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너무도 아찔했던 6.10 민주항쟁

가자서 작성일 09.06.09 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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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너무도 아찔했던 6.10 민주항쟁 [아고라 change님 글]

 

 

 

내일이면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지 꼭 22주년이 되는 날이군요.

작년 이맘때쯤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문화제와 맞물려 더 나은 대한민국과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

하여 살신성인 했던 수 많은 분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 분들께 감사 드리는 한편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

니다.

 

당시 독재타도를 외치던 국민들의 분노를 한층 더 끌어 올리게 된 고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사건은 결

국 직선제라는 커다란 결실을 국민들에게 안겨 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음은 부인하

기 어려운 사실일 것입니다.분명 22년전의 그 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한 너

무도 소중한 날임이 분명할 것이지만 한편으로 제게는 너무도 아찔한 순간이었으며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

면 온 몸에 전율이 올라오며 부르르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는듯 합니다.

 

그 당시 저는 군에 몸을 담고 있었으며 제가 속한 부대는 일명 ' 충정부대 '로서 사회에서 각종 과격시위나 집

회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경찰력이 투입되고 진압을 하게 되지만 그 규모나 시위방식이 너무 격하여 도저히

경찰력만으로 진압이 안 되는 극한 상황에서 바로 저희같은 부대가 출동하여 제압을 하고 질서유지를 도모

하는 것이 저희 부대의 임무중 하나였었습니다.물론 그 충정훈련이라는 것은 차라리 100km 행군을 하고 말

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고되고 힘든 훈련이었으며 무더운 날씨에도 방독면을 쓰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에서 진압봉을 들고 여러 자세를 취하거나 이리 저리 뛰어 다닐때는 정말 고통 그 자체였던것

같습니다.

 

1987년 6월...

당시 바깥의 분위기는 " 호헌 철폐 독재 타도 " 등의 구호를 외치는 수 많은 시위대들의 모습과 일제히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 상가앞 도로에서는 화*과 돌이 날아 다니며 거기에 최루탄으로 맞서는 정말 전쟁

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으며 그 시위의 강도나 참여 인원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 나면서 혹시 진짜로 시

위현장에 출동하게 되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며칠후 시위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어지고 결국 저희 부대에는 출동대기 명령이 떨어졌으며 각종 외박 외출

휴가가 금지되고 수송부에 가득찬 차량들은 방석망을 두르기 시작했으며 저희 소대도 흥분된(?) 마음으로

분주히 완전군장을 꾸리고 출동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취침시에도 군화를 벗지 않고 출동 명령만을 기다

리는 극도의 긴장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그 당시 부대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화*과 쇠파이프 각목 돌들이 난무

하는 무시 무시한 현장으로 투입되어야 하고 또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국민들을 방어의 개념이 전혀 없

는 오로지 공격만의 목적을 갖고 진압 해야만 하는 절박한 심정을...내가 살려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진압을

해야만 하는 그 심정을...

 

고참 한 분이 저희에게 '네들이 살기 위해서는 오로지 가차없는 진압밖에 없으며 현장에서 단 한발짝이라도

후퇴하는 놈이 있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엄포에 저와 동기들은 너무 무섭기도 하고 혹시 현장에서 다

치지는 않을지 또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해지고 숨은 가빠오기 시작했으며 그 말을

내뱉고 되돌아 서는 고참의 뒷모습에서도 왠지 모를 두려움이 보이는듯 했습니다.


그렇게 언제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긴박한 시간이 흘렀으며 그 때는 한 시간이 마치 하루처럼 느껴지

는 고통속의 시간이었던것 같고 식사시간에 밥을 먹는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

도로 입맛도 뚝 떨어지고 머리속에는 오로지 시위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관하여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물론 저희 소대 역시 기나 긴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고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

습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고참들의 가차없는 구타나 처절한 얼차려가 있었으며 그런 분위기에서 저 또한 한

없이 입술을 깨물며 '정신 똑바로 차리자 정신 똑바로 차리자' 를 속으로 연발했습니다.
 


그런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소대장님께서 내무반에 다급하게 들어 와 노태우 후보가 직선제를 받

아 들이겠다는 발표를 잠시전 했다고 큰 소리로 알려 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저희 소대원들은 서로를 얼싸

안으며 환호성을 지르고 정말 기뻐했으며 그동안 긴장으로 굳어있던 근육이 한 순간 풀려옴을 느낄 수 있었

습니다.물론 그 발표에 시위는 급속히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저희 부대에 내려졌던 출동대기 명령도 해제되

었으며 부대원들의 긴장 어린 눈빛도 평상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분명 서울대생 고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은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로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들의 석방 및 민주주의의 초석인 직선제라는 소중한 결실을 맺은 결

코 잊을수 없는 소중하고도 아픈 경험이었지만 어쩌면 그 시기가 저에게는 너무도 아찔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사단장님 앞에서 충정훈련 시범을 보일때 온 천지를 진동케 한 수천명의 병사들이 발 맞추어 내는 무시무시

한 군홧발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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