 조폭을 풀어서 사람을 때려도 법정에서 "그간의 사회에 대한 경제적 공헌"을 운운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거든요. 전 대체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반면 민주노총의 무기는 굉장히 열악합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그들이 가진 무기는 "노동자를 위합니다"라는 대의 명분밖에 없습니다. 조직력, 자금력, 사회적 지지도 등등 뭐 하나 경쟁 집단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이 없어요. 그리고 대의 명분은 도덕적인 뒷받침이 서질 못하면 금방 무너집니다. 명색이 노동자를 위한다는 집단의 간부가 자기 조직원을 성폭행한다? 이건 말이 안되죠. 조직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는 겁니다.
민주노총이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면 사건이 터지자마자 신속하게 수습을 했어야 합니다. 말을 들어보니 1년간 질질 끌면서 은폐공작을 하려고 했다는 것 같던데, 은폐공작은 아무나합니까? 그건 한나라당, 민주당이나 혹은 삼성그룹 정도는 되야 하는 거죠. 성폭행 피해자인 여성이 "에이 18 더는 못참겠다"라고 외치고 조중동에 가서 한마디만 해보세요. 드디어 때는 왔다 성폭행은 다음날 강간치상사건으로 1면에 보도될겁니다. 사실 여기까지 끌어온 것도 피해자 여성이 참 맘 넓게 쓴거라고 봅니다. 대가리가 똑바로 돌아갔다면 민주노총 지도부는 가해자 당사자를 바로 배제시키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던가 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 사건은 간부의 개인적인 치부고 우리 조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노동자를 위하는 집단이라 라는 사회적 인식을 주었어야 합니다. 그게 민주노총이 가진 사회적 위치와 정치적 입장에 걸맞는 행동이지요. 계파문제가 걸린다구요? 내부적 역학관계때문에 조직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지경이라면 그 조직은 이미 정치 능력을 상실한 겁니다. 그냥 자폭해야죠.
정말 이번 사건에서 민주노총은 (그리고 전교조도) 비주류에 위치한 정치단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무능력함을 만천하에 보여주었습니다. 안그래도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위 집단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좋았는데 결정타를 먹은 셈이지요. 노동자 운동의 지지자 중 한명으로서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제발 한 집단의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이라면 ㅈㅗㅈ대가리를 지 ㅈㅗㅈ대로 놀리기 전에 지가 뭐하는 인간인지 한번 생각이나 해보고 놀렸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리더랍시고 있는 놈들 보면 윤리니 도덕이니 하기 이전에 능력부터가 의심스러운 놈들 뿐이니 원. 이래서야 나라가 뭐가 되겠습니까.
(주1) 노동운동은 정치적 목적을 띄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친구 이외의 사람들과 집단을 이루면 그 집단은 무조건 정치집단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평소 제 생각입니다. 국민 모두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이니 만큼 개인과 집단의 사소한 의견 하나하나가 타인/타집단과 정치적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주성용이가 100분 토론에서 말했던 전문 정치인 운운하는 발언을 아주 혐오합니다. 하다못해 가장 비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긴급구호단체조차 "반전주의" 정도의 정치색은 띄고 있는 것인데 말이죠. 민주노총을 정치단체로 놓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해서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