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넌 누구냐

가자서 작성일 09.06.23 18:48:04
댓글 2조회 444추천 6

 

한미 FTA, 넌 누구냐

 

 

왜 미국과의 FTA가 문제인가,

왜 찬반 진영 모두 서비스 부문을 핵심이라 하는가…

국가보다 시장의 힘이 센 한국 미래 모델, 국익이 아니라 계층적 이해의 문제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두 나라 또는 지역 사이의 무역 장벽을 낮추거나 없애기 위해 맺는 자유무역협정(FTA)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7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꼽힌 보호무역주의 색채를 엷게 하고 자유무역의 확대를 지향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가 닻을 올린 해였다.

 

 

WTO 체제 이후 경제활동 전체로 확대

FTA는 GATT 조약 24조에 따라 예외로 허용됐다. 회원국들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시일이 걸리니 끼리끼리 몇몇만 모여 무역 규제를 풀 수 있는 ‘샛길’을 일정한 조건 아래 제한적으로 낼 수 있게 한 것이다.

021003000120060727620_15.jpg »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여론이 급속히 높아져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김종훈 한미 FTA 협상 대표.(사진/ 사진공동취재단)

FTA를 이렇게 예외적으로 조건을 붙여 허용한 것은 두 나라 또는 몇몇 나라들끼리만 관세를 철폐할 경우 그 밖의 GATT 회원국들을 차별하는 결과가 되고, 이는 회원국들 사이의 ‘최혜국대우’와 ‘내국민대우’라는 GATT 체제의 두 축을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한미 FTA 국민보고서>(총론)에서 “가트 체제의 자유무역협정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을 견제하는 장치로 도입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GATT 체제 아래에서는 FTA 체결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것은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FTA의 성격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5년 GATT 체제를 승계해 발전시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WTO 협정에선 ‘무역 관련’(trade-related)이라는 개념을 통해 통상규제 완화 또는 철폐 대상을 크게 넓혔다. 이전까지는 ‘상품무역’에 국한되던 것이 투자, 지적재산권, 농산물까지 아우르게 됐다. 관세나 각종 무역 관련 규제를 푸는 게 ‘상품영역’에서 ‘경제활동 전체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서비스 최강국인 미국이 서비스를 통상 범주에 포함시킨 결과였다. 이때부터 FTA의 주도세력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FTA 추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을 중심으로 FTA 연구 작업은 그 이전부터 이뤄져왔지만, 정부 차원에선 1998년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외교통상부 안에 통상교섭본부가 별도 조직으로 차려진 게 1998년 1월이었다.

인하대 경제학과 정인교 교수(FTA연구센터 소장)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방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주문이 있었고, FTA를 추진한다고 했을 때 국제기구나 신용평가기관들에서 우리 정책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며 “개혁, 개방 의지가 있다는 증거로 FTA(추진 사실)가 긴요하게 활용됐다”고 설명한다. 정 교수는 1991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부터 FTA에 관심을 집중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박사학위 논문, KIEP 재직 시절의 담당 업무가 모두 FTA와 밀접하게 연결돼 ‘미스터 FTA’로 불린다. 한-칠레 FTA를 비롯한 여러 FTA를 체결하는 자리에 협상자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021003000120060727620_16.jpg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아래 사진 왼쪽)과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2월3일 워싱턴에서 한미 FTA 협상의 개시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이 FTA를 추진한다고 했을 당시(1998년 상반기)만 해도 다른 나라들이 웃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관심을 보인 대상이 거의 없는 가운데 그나마 긍정적 신호를 보낸 나라는 터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칠레, 타이 6개 나라였다. 이들 나라 중 칠레가 한국의 첫 FTA 대상국으로 꼽혔고, 2004년 4월 협정 발효로까지 이어진다. 정 교수는 “여섯 나라의 경제 규모가 고만고만해 효과를 생각하기는 어려웠고, 대신 우리 경제에 끼칠 영향이 작을 나라가 어디인지를 기준으로 (시험용) 첫 대상을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몰락이냐, 경쟁을 통한 성장이냐

우리나라는 칠레와 FTA를 맺은 뒤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도 잇따라 협정을 맺었다. 또 일본과 FTA를 추진한 바 있고, 캐나다와는 FTA 추진에 관한 사전 협의를 개시했으며 그 밖의 여러 나라들과도 FTA를 추진 중이다. 미국과 체결하려는 FTA도 그 일환이다. 따라서 한미 FTA는 우리가 맺었거나 맺으려는 20여 협정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한미 FTA에서만 거센 논란이 벌어지는 것일까? 칠레와 맺을 당시에도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농업계를 중심으로 한 부분적인 반발이었을 뿐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전면적인 파열음은 아니었다. 한미 FTA 논란은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을 바라보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반미 감정에 뿌리를 둔 정치·사회적인 운동세력 때문일까?

한미 FTA를 둘러싸고 극과 극을 달리는 찬반 진영 사이에서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협정의 핵심적인 대목으로 쌀, 쇠고기, 자동차, 반도체 같은 ‘상품’ 분야보다 금융, 교육, 의료, 지적재산권을 포괄하는 ‘서비스’ 부문을 꼽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미 FTA가 ‘우리나라 미래의 경제·사회 모델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중대한 사안’으로 여긴다는 인식과 연결돼 있다.

올 2월16일 대외경제위원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발언을 보자. “밤낮 중국이 따라온다는 타령만 하고 있을 건가.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한 분야가 뭐냐. 주로 금융 같은 고급 지식 ‘서비스’ 분야다. 한미 FTA는 한국 경제의 새 활로가 뭐냐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이런 인식은 KIEP,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마디로 ‘중국한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FTA를 맺어서 미국한테서 서비스업의 노하우를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한미 FTA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 쪽이 모두 서비스 부문을 핵심적인 영역으로 꼽으면서도 대립의 양극단으로 내달리는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정부 쪽과 달리 반대 진영은 ‘미국 쪽의 서비스업이 워낙 앞서 있어 한국 쪽은 경쟁을 하기도 전에 무너질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더욱이 그 서비스업이란 게 금융, 교육, 의료 등 공공성이 높은 분야라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공공성이 높은 서비스는 각국의 법과 제도가 물려 있다”며 “(FTA 추진은) 교육, 의료 같은 서비스업이 영리를 추구하는 경향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핵심 분야인 서비스 부문을 포함해 한미 FTA에서 비롯되는 효과에 대해선 양쪽 모두 100% 옳다거나 그르다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전망일 뿐 아니라 두 나라 협상단의 밀고 당기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미 FTA가 다른 나라와 맺는 FTA와 견줘 개방 대상의 폭이 넓고, 국가의 기능을 좁히는 다양한 장치를 많이 두는 ‘높은 수준의’ 협정이라는 점이다.

미국형, 유럽형, 개도국형

세계은행은 현존하는 갖가지 모양의 다양한 FTA를 크게 미국형과 유럽형, 개도국형으로 나누고 있다.

‘미국형’은 서비스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최대한의 개방을 지향하며 래칫(ratchet·낚싯바늘의 끝부분인 ‘미늘’) 방식이다. 협정 체결 뒤 추가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개방 폭을 넓히는 조처는 가능해도 거꾸로 가기는 어렵게 하는 ‘역진 방지’ 시스템으로 짜여져 있다. 또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에서 포괄주의(네가티브) 방식을 채택해 예외로 적시되지 않는 모든 분야는 원칙적으로 개방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형에선 환경·공공 영역에서 정부의 구실이 크게 줄어든다는 주장은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형의 대표적인 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021003000120060727620_17.jpg »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될수록 반대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7월9일 오후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미국 쪽 협상단의 입국을 반대하고 있다(오른쪽).

유럽연합(EU)·칠레 FTA로 대표되는 ‘유럽형’은 미국형과 달리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을 채택해 개방할 분야만 나열하고 있다. 한-칠레 FTA를 비롯해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맺은 FTA는 유럽형에 가깝다. 개도국형 FTA는 개방 대상을 주로 상품 교역에 집중시키고 있으며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은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남미남부공동시장 협정인 메르코수르(MERCOSUR), ASEAN이 개도국형으로 꼽힌다. 미국형이 가장 높은 수준의 FTA, 개도국형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FTA로 평가된다.

미국과 맺는 FTA가 ‘관세를 낮춰 수출을 늘리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법·제도·관행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이런 미국형 FTA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찬성하는 쪽에서 볼 때는 이는 우리 사회의 경제 체질이 미국 모델, 곧 선진국형으로 바뀌는 것이며, 반대 쪽에선 경제통합을 넘어 경제 식민지로 가는 길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낳게 한다. 한미 FTA를 둘러싼 대립 전선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발전 모델을 미국형으로 삼는 데 대한 찬반 논란이라고 볼 수 있으며,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이기도 하다.

미국형 FTA가 법과 제도, 관행의 변화를 촉발한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은 투자자의 국가 제소 권한이다. 이는 NAFTA에서 처음 도입된 것이며, 한미 FTA 협상안에도 포함돼 최대 쟁점으로 떠올라 있다. 이는 투자와 관련한 한미 FTA 협정의 준수 여부에 대해 (미국 정부가 아닌)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개인(투자자)에게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은 유엔 인권헌장을 빼곤 유일하다. 이 소송을 맡는 기관은 우리나라 법원이 아니며, 세계은행의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ICSID)나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CITRAL)다. FTA 논란에서 사법권 침해 시비는 여기서 비롯된다.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이 어떤 힘을 갖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메탈클래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1995년 멕시코의 한 지방정부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독극성 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려는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의 계획을 좌절시키면서 비롯됐다. 이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을 ‘환경보호구역’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이에 메탈클래드는 NAFTA의 투자자 보호 규정 위반이라며 해당 지방정부를 중재법정에 제소했고, 법정은 ‘지방정부의 조처는 협정 위반’이라며 메탈클래드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지방정부는 메탈클래드에 1600만달러를 배상해야 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FTA의 투자자 정부 제소권을 ‘국제법상 이단’로 평가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투자자 제소권을 뺀 것에서도 그 위험성을 엿볼 수 있다.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쏟아내라

정부 쪽은 투자자 정부 제소권에 대해 투자와 관련한 내·외국인 차별 금지, 이행의무 부과 금지 등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 기업이 미국 정부를 소송할 수 있는 권한도 동등하게 갖는다고 설명한다. 양쪽 모두 권리를 갖기 때문에 억울할 게 없다는 설명은 교과서에서만 통할 뿐이다. 2004년 11월 말 현재 ICSID에 계류 중인 85건의 투자 분쟁은 대부분 미국 기업 쪽에서 제기한 것이며, 미국 정부가 피소된 사례는 1건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편향적 운용의 걱정을 기우로만 돌릴 수 없어 보인다.

021003000120060727620_18.JPG » 한미 FTA 2차 협상은 의약품 분야의 이견으로 파행 마무리됐다. 7월10~1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차 협상에서 마주 앉은 한국(오른쪽)과 미국 대표단.(사진/ 사진공동취재단)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서비스 교역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직접투자(FDI)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는 서비스 교역과 직결돼 있다. 외국 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미 FTA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투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서비스, 투자 부문의 개방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을 분야는 거의 없다.

미국형 FTA가 포괄주의를 띠고 역진 방지 장치를 두고 있는데다 투자자 제소권을 포함하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할 때 의료, 교육, 환경 등 각 부문의 정부 정책에서 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공공성의 후퇴와 양극화 심화를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높다. 이를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적 시각에서 볼 땐 국가보다 시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경제의 자유 영역을 넓히는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한미 FTA 논란은 다분히 계층(또는 계급)적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미 FTA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선 찬성하든 반대하든 허상뿐인 평균적 ‘국익’의 그늘에 숨기보다 차라리 각자 날것 그대로의 ‘사익’을 추구하는 솔직한 목소리를 열심히 쏟아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자서의 최근 게시물

정치·경제·사회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