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28일 자정이 넘은 시각.경기도 안산시 선부동의 한 아파트를 지나가던 주민 a 씨는 우연히 길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원래 해가 지면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인 데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인적조차 없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아파트 후문 길은 황량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저거 사람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a 씨는 가까이 가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a 씨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a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옷이 벗겨진 채 숨져있는 여성의 변사체였다.
↑ 지난 2000년 7월 중국인 산업연수생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현장검증 모습.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8년 전 부녀자 10여 명을 상대로 연쇄적인 강도·엽기성행각을 벌여 안산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중국인 산업연수생에 대한 얘기다.
피해자는 안산시 선부동에 살고 있던 회사원 박선영 씨(가명·24)였다. 조사결과 사건 당일 박 씨는 회사에서 야근을 한 뒤 홀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체의 상태는 끔찍했다. 머리와 안면 부위가 심하게 일그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옷차림 등으로 보아 20대 여성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체가 발견된 도로는 피가 흥건해 사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체의 경직상태나 혈액의 응고상태 등으로 봐서는 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변을 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즉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범인은 박 씨를 살해한 후 현금 3만 원을 훔쳐간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은 우선 목격자를 찾는 한편 사건 발생 시각에 아파트 주변을 수상하게 어슬렁거린 사람은 없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목격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현장에 남은 단서는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피묻은 돌멩이가 전부였다.
무엇보다 수사팀을 놀라게 만든 것은 범행의 잔혹함이었다. 조사결과 범인은 커다란 돌덩이로 박 씨의 머리와 안면 부위를 집중적으로 때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범인은 나뭇가지를 피해자의 은밀한 곳에 집어넣는 식의 변태적인 성행각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과 사체를 면밀히 살펴본 수사팀은 범인이 피해자를 위협한 뒤 엽기적인 성추행을 한 후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분석했다.
만신창이 상태로 널부러져 있는 여성을 본 수사팀원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었다. 도대체 범인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수사팀은 그 일대 거주하는 동일수법의 전과자 및 성범죄자 등을 상대로 집중적인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수상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일대에서 또 한건의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6월 19일 아침 안산시 원곡동의 한 노상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40대 여인이 발견됐다. 원곡동에 거주하는 주부 서경자 씨(가명·41)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발견된 서 씨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서둘러 응급실로 옮겼지만 상처가 워낙 깊은 데다가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사건 당일 서 씨는 인근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서 씨가 발견된 장소는 앞서 박선영 씨 사건이 발생했던 선부동 아파트에서 불과 1km도 안되는 곳이었다. 서 씨 역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안면과 머리 부분이 심하게 손상돼 있었다."
상처 형태로 보아 범행도구는 앞서의 박 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돌멩이로 추정됐다. 그리고 범인은 범행 후 서 씨의 지갑에서 현금 4만 원과 서 씨가 차고 있던 금목걸이를 가져간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팀이 특히 주목한 것은 서 씨에게도 엽기적인 성추행 흔적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단순 성폭행이 아니라 은밀한 부분을 훼손시키는 엽기적인 행각을 했다는 점은 범인의 성향을 특징지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기도 했다.
수사팀은 사건 발생 지역이 가깝고, 범행수법이 비슷해 동일범에 의한 소행으로 추정했다. 수사팀은 서 씨의 진술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 씨는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건 발생 5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수사는 미궁으로 빠졌다. 내로라하는 강력반 형사들이 차출돼 집중 수사에 들어갔지만 범인의 윤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안산시 신길동의 한 노상에서 또 한 건의 유사한 사건이 터지고 만다. 6월 25일 새벽 3시 45분경 귀가 중이던 주부 김명자 씨(가명·34)가 낯선 남자에게 강도를 당한 것이다. 범인은 앞의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돌덩이로 김 씨의 얼굴을 가격해 쓰러뜨린 뒤 피해자를 변태적인 방법으로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김 씨가 지니고 있던 현금 20만 원과 10만 원권 수표 석 장을 빼앗아 달아났다.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김 씨는 사고 직후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한테 발견돼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을 가다 난데없이 변을 당한 터라 김 씨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허름한 옷차림의 20대 남자.' 김 씨가 겨우 기억해낸 범인의 모습이었다. 수사팀은 김 씨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특히 김 씨 사건은 앞서 발생한 두 사건과 수법이 유사했기 때문에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수사팀의 추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슷한 사건이 수일 간격으로 계속 발생했다.
김 씨가 변을 당한 후 안산 일대에서는 두 달 동안 부녀자들 강도·성추행 사건이 무려 7건이나 일어났다. 사건은 선부동과 원곡동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는데 피해자들은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하나같이 비슷한 진술을 했다. 범행수법으로 보나 피해자들이 진술로 그린 몽타주로 보나 범인은 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수사팀은 피가 말랐다. 안산 일대 아파트 단지에서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비상 반상회가 열렸고 '늦은 밤엔 홀로 외출하는 것을 삼가라'는 방송이 연일 계속됐다. 주민들의 불안감도 극에 달했다.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에서는 걱정스레 사건 얘기를 하곤 했다. 아울러 'oo동에 사는 누가 또 당했다더라' '이번엔 만삭의 임산부도 당했다더라'는 식의 흉흉한 유언비어도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찰수사에 대한 주민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도대체 얼굴 없는 범인은 누구일까.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달했을 즈음 수사팀은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 6월 25일 변을 당한 김 씨의 수표가 중요한 단서가 됐다. 범인이 가져간 김 씨의 수표가 안산 일대에서 사용된 정황을 포착한 것. 수표 추적에 들어간 수사팀은 7월 10일 밤 9시 30분경 그 수표를 사용한 사람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범인은 중국인 청년이었다.
왕리웨이(24).
불과 두 달여 동안 2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살인마의 이름이었다.
조사결과 왕 씨는 늦은 시간 홀로 귀가하는 부녀자들만 골라 뒤따라가다 범행을 저질렀는데, 범행 때마다 피해자들의 옷을 벗기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엽기적인 성폭행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족인 왕리웨이는 1999년 9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후 전남 목포시에 있는 한 방직 공장에서 근무하다 그해 11월 초순경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올라왔다. 이유는 "일이 힘들어서"였다. 이후 왕리웨이는 막노동판이나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싸구려 월세방과 고시원을 전전해왔다.
사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안산 지역 경찰에게는 외국인에 의한 범행은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왕 씨의 범행은 이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단순 강도·*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왕리웨이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왕리웨이는 생활비를 마련하고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10여 차례의 범행으로 그가 손에 쥔 돈은 100여 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왕 씨를 조사하던 수사팀은 그가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평소 발기부전증으로 인해 원만한 성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여성과의 정상적인 성관계가 불가능했던 그는 지나가는 여성들을 상대로 몹쓸 행각을 벌인 것이었다. 그는 또 여체를 보거나 상대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성적 만족과 흥분을 느끼는 성도착증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왕리웨이가 피해자들에게 엽기적인 성행각을 벌였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강도살인 등으로 구속기소된 왕 씨에게 2000년 12월 8일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백춘기)는 "개인의 탐욕과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무고한 부녀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잔혹하게 짓밟음으로써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가하고 사회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왕 씨는 우울증 등을 이유로 즉각 항소했지만 2001년 6월 12일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5부(이종찬 부장판사)는 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중형의 원심이 유지되는 것은 외국인 범죄자에게는 다소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범행동기 및 방법이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열하고 잔인하다. 피고인은 정신병 등으로 사리판단 능력이 없는 가운데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지만 정신감정기록 등에 따르면 우울증세가 사리판단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의 의견이었다.
왕 씨는 2001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을 확정받고 7년째 수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