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준? 일단 정지하라!

가자서 작성일 09.06.23 15: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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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비준? 일단 ‘정지’하라!

 

 

미국은 자국산 자동차의 ‘강제 판매’ 전략을 들이대고, ‘30개월 이상 쇠고기’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우리가 먼저 FTA를 비준하면 최후의 카드만 버리는 꼴이다. 협상 카드를 축적해 재협상에 대비해야 한다. newsdaybox_top.gif [80호] 2009년 03월 24일 (화) 12:40:32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newsdaybox_dn.gif    수년 내 현대·기아차 미국 법인의 현지 생산 비중이 70%에 달할 것이므로 관세를 철폐해도 미국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위는 평택항의 자동차 선적 전용부두.지난 3월 초 발표된 <2009 무역정책 어젠다 및 2008 연례보고서>에서 미국 무역대표부는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현재 계류 중인 통상협정들을 처리하기 위한 실행 계획을 의회와 협의 아래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파나마 FTA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하기를 바란다. 콜롬비아와 한국의 FTA와 관련해서는 진전을 위한 기준(benchmarks)을 정할 계획이다.”

3월9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지명자에 대한 미국 상원 재경위 인준 청문회 말미에 한 의원이 물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을 정했는가?” 커크의 답변이다. “아직 명확히 정의된 기준은 없다. 현재 상태(status quo)로는, 수용할 수 없다.” 같은 날짜 서면 답변서에서는 자동차 조항 말고 다시 협상해야 할 조항이 있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해결해야 할 다른 쟁점이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generally) 한·미 FTA를 지지한다.” 국내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커크 지명자가 ‘오락가락’한 것으로 보도했지만 문맥상 그렇지는 않다. 곧 자동차 조항은 수용할 수 없고 그 외 다른 조항에 혹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협정문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청문회 이틀 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하원 세입세출위 무역소위 위원장 레빈 의원은 “의회를 통과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쟁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무역소위는 FTA 관련 법안을 가장 먼저 다루는 소관 위원회다. 레빈 의원은 한·미 FTA와 관련해 자동차 문제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미 합의한 한국차에 대한 미국의 수입관세 2.5% 즉시 철폐 대신, 15년 뒤에나 한국차 수입관세를 철폐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수출이 일정 기준을 넘어선다면, 한국 자동차 비관세를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크 대표의 발언 뒤 과연 이것이 재협상 요구인지 아닌지, 특히 정부측은 공식 발언인지 아닌지를 논란으로 삼았다. 필자는 이것이 실소를 머금케 하는, 그래서 소모적 논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자면 ‘재협상(renegotiation)’은 명확히 정의된 법률 용어가 아니다. 그저 보통명사일 뿐인 이 말을 우리처럼 괴이하게 사용하는 나라도 없을 듯하다. 마치 이 말이 ‘추가’ 협상하고 엄청난 차이라도 나는 것처럼 말이다. 재협상이란 이미 합의된 사항을 고치거나 혹은 여기에 무엇을 추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재협상 없는 협상은 아예 있을 수 없다. 미국은 한·미 FTA 재협상을 이미 요구했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독소·불평등 조항을 재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무역대표부 연례보고서가 말하고, 무역대표부 대표가 확인하고, 소관 상임위 위원장이 언급한 의회 통과 기준, 곧 ‘벤치마크’는 위에서 보듯 아주 구체적이다.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산 자동차 수입관세 15년 뒤 철폐, 관세와 한국 내 내수시장에서의 미국산 자동차 점유율과 연동하겠다는 주장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레빈은 한·미 FTA가 타결되기 훨씬 이전부터 ‘한·미 자동차 공정무역법안’ 등을 통해 이런 주장을 해온 사람이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미국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부시가 추진하던 각종 FTA에 급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특히 한·미 FTA 마지막 협상 즈음에 민주당은 공화당과 함께 ‘초당적 의회 제안’을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에 던지면서 강하게 압박했다. 협상 막바지에 불거진 민주당의 강공 드라이브는 한·미 협상팀 모두를 곤혹스럽게 했다. 결국 일곱 가지 요구 중 여섯 가지를 우리 측은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이 가운데에는 우리가 협정을 위반할 경우 철폐된 관세를 원상 복구한다는 ‘스냅백(snap-back)’ 같은 독소조항을 비롯해 심각한 문제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미국 의회가 가장 강력히 밀어붙인 제1번이 수용되지 않은 것이다. 그 1번이 바로 한국산 자동차 관세 철폐와 한국 내 미국산 자동차의 시장점유율 목표 설정이다. 즉 미국차 수출이 ‘상당 수준’에 도달할 때 관세 철폐 가속화를 협의하자는 것이다. 레빈 위원장이 한·미 FTA 의회 통과를 위한 ‘기준’으로 언급한 바로 그 내용이다.

그동안 정부 측이 한·미 FTA를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이유는 사실 자동차 협상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100개가 훨씬 넘는 협상 쟁점 가운데 거의 8할은 미국이, 고작 1할 못 미쳐 우리가 협상 목표를 달성했다. 자동차와 관련한 우리 측의 협상 목표는 ‘조기’ 철폐였다. 통상협상에서 ‘조기’란 대개 3년 정도라고 본다. 그런데 결과는 ‘즉시’ 철폐였다. 당연히 그에 상응한 무언가를 넘겨주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거의 유일하게 협상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경우다. 그러나 미국의 셈법은 달랐다. 당시 미국 협상 대표가 의회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대미 수출 물량이 약 60만 대인데, 어차피 수년 내 현대·기아차의 미국 내 현지법인의 현지 생산량 비중이 70%에 달할 것이므로 관세를 철폐해도 미국이 손해 볼 일이 없다는 말이다.

자동차 관세가 ‘즉시’ 철폐로 타결된 뒤 환호작약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 어쩔 것인가. 3년 뒤가 무언가, 지금 미국은 15년 뒤를 말한다. 사실 자유무역하고는 무관한, 차라리 미국산 자동차의 강제 판매와 다름없는 새로운 전략을 들이대고 있지 않은가. 그토록 자랑하던 한·미 FTA의 성과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지경이다. 이제 뭐라고 말을 바꿀 것인가. “한·미 FTA 재협상, 추가 협상 없다”라고? 그러면 한·미 FTA가 통째로 날아갈 판이다. 만에 하나 우리가 선비준할 경우, 최후의 협상 카드를 날릴 뿐만 아니라 재비준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미국 상원은 다시금 쇠고기 ‘30개월 이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음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일단 ‘정지’가 최상책이다. 그런 다음 미국 내 통상 정책 흐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 회기에 발의되었다가 이번 회기에 재발의될 새로운 통상법(TRADE Act)에 주목해야 한다. 이 통상법은 우리에게도 유리한 새로운 조항을 여럿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는 역시 재협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상 카드를 축적해야 한다. 한·미 FTA 내의 수많은 독소, 불평등 조항이 그것이다. 투자자-정부소송제(ISD) 등은 어차피 미국으로서도 부담이다. 지난해 여야는 ‘가축법’ 개정 협상 당시 일본·타이완 등 우리 주변국이 우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할 경우 ‘재협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쇠고기 역시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재협상 카드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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