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희 "위키피디아에 있는 'PD수첩' 비판 글 찾았다"
▲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이 위키피디아 사이트에 MBC PD수첩의 비윤리적 보도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수희
지난 26일 오전에 열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 검찰 수사발표 이후 한나라당은 <PD수첩> 공격을 단골 메뉴로 삼고 있는데, 이 날은 진수희 의원이 나섰다. 진 의원은 여의도연구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진 의원은 출력해 온 문건을 내보이더니 "세계적인 <위키피디아> 사이트에 MBC <PD수첩>의 비윤리적 보도행태가 올라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여의도연구소에서 하나 찾아낸 문건이 있는데 세계적인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PD수첩>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글이 게재가 된 것을 찾았다. 원문의 제목은 'PD Notebook and allegations of unethical journalism'이 타이틀인데, '방송내용에는 나중에 과장되거나 명백하게 즉흥적으로 조작된 근거없는 날조로 밝혀진 주장이 허다했다'. 또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한국에서 3개월에 걸친 항의시위를 유발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이 시위는 한국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하였다'고 게재가 되어 있다.
저는 MBC <PD수첩> 제작진에 충고한다. 또 제안한다. <위키피디아>에 반론권을 청구하셔라. 그래서 본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서 그렇게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위키피디아>에 당당하다는 내용과 이유를 밝히시라. 지금 세계적인 네티즌이 참여하고 있는 위키피디아에 <PD수첩>의 비윤리적인 보도행태가 문제로 올라와있다. 지금 세계 네티즌이 주목하고 있다. 당당하게 위키피디아에 <PD수첩>을 옹호하는 글을 올려서 세계 네티즌의 심판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순간 놀랐다. 전 세계 누리꾼들이 실시간으로 편집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위키피디아>를 인용하는 사례도 처음 보거니와 진 의원의 "<위키피디아>에 게재됐다" "<위키피디아>에 반론을 청구해 세계 네티즌의 심판을 받아 보라"는 주장은 더더욱 생뚱맞았기 때문이었다.
얼핏 들으면 진 의원 주장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가 '세계적 인터넷 백과사전'인 사실도 맞고, 그의 주장처럼 해당 내용이 영문판에 올라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진 의원의 주장은 그야말로 '전 세계 누리꾼들에게 큰 웃음을 줄만한' 억지성 아전인수이자 왜곡이다.
우선 '인터넷에 대한 몰이해'다. 진 의원 말대로 <위키피디아>는 세계적인 사이트다. <위키피디아>의 전신은 <뉴피디아>라는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이었는데, 이 사이트는 전문 편집자들이 내용을 검토해 최종적 '구현'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다가 2001년 1월 어떤 누리꾼이든 편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위키피디아>가 탄생한다.
파격적이었다. '집단지성을 이용한 정보와 지식의 확장'을 모토로 한 이 사이트, 이 때부터 전 세계 누리꾼 누구나 참여하고 편집할 수 있게 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런 '파격' 때문에 늘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바로 '정확성과 신뢰도' 문제다. 검증 시스템 부재에 따른 정보의 부정확성, 일방성에 대한 논란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얼마든지 첨삭할 수 있는 공간 '위키피디아'
▲ 진수희 의원이 지난 26일 "<위키피디아>에 의 비윤리적 행태가 문제로 올라가있다"면서 "측은 반론을 청구하라"고 비꼬았지만, 그가 언급한 'unethical journalism'이란 단어 역시 누리꾼 'jayz****'이 2009년 5월 21일에 만든 것이다. 20일 밤 11시 37분에 본인이 고친 글을 다시 고친 것이다. ⓒ 위키피디아 진수희
즉, <위키피디아>에 특정이슈에 대한 설명이 올라있다고 해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세계 최고 권위의 백과사전'인 양 '말포장'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론보도를 청구하라"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정말 다른 나라 누리꾼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까 창피할 지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키피디아> 내용은 얼마든지 첨삭될 수 있다. 순식간에 야당이 "<위키피디아>에 <PD수첩> 보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올라와 있다"며 문건을 흔들 수도 있는 것이고(물론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사겠지만), 지금보다 더 독하게 <PD수첩>을 몰아치는 내용이 올라갈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는 그런 공간이다.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위키피디아>는 언제든지 그 내용을 첨삭할 수 있다. '집단지성에 의한 정보의 확장'작업이 아닌 한 개인에 의한 '전횡'이 이뤄질 경우 사실이 왜곡될 수 있고 편향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는 나름의 장치를 만들어놨다.
자, 지금부터 <위키피디아>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진 의원과 여의도 연구소 연구위원들이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살펴보자. 어렵지 않다.
진 의원의 주장처럼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 들어가 검색창에 'pd notebook'을 쳐 보자. MBC와 함께 언급되어 있는 부분을 클릭하면 세 번째 단락에 'PD Notebook and allegations of unethical journalism'이라는 소제목이 나온다. 진 의원이 내보인 문건이 바로 이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MBC는 KBS와 함께 10년간 진보적 정부의 통제 결과 좌편향적인 보도행태로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로 시작하는 이 글, 이미 진 의원측이 번역해 제시했지만 "피디수첩과 MBC는 또 다시 대대적인 논란에 직면했는데 이번엔 시청자를 기만해서 서울에서 3개월간에 걸친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유발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등 내용이 대부분 <PD수첩> 공격 일변도다.
'jayz****'란 아이디 쓰는 누리꾼의 '원맨쇼'
▲ 'jayz****'아이디를 쓰는 이 누리꾼은 2009년 6월 2일에는 기존 MBC에 대한 역사를 서술한 부분에 "MBC는 KBS와 함께 10년간 진보적 정부의 통제 결과 좌편향적인 보도행태로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는 내용을 첨가하기도 했다.(위) 진수희 의원이 지난 26일 "<위키피디아>에 에 비윤리적인 보도 행태가 문제가 됐다"면서 공개한 문건의 맨 첫 문장이다. 진 위원이 제기한 부분은 대부분 이 누리꾼 혼자'편집'한 내용이었다. 이 누리꾼은 5월 21일에도 이와 유사한 문장을 내용에 추가했었다.(아래) ⓒ 위키피디아 진수희
여의도 연구소 관계자는 이 글을 보고 "한 건 잡았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누리꾼은 이렇게 단어사용이 극단적이거나 편향적일 때는 해당 내용 윗부분에 있는 'history' 단추를 클릭한다.
그동안 이 내용(article)이 어떻게 변경되어 왔는지, 어떤 누리꾼이 언제 어떤 내용(article)을 어떻게 첨삭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내용의 '내력'과도 같은 것으로, 누리꾼들은 'compare revisions' 단추를 통해 이전 글과 새 글의 바뀐 부분까지 쉽게 살펴볼 수 있다.
'history' 단추를 누르면 한 누리꾼의 '활약'이 유독 눈에 띈다. 'jayz****'란 아이디를 쓰는 이 누리꾼은 2009년 5월 12일 오전 7시 39분 <위키피디아> 해당글 편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누리꾼의 관심대상은 주로 <PD수첩>이었다. 처음엔 'PD Notebook and mad cow controversy'(PD수첩과 광우병 논란) 단락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편집'하기 시작했다. 주로 <조선일보> 기사 URL 등 <PD수첩>을 비판하는 의견 등을 붙이는 등 MBC와 <PD수첩>을 비판하는 내용의 편집을 했다. 이 누리꾼은 이후 12번이나 광우병 논란 글을 편집했다.
2009년 5월 21일에는 'PD Notebook and allegation of unethical journalism'이란 새 단락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진 의원이 언급했던 바로 그 단락이다.
여러 '편집'을 통해 본인의 성향을 잘 드러낸 'jay****'는, 진 의원이 제시한 문건의 맨 첫 구절 "MBC는 KBS와 함께 10년간 진보 정부의 통계 결과 좌편향적 보도행태로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는 문장을 2009년 5월 21일 0시 36분에 새로 끼워넣었으며 같은달 12일에도 유사한 문장을 추가했다. 이 누리꾼은 이후에도 자신이 고친 부분을 다시 고치고 형용사, 부사, 새 문장 등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PD수첩>과 관련해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보인다.
'jay****'의 흔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검색창에 'Lee Myung bak'을 검색하고 역시 'history'를 클릭해 보면 같은 아이디가 또 발견된다. 그는 2009년 6월 9일 이명박 대통령 관련 내용중 'US Beef Import'단락에 언급된 <PD수첩>앞에 'unethical journalism'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다. <위키피디아>에 'US beef imports in South Korea'라고 검색해 보면 그는 2009년 5월 12일 이후 60여 건이나 해당 글을 첨삭했다. '편집'에 있어 거의 '편집증적인 집착'을 보였다. 내용은 물론 <PD수첩>을 비판하는 내용들이다.
한 누리꾼의 주장에 전적으로 기댄 것에 불과
▲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6일 "<위키피디아>에 이 비윤리적 보도를 했다는 내용이 게재됐으며 은 <위키피디아>에 반론을 청구하라"고 주장했지만, 확인 결과 해당 내용은 한 누리꾼이 일방적이고 연속적으로 올린 내용임이 드러났다. ⓒ 위키피디아 진수희
▲ 아이디 'jayz****'을 쓰는 한 누리꾼은 지난 5월부터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관련 내용을 대부분 에 비판적으로 편집했다. 진수희 의원은 이 누리꾼의 주장을 대부분 인용해 "<위키피디아>에 이 비윤리적 보도를 했다는 내용이 게재됐다"고 밝혔다. ⓒ 위키피디아 진수희
얼추 정리가 된다. 진 의원이 주장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PD Notebook and allegations of unethical journalism'이 타이틀인데, '방송내용에는 나중에 과장되거나 명백하게 즉흥적으로 조작된 근거없는 날조로 밝혀진 주장이 허다했다'. 또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한국에서 3개월에 걸친 항의시위를 유발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이 시위는 한국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하였다'고 게재가 되어 있다."
하지만 살펴본 바 위의 내용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백과사전 사이트가 게재된 것'이 아니라 '<PD수첩> 제작진에 비판적인 한 누리꾼의 주장'에 전적으로 기댄 것에 불과하다. 결국 진 의원과 여의도연구소는 한 누리꾼이 이리 고치고 저리 뜯어내며 펼친 주장을 마치 검증되고 공인된 백과사전에 게재된 식으로 호도한 것이다.
물론 누리꾼 'jay****'을 비판할 이유는 없다. 그의 '원맨쇼'가 다분히 의도적이긴 해도 어느 누구보다 부지런히 <위키피디아>의 맹점을 이용한 누리꾼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금만 살펴봐도 한 누리꾼의 '전횡'임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뽑아다가 "반론 청구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등 한 편의 코미디를 연출한 진 의원과 여의도연구소의 과문함이다.
진 의원과 여의도연구소 연구원들이 참고할 만한 사이트가 있다. 다름아닌 위키피디아 한국판(http://ko.wikipedia.org)이다. 이 사이트에 접속해 <PD수첩>을 검색해 보시라. 영문판보다 훨씬 '균형잡힌' 여러 정보들이 여러 누리꾼의 참여와 편집을 통해 올라와 있다. 마찬가지로 'history'를 클릭해 보면 '집단지성에 따른 정보의 확장'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잘 구현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토론'도 후끈하다.
몰랐나, 알고도 모른 척 했나?
이쯤되면 궁금하다. 진 의원과 여의도 연구소 연구원들은 이런 사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한 것일까. 인터넷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사이버모욕죄까지 언급하는 거대 여당에서 <위키피디아>의 기본 운영 방식과 철학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하물며 당내 싱크탱크라는 여의도연구소가 찾아냈다는 문건이 이 정도면, 이거 정말 곤란한 거다.
그럼 알고서도 '질렀다면?' <PD수첩>사태에 대해 당이 내놓을 새 논리가 더이상 없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PD수첩>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인 거짓 왜곡선전을 펼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진 의원은 <PD수첩>을 망신주려다가 되레 세계적 망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탄력'을 받았는지, 진 의원은 오는 7월 3일 오전 10시에 의원회관에서 'PD수첩을 통해 드러난 PD저널리즘의 폐해,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토론회는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는 연사들의 주장으로 가득차겠지만 적어도 <위키피디아> 문건을 다시 한번 흔들면서 "세계적 망신이다", "위키피디아에 반론을 청구하라"는 주장은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라건대, 한나라당은 제발 인터넷과 좀 친해져라. 그러려면 먼저 공부 좀 하자.
출처 : <위키피디아>에 반론 청구? 인터넷 공부부터 하세요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