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유연화가 최대 과제" 대통령 망언에 경제지들은 환호 (펌글)

philp 작성일 09.05.10 08: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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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망언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노동유연성 문제는 올해 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최대 과제"라고 했다. 7일 과천 기획재정부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다. 이 대통령은 "과거 외환위기 때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점이 크게 아쉽다"면서 "이번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유연성 문제를 개혁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유연성이 국정 최대 과제? 최우선적으로 해결?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것도 노동유연화가 안 돼서? 상식 이하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이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언론의 반응이다. 특히 경제지들은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번 기회에 근로기준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특히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경직된 노동시장", "정규직 과보호"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 8월 기준으로 모두 544만명, 비율로는 33.8%에 이른다. 임금은 정규직의 60.9% 수준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은 이미 비정규직 비율이 50%를 훌쩍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시직 비율은 2위, 연간 노동시장과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 산재 사망자 수 등은 압도적인 1위다. 그런데도 더 유연화해야 한다고?

한국경제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고용 및 임금 부문의 노동경직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소의 소신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 기업의 채용확대로 오히려 고용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는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데 대한 강한 불만 표현"이라는 해설을 곁들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고용분야 경쟁력이 178개국 가운데 152위를 기록해 거의 꼴찌 수준"이라는 세계은행 조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 매일경제 5월8일 28면.   매일경제는 "기업이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세계 경제위기와 같은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기업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꿈보다 좋은 해몽을 내놓았다. 이 신문은 한술 더 떠서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도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면서 "노동부는 현행법이 7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6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매일경제가 제안한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은 대략 이렇다. 가시적 경영위기 등도
정리해고 사유로 인정하자는 것, 그리고 해고구제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시간제 노동자 활용비율을 높이고 단체협약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임금 삭감과 반납으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 등이다. 한 마디로 임금을 깎고 자르되 필요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마음껏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한국경제 5월8일 5면.   머니투데이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자료를 인용했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6년 동안 최하위 수준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할 때 드는 비용이 91주 임금에 해당해 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보다 3배나 많다"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도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존 워커 맥쿼리 그룹 한국 대표의 말을 인용해 "노동시장 경직성은 국제경쟁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고 지적했고 한국 투자펀드인 IIA의 헨리 세거맨 대표의 말을 인용, "기업이 경영상 필요할 때마다 조건 없이 해고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망언이나 언론의 환호는 새삼스럽게 반박할 가치도 없는 모순투성이다. 정규직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되고 비정규직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그 반대로 돌려도 말이 된다. 비정규직의 처우가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목을 매고 해고를 두려워하고 결국 임금 투쟁에 매달리게 된다. 비정규직=반값 월급, 그리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처우를 낮추면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어 채용이 확 늘어날까. 황당무계한 발상이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아니라도 마음대로 자를 수 있게 만들어주면 부담없이 채용할 수 있게 될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나고 일시적으로 채용도 늘어날 수 있겠지만 노동자들의 처우는 하향 평준화될 뿐이다. 노동생산성도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금을 깎아서 중국이나
필리핀, 베트남과 경쟁할 생각일까.

우리나라가 노동 유연성이 최하위 수준이라는 세계은행의 자료는 퇴직금을 해고비용으로 보는 등 설문 내용이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해마다 적립해야 하는 퇴직금은 해고비용으로 보기 어렵다. 한달 월급만 주면 언제라도 해고가 가능한 싱가포르보다는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퇴직금은
급여의 한 부분이라고 보는 게 맞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으로 애초에 객관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최하위 수준이라는 건 객관적인 비교 지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 기업 경영자들이 그만큼 노사관계에 적대적이라는 지표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툭하면 이 '듣보잡' 수치들을 끌어와 노동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잠꼬대를 반복해 왔다.

유일하게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에서 반박한 언론은 경향신문 밖에 없었다. 경향신문은 "비정규직 850만 현실 무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동유연성 확대가 아닌 비정규직의 고용안전성 확보가 훨씬 시급한 사회적 과제"라면서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노동시장 유연성을 고집하는 것은 거꾸로 가는 것"이라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비판했다.

KBS와 MBC, SBS, YTN 등 방송들도 이 대통령의 발언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쳤다. 사실 더 심각하게 경직된 것은 노동시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편향된 노동관일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해소는 인권의 문제다. 부당한 차별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해야 노동유연성도 확보된다.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하고 싶으면 당신들 직장이나 마음껏 유연화하시라. 경쟁력이 높아지고 기사 퀄리티도 좀 높일 수 있을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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