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 간 국민의 알 권리
한·미 FTA 문건 유출로 실형을 선고받은 정창수씨에 대한 항소가 기각되었다.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상황은 돌변해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진짜 국익을 해친 건 누구일까?
[80호] 2009년 03월 24일 (화) 11:59:34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요사이 별의별 달인이 다 등장하지만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숫자의 달인이다. 아니 정확히는 예산의 달인이다. 정창수(40). 지금처럼 전례 없는 ‘슈퍼 추경안’을 놓고 여야가 떠들썩한 상황에서 그는 참 그리운 존재다. 아니 아쉽다는 표현이 맞다. 그는 국회, NGO, 언론계에서 ‘사부’로 통하는 몇 안 되는 인사다.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돈 장부’로 세상을 읽는 그는 경계 없는 전문가라 할 만하다.
그가 예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건 2000년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라는 시민단체가 출발하면서 내놓은 역작 ‘밑 빠진 독 상’을 기획·추진하면서다. 그가 단체를 그만두기 전까지 30여 차례, 30조에 달하는 정부의 예산 낭비 사례를 지적해 제도 개선과 사업 취소가 이뤄졌다. 그는 또 과외 선생 노릇을 하느라 바빴다. 4년 간격으로 국회가 물갈이될 때마다 국회의원, 보좌관들에게 불려 다니며 ‘예산 보는 법’을 가르쳤고, 지자체의 누수 예산과 싸우는 NGO 활동가들을 위해서는 지방 강의도 마다 않는 열혈남아였다.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복역 중인 정창수씨.예산 전문가에서 한·미 FTA 감시자로
그렇게 예산 전문가로 제도권 밖을 종횡무진하더니, 2006년 여름 국회 보좌관으로 들어가 한·미 FTA를 들입다 파기 시작했다. 이런 그를 두고 이태호 당시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한미FTA특위 자료 열람실 방문기록에서 정창수 이외의 이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협상 관련 기록을 매번 빠짐없이 열람한 유일한 보좌관이었다”라고 말했다. 한·미 FTA는 시종일관 정보 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컸다. 국회의원조차 복사 금지에 필사 열람만, 그것도 영문 자료 상태로 극히 제한된 수준에서 접근 가능했다. 국가 전 영역과 미래 세대의 삶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외협상에 대해 국회의 감시와 견제 활동은 원천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무기력한 입법기관의 헌법적 의무’를 다하려던 그에게 일이 터졌다. 이른바 ‘한·미 FTA 문건 유출 사건’이다. 정씨가 공개한 대외비 자료는 정부가 6차 협상을 앞두고 작성한 협상 방침을 담고 있었다. 핵심은 우리 정부가 중요한 협상 목표로 제시해오던 미국의 반덤핑제도 완화 등 무역구제안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내용이었다. “통상 마찰 완화로 수출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정부의 ‘홍보’를 뒤집는 중요 사항이었다. 국회 진상조사에서는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지만 청와대의 지시와 외교부의 수사 의뢰로 정씨는 실형 9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그리고 다시 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3월18일 ‘신영철 대법관 효과’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위기에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재판을 지켜보던 정씨의 가족과 지인들은 판결문을 낭독하던 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2부 조용준 부장판사)가 비밀 누설의 결과에 대해 “뚜렷한 영향은 없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으나 결과는 ‘항소 기각’이었다. 사전에 협상 전략을 노출해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1심 판결의 되풀이었다. 미국이 재협상을 선언한, 달라진 FTA 정세도 판결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무조건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와 닮은꼴이다.
정씨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곳에는 많은 분이 이미 들어와 있고 또 들어오고 있습니다. 미네르바도 용산 철거민도…. 역동적인 우리나라, 다이내믹 코리아가 이렇게 저리게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그는 지금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이 쓰던 서울구치소 독방에 있다.
한·미 FTA, 당신과 상관없다고요?
한·미 FTA는 미국 초국적 기업의 이해에는 부합하겠지만, 한국의 대다수 기업·노동자·서민의 이해와는 정확히 반대일 것이다.
장영희 전문기자 cool@sisain.co.kr
장영희 전문기자한·미 FTA는 미국 초국적 기업의 이해에는 부합하겠지만, 한국의 대다수 기업·노동자·서민의 이해와는 정확히 반대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9월7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표 계산을 하면서 의회에 제출 시기를 살피고 있는 미국 정부와 비교하면 참으로 과단성 있는 면모이다.
두 나라 모두 한·미 FTA 비준안이 올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올해 말과 내년 대통령 선거라는 빅매치를 앞둔 두 나라 정치인들로서는 한·미 FTA 비준을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을뿐더러 기실 골치까지 아픈 탓이다.
하여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은 모면했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언론의 책임이 크지만, 지난 4월 협상이 타결되면서 일반 국민은 한·미 FTA가 끝났다고 생각했고 깊은 무관심에 빠져 있었다. 반대하든 찬성하든 협상 타결을 상황 종료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한·미 FTA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협정문을 가로로도 보고 세로로도 보고, 제대로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가혹하리만큼 헤집어봐야 한다.
왜? 한·미 FTA는 한국민에게 무시무시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는 물론 이들의 말을 주로 듣는 필자 같은 경제부 기자들은 개방과 자유무역을 적극 지지할뿐더러 신봉하기까지 한다. 우루과이라운드와 DDA(도하개발어젠다) 같은 다자 간 협상이 진행될 때 농업이 거덜난다며 열을 올리던 사회부 기자들에 맞서 경제 기자들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 처지에서는 실보다 득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필자 역시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FTA ”
하지만 FTA라는 양자 간 무역협정은 다자 간 협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자 틀에서는 어느 한 나라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포함되면 타결이 안 되지만, 양자 틀은 다르다. 양쪽의 국력과 시스템 혹은 의사결정 방식에 현저한 차이가 생기면, 이른바 ‘비대칭성’이 크면 일방적으로 당하는 협상이 되기 십상이다. 한·미 FTA가 꼭 그랬다. 그러니 굴욕적이니 불평등한 조약이니 하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연합뉴스*지난 8월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과의 FTA는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FTA’라고 한다. 이 말은 한국의 한·미 FTA 반대론자들 주장이 아니다. 미국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세계은행(IBRD)이 2005년 연례보고서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거칠기는 하지만 FTA 유형은 한·칠레 같은 ‘남남형’과 유럽이 주도하는 EU형,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형 FTA로 나눌 수 있다. 더 크게는 ‘미국형’과 ‘미국형이 아닌 것’으로 나눈다. 미국형이 아닌 FTA는 관세를 어떤 제품에 언제까지 없애고 예외 품목을 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투자자 보호와 서비스 등 특별 상품에 대한 조항이 따라붙는 정도다.
하지만 미국형은 다르다. 미국은 자신이 가진 특별한 힘을 이용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몇 가지 장치를 사용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표준형 요구다. 여기서 표준형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미국형이다. 실제 협상 과정은 이 표준형에서 약간 수정을 가할 뿐이다.
실제로 협정문을 살펴보면 이대로 비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국 정부는 섬유에서 조금 이득을 얻기 위해 스위스 국민들이 바로 이 때문에 국민투표로 협상을 중단시킨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을 허용했다. 협상을 하기 전부터 이른바 선결 요건으로 받아들인, 광우병 위험이 사라지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가 버젓이 식탁에 오르고 있다. 선진국 미국의 ‘후진적인’ 의료 시스템도 이식하려 하고 있다. 무엇으로도 바꾸어선 안 되는 것이 국민 건강이지만, 그에 따른 대가도 찾아볼 수 없으니 참으로 당혹스럽다.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는 우리가 얻은 것이 별로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독소 조항도 많다. 개방 원칙에 숨어 있는 네거티브 리스트(유보하지 않은 모든 미래 서비스는 자동 개방), 래칫(자율적 개방을 포함해 일단 개방하면 역진 불가), 미래의 최혜국 대우(다른 나라에 추가 개방하면 미국에 자동 적용), 정부의 입증책임(necessity test, 필요 이상 규제하지 않음을 한국 정부가 입증할 책임) 같은 조항은 현재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도 끝없이 국민 생활을 위협할 것이다.
지난해 5월에 나온 미국 의회조사국 리포트를 보면, 미국의 목적은 관세 장벽 철폐가 아니라 비관세 장벽 철폐에 있다.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미국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초국적 기업의 이해에는 딱 부합하겠지만, 한국의 대다수 기업·노동자·서민의 이해와는 정확히 반대일 것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4인 가족 기준 연소득 6천만원 이하 국민에게 한국 땅은 지옥이 될 것이며, 차라리 이민 가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한·미 FTA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 일단 멈추어야 한다. 미국·캐나다 협정문이라는 기존 틀에 미세 조정만 가했던 미국·멕시코 협상도 5년이나 걸렸다.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이 먼저 미국과 FTA를 맺으면 큰일 아니냐”라고 걱정하지만, 이들 나라의 경제·외교안보 측면을 살피면 곧 기우임이 판명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