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박 회장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전격 체포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이라고 실토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노 전 대통령의 위선을 보는 것 같아 말문이 막힌다.
조카 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달러를 받은 데 대해서도 “퇴임후 이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정작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특별히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된 것으로 보였지만, 성격상 투자이고, 저의 직무가 끝난 후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심했는데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니 ‘정의’와 ‘청렴’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답지 않아 보인다. 자세한 경위야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경제에는 무능했을지 몰라도 정치를 바로잡고, 부패를 몰아내는 데는 앞장 섰다”는 그의 호언은 그야말로 허언이 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의 고백은 분노, 배신을 넘어 참담함을 자아낸다. 당선자 시절인 2002년 12월 “이권 개입이나 인사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일갈한 그는 형 건평씨의 인사청탁 의혹이 일자 “별 볼 일 없는 시골 노인에게 머리 조아리지 마라”며 일소에 부쳤다. 측근 수사엔 “언론이 깜도 안 되는 것을 갖고 소설을 쓴다”고 공박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임기 중) 무슨 사건에서 비자금이 나오고 정·관계 로비라는 말이 나온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큰 소리를 쳤을 정도다.
이미 드러난 참여정부의 권력형 비리 정황도 충격적이다. 형님과 조카사위, 가신과 측근들도 모자라 결국 자신까지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뭐라 할 것인가. 더구나 뒤늦은 고백을 촉발시킨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죽마고우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드러날 비리의 실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얼마전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돼 버렸다. 이제는 감출 수도 없게 됐고, 다 털어버리겠다”고 한 으름장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제 스스로 밝혔듯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여 한치 의혹도 없이 진상을 밝히고 이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한 때 그를 성원했던 지지자들과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죄를 구하는 일이다. 혹여 이번 고백이 측근 세력을 비호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라면 노 전 대통령은 두번 죄를 짓는 것이다.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80246405&code=99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