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개의 무게는 대략 35~40g. 누군가가 던진 계란을 얼굴에 맞는다면 어떨까. 상처가 나진 않겠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면 잠깐이나마 얼얼한 통증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계란 세례는 상대방에게 물리적 고통이나 상처를 주려는 행위는 아니다. 그보다는 얼굴 등 몸에 계란을 맞아 노른자와 흰자로 범벅이 된 상대방이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계란이 시위 도구로 사용돼 왔다. 토마토, 파이 등도 사용됐지만 운반의 편리성이나 투척의 수월성 측면에서 계란만한 게 없다.
▦계란 세례를 받은 국내 인사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거물들은 한두 번 이상 계란 세례를 받았다. 1991년 6월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에 대한 한국외대생들의 밀가루ㆍ계란 세례 사건은 마지막 강의를 하러 온 스승에게 가한 행위였다는 점에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정치인 뿐만 아니다. 99년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병역 훈련을 위해 귀국했다가 공항에서 계란을 맞았고, 정진석 추기경은 2년 전 태릉성당 납골당 설치에 반발한 지역 주민들로부터 봉변을 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 전까지 세 차례 계란 세례를 받았다. 90년 부산 집회에 참가했다가 혼자 3당 합당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계란을 맞았다. 2001년 5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외국자본으로라도 공장을 돌려야 한다"고 노조를 설득하다 노조원이 던진 계란에 맞는 곤욕을 치렀다. 당시 그는 옷에 묻은 계란을 닦아내며 "노조원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때인 2002년 11월 13일에는 여의도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해 연설하다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이 던진 계란을 오른쪽 턱에 맞았지만 얼굴을 닦은 뒤 연설을 끝까지 마쳤다.
▦하루 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정치하는 사람들이 좀 맞아 줘야 국민들 화가 좀 풀리지 않겠습니까." "두 차례 계란 세례를 받을 때마다 일이 잘 풀렸는데, 이번 농민 문제도 잘 풀릴 겁니다."노 전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에 출두하던 날 그가 탄 버스가 보수단체의 계란 세례를 받았다. 보수, 진보의 이념을 떠나 노 전 대통령에게 계란이라도 던져서 국민의 화가 풀리고, 분이 삭고, 배신감이 덜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 전 대통령이 이번에도 문제가 잘 풀릴 거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출처 한국일보 황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