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았다. 2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 거여동 정동의료센터. 단층 주택 지하에 차린 65㎡(20평) 남짓한 진료실에서 백발이 성성한 의사 주정빈(朱珽彬·87) 박사가 80대 할머니의 무릎을 살피고 있었다.
"다리를 굽힐 때 아파요, 펼 때 아파요? 콕 찌르는 것 같아요, 찌릿찌릿 저려요?"
주 박사는 지난 6년간 매주 월요일 오후마다 이곳에서 무료 정형외과 진료를 해왔다. 주 박사는 81세 때인 2003년 1월, 상계동에 있던 정동의료센터가 거여동으로 옮겨오면서 다른 내과, 치과 의사들과 의료 봉사 활동에 합류했다. 하루에 15~20명씩, 지금까지 6년 동안 모두 5000여명의 환자를 돌봤다. 남들 같으면 은퇴하고 쉴 나이에 의료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정동의료센터가 상계동에 있던 시절 '상계동 슈바이처'로 불렸던 세브란스 의전(지금의 연세대 의대) 선배 김경희(金庚熙·89) 박사가 "내 힘이 다했으니, 이젠 네가 맡아달라"고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한말(韓末) 궁의(宮醫·한의사)의 손자인 김 박사는 1936년 1월, 식민 치하에서 가난 때문에 치료 한 번 못 받고 결핵에
걸려 숨진 친구들을 지켜보며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이후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이던 상계동에 병원을 차리고 어떤 치료를 하건 1000원씩만 받는 '1000원 진료'를 수십 년간 실천했다.
김 박사가 건강이 나빠져 은퇴하자, 주 박사가 선뜻 "내가 물려받겠다"고 자원했다.
주 박사는 "평생 봉사활동을 해온 선배가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을 듣고 '내게 아직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 봉사활동을 하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이후 정동의료센터를 물려받아, 6년간 환자들에게 한 푼도 받지 않는 무료 진료를 해왔다.
주 박사에게 치료를 받아온 강모(여·75)씨는 "관절염 때문에 병원 한 번 가면 1만원인데, 여기 오면 약도 공짜로 주고, 물리 치료도 무료로 해 줘서 좋다"고 했다.
정동의료센터에서 3년 동안 자원봉사를 해 온 박순혜(50)씨는 "작년부터 다니던 분의 소개로 새로 오는 환자들이 많다"며 "작년까지 차트가 50개였는데 올해 20개가 늘어 70개쯤 된다"고 했다.
주 박사는 "정동의료센터를 맡은 뒤 '왜 진작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서 병원에 못 가다 보니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많다"며 "약과 주사, 간이 물리 치료밖에 해 줄 수 없어 안타깝지만, 동시에 '내 힘으로 가난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줬다'고 느낄 때 보람이 있다"고 했다.
10년째 주 박사를 수행해온 비서 이기홍(59)씨는 "못하는 일 빼고는 다 한다"고 했다. 주 박사와 이씨는 3년 전, 한쪽 다리를 잘라 집안에서 꼼짝 못하는 환자에게 왕진을 갔다.
주 박사는 그날 빙판에서 넘어져 왼팔 뼈에 금이 가고 신경을 다쳤지만 이후에도 의료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주 박사의 건강도 나빠졌다는 점이다. 주 박사는 "빙판에서 넘어져서 다친 팔이 너무 아파서 더는 제대로 진료하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주 정동제일교회는 홈페이지에 주 박사의 바통을 이어받을 후임자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주 박사는 "여기 누가 나서줘야 내가 마음 놓고 은퇴할 텐데"라며 혀를 찼다. 안면이 있는 후배와 제자 몇을 설득해 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고 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김재한(여·87)씨는 "주 박사가 허리를 고쳐줘서 등을 똑바로 방바닥에 대고 잠을 잔다"며 "동갑인 나보다 백 배는 멀쩡한데 그만두기는 왜 그만둬?"라고 했다.
주 박사는 "김 여사님 무릎 연골은 내가 책임지고 고쳐줄 테니까 다음 주에 또 오라"고 했다. 환자 김씨가 안심한 얼굴로 진료실을 나선 뒤 주 박사는 "내가 은퇴할 때가 되긴 했지만, 누군가 대신할 사람을 구하는 날까지는 계속할 것" 이라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