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명박과 왜 싸우나

가자서 작성일 09.05.18 23: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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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명박과 왜 싸우나 이명박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보이지 않는 헤게모니 싸움을 벌인다.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로 촉발된 양측 갈등이 한나라당 재·보선 참패 이후 본격화되었다. newsdaybox_top.gif [시사IN 87호] 2009년 05월 11일 (월) 15:05:19 고재열 기자 newsdaybox_dn.gif     ⓒ캐리돌 제작:시사IN 양한모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4·29 재·보선은 올해 상반기 벌어진 정치 이벤트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여권이 처음 생각한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4·29 재·보선의 함수관계는,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이 가해졌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재·보선에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사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역풍’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수사가 ‘정치적 실익 없는 정치 보복’이 되고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4·29 재·보선에 참패하자, 여권 지도부는 다시 수사에 눈을 돌렸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에 가려지기를 기대했다. 물론 야당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여권의 실정을 몰아붙였다. 여당 소장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쇄신론을 들고 일어섰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실정에 대한 심판 선거였다며 ‘골을 질렀다’. 그러나 애초의 기대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진짜 방해자가 나타났다. 바로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박연차 리스트’ 중 여권 인물에 대한 수사와 근본적인 쇄신을 촉구하며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재·보선 참패와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거세게 몰아붙였다. 재·보선 참패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을 끌어들이고 근본적인 쇄신을 하라고 요구했고,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서는 여권 관련자도 수사하라고 주장했다. 재·보선 패배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 관련 기사로 도배하며 재·보선 결과를 형식적으로 다룬 중앙일보·동아일보와는 달랐다.

5월4일 조선일보가 ‘참패하고도 나 몰라라, 여권 ‘신종 민심불감증’ 걸렸다’(5면)라는 기사를 내보내자 한나라당 내 개혁적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소속 의원들이 당·정·청 쇄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조선일보는 ‘마이크 든 여 초선들, 패기도 감동도 없었다’라고 기자회견 내용이 약한 것을 질책하며 계속 군불을 지폈다. 머뭇거리던 소장 개혁파 의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연차 리스트’의 여권 인물 수사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목소리를 높였다. 4월21일, MBC <뉴스 데스크>에서 이 대통령 측근인 기업인 C씨가 연루되어 있다고 언급한 이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실명을 언급하기 시작한 곳은 조선일보였다. 4월23일자에서 조선일보는 천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 고발을 막기 위한 대책회의를 수시로 열었다고 보도했다. 

여권 쇄신과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조선일보의 요구는 형식적인 수준에서는 김무성 원내대표론과 천신일 회장 수사에 머무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조선일보의 탄착점은 그 너머에 있다. 두 사안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밤의 대통령’과 ‘또 하나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형이 맞선 것이다. 

재·보선 참패 이후, 여권 맹공


한나라당 쇄신과 관련해 조선일보는 김무성 원내대표론에 힘을 실어줬다. 5월6일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되나’(1면), 5월7일 ‘김무성 원내대표 만들기 시동’(1면), 5월8일 ‘여권 주류, 냉랭한 박에 당혹… 김무성 카드 죽지 않았다’(4면) 등 김무성 카드를 밀며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운영에 개입할 길을 적극 열었다. 이는 소장파와 친박을 부추겨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서도 조선일보는 천신일 회장 수사를 넘어서 이상득 의원까지 수사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4월11일 사설에서 ‘추씨는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했다고 하지 않는가’라며 이 의원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20일 “천신일은 조사 대상이지만 이상득 의원은 아니다”라고 말한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난한 조선일보는 이 의원이 청탁한 대상으로 알려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소환 수사하라고 압박했다.

   사진은 방우영 명예회장(왼쪽)의 팔순 잔치 모습.조선일보가 주장하는 ‘박근혜 전 대표 포용’과 ‘이상득 의원 퇴진’은 바로 큰 틀의 ‘권력구조 개편’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을 극도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조선일보의 이런 주장을 이명박 대통령은 받아들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수를 살펴야 한다.

먼저 조선일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견제 세력으로 나선 이유다. 일단 상업적 판단을 들 수 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편집국 종례식에서 한 편집국 간부가 기자들에게 “지난 10년간 좌파 정권 하에서 조선일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한다. 위치를 잘 잡아야 한다.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독자에게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의 곁불만 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기조는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을 넘어서면서 더욱 강화된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집권 1년의 성과를 조명하는 기사를 주로 내보낼 때 조선일보는 “지난 1년간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답한 국민이 75%에 이른다”라며 비판적으로 다뤘다. 사설에서도 “국민의 이런 메시지를 바로 들으려면 대통령, 그리고 이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들은 거울을 달고 그 속에 비친 자신들의 얼굴이 집권 1년 만에 얼마나 어떻게 변했나부터 냉철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정부 비판은 전략적 선택

지난 3월5일, 방상훈 사장은 창간 89주년 기념식에서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고 기둥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리의 조선일보를 굳건히 지켜나가겠다”라고 말하며, 조선일보의 방향과 관련해 “우리는 독립적이고 탈권력적으로 가야 한다. 과거 정치권력에 편승한 어떤 집단도 결국 부나방이 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한 조선일보 기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비판적 기조가 사장부터 편집국 간부를 거쳐 기자들에게까지 두루 공유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 기조는 어디까지나 원칙론일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조선일보는 ‘방송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뤄야 했기 때문에 정권에 대해 비판적 태도만 견지할 수 없었다. 올해 신년사에서 방 사장은 “이제 실험은 끝났다. 시행에 옮겨야 할 때다”라며 방송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조선일보는 다른 보수 신문과 마찬가지로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집착했다.

이때 조선일보의 기준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미디어법 개정에 도움이 되면 선이고 방해가 되면 악이었다. 정기국회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고 버티자 “시종일관 입법부 수장답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가 3월 임시국회에서 직권상정으로 야당을 압박해 여당 주장을 수용한 수정안을 받아들이게 만들자 ‘김형오의 고도전략’이라고 칭찬했다.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태도도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미디어법 개정을 뒤에서 지휘한 이 의원에게는 호의적이었던 반면 이를 방관한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종교 지도자냐’며 비판하기도 했다. 1월12일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 “당이 진통할 때는 딴전 보고 있다가 막판에 나타나 스스로 정치권의 대모인 양 ‘재판’을 한다. 야당이 ‘MB 악법’이라며 폭력으로 저지하고 있는 여당의 법안들을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법’이라며 단칼에 매도했다”라고 비판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오른쪽 사진 오른쪽)은 방일영·방우영 등 선대 사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권과 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과의 야합을 넘어선 ‘권력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태도가 왜 바뀌었을까? 그 답은 ‘장자연 리스트’ 수사와 관련이 깊다. 조선일보는 이 수사와 관련해 사주 일가가 연루되어 있는 것을 매우 큰 문제로 받아들였다. 사주 일가가 연관되었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이 사건을 잘 다루지 않았을 것이라는 선입관과 달리,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가장 적극 보도한 언론사였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사실 관계를 규명해 사주의 누명을 벗기려고 애썼다. 한 일간지 편집국장은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조선일보 홍준호 편집국장으로부터 두 번이나 전화가 걸려왔다. 이전에는 사적으로 통화한 적이 없는 사이였다. 조선일보가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루머만 범람했다. 경찰 수사 결과 발표가 연기되면서 연루설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경찰도, 어느 의미에서는 정권도 이 ‘장자연 사건’의 진행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당국의 무능과 무력 또는 관음증(?)이 사태의 ‘주연’ 같고, 일부 ‘안티 조선’의 조바심이 ‘조연’처럼 보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4월13일자).

이명박 정부와 조선일보 사이에 틈새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균열의 양상을 묘사하는 말이 바로 ‘뿔난 시어머니’와 ‘못된 며느리’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집권 초반의 혼란도 극복하고, 촛불집회도 가라앉은 상황에서 계속 시어머니 구실을 하려 드는 조선일보에 이명박 정부가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해석되었다. ‘장자연 리스트’ 수사를 계기로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기조를 강화한다. 조선일보를 흔든 정권에 대해 조선일보 역시 흔들기로 답한 것이다.

‘주류 흔들기’에 나선 조선일보가 공략한 대상은 대선 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였다. 4월11일 ‘노 정권선 노사모, 이 정권선 선진국민연대?’라는 1면 기사를 통해 포문을 연 조선일보는 다음 날 ‘선진국민연대를 둘러싼 후진적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서 거푸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소장파 부추기며 주류 흔들기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부의 긴장이 읽힌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의 축으로 삼는 자전거 관련 보도 태도였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대한민국 자전거 축전’을 기점으로 자전거 관련 기획기사를 여러 날에 걸쳐 여러 지면을 털어 집중 조명했다. 오직 조선일보만 이를 뜨뜻미지근하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비판 목소리를 적극 담아냈다. 이때부터 조선일보 지면에는 청와대와 당을 아울러 소장 개혁파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4월24일, ‘사교육과의 전쟁’을 하겠다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인터뷰를 내보내고 정두언 의원과 이주호 교육과학부 차관을 엮어서 개혁 그룹에 대한 그림을 그려준다. 이 대통령이 곽 위원장을 나무란 뒤에도 조선일보는 지속적으로 곽 위원장의 주장을 반영한 기사를 내보냈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참패 이후에는 권력 주류에서 밀린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민본21 등 소장파 의원을 전면에 내세우며 당 쇄신론에 불을 지폈다. 조선일보 보도 태도가 거칠어지자 한 한나라당 중진 의원은 “조선 박자와 중앙·동아의 박자가 다르다.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중진은 이후 조선일보 박자에 춤을 추는 행보를 선택했는데, 재·보선 참패 이후에는 조선일보와 함께 비판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조선일보의 ‘주류 흔들기’는 재·보선 참패를 기점으로 탄력을 받았다. 대체로 이명박 정부 주류와 보조를 맞춰가는 양태로 기사를 내보냈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천 회장 수사를 적극 보도하는 등 조선일보 보도와 톤을 맞추기 시작했다. 당 개혁과 검찰 수사도 사실상 ‘조선일보 프레임’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조선일보 프레임’의 골자는 이상득 배제와 박근혜 복귀로 집약된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2월 말 비밀회동을 한 사실을 보도하며 이에 대한 군불을 지폈다. ‘김무성 원내대표’라는 절충안을 박 전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상황이 꼬였지만 조선일보는 계속 이에 집착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다음 수를 어떻게 둘지 주목된다.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부의 기 싸움과 관련해서는 올해 초 개각 논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조선일보가 설 연휴를 기점으로 부분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고 보도하며 흔들었지만 청와대는 이를 부인하며 맞섰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보도한 대로 경제 부처 장관이 교체되고 국정원장·경찰청장 등 사정기관장 역시 교체되었다. 특히 조선일보가 강력히 교체를 주장했던 강만수 경제팀 경질이 이뤄지면서 이 싸움은 조선일보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 포용과 함께 관심을 모으는 지점은 청와대 참모진 개편 여부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수석 보좌진을 교체한 지 1년이 되는 6월을 기점으로 본다. 참모진 교체까지 이뤄진다면 ‘조선일보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절대 권력의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친형을 버리고 ‘뿔난 시어머니’ 조선일보를 달래고 갈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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