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탄생에서 서거까지

나는붕어 작성일 09.08.18 14: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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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4년 1월6일 남해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이 작은 고향마을의 이름 ‘후광’을 그는 평생 아호로 삼았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뭍으로 나와 목포 북교초등학교를 졸업했고 해방 이태 전인 1943년 5년제인 목포상업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해운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김대중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해운회사에 취직한 뒤 해방후 회사 관리인으로 선임돼 해운 사업가로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과 이후 정치 파동을 겪으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로 군림하고,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자 올바른 정치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리 3번을 낙선하고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처음 민의원에 뽑혔지만 당선 3일 만에 5·16쿠데타로 의원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이 시절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다.

1963년 목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금융, 건설, 외교, 예산, 국방 등 다양한 상임위원회 활동을 펼치며 눈부신 의정활동을 벌였다.

1964년 박정희 정권에 대해 한일국교협상과 관련 비난발언을 한 김준연 의원의 국회 구속동의안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쉬지 않고 연설, 본회의 최장시간 발언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민주화 투쟁과 4번의 죽을 고비

그의 인생역정은 ‘4번의 죽을 고비’라는 표현처럼 파란만장했다.

한국전쟁 당시에 공산군에 붙잡혀 총살 직전에 목포교도소를 탈출했고, 1971년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후보 지원유세차량를 타고가다 교통사고를 가장한 테러를 당했다. 1973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당해 바다에 던져지기 직전 극적으로 생환하였으며 1980년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세력의 군사재판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민주화와 인권, 평화통일의 길을 선택한 그는 숱한 투옥, 망명, 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감옥에서 역사, 철학, 경제, 문학서적 등 수백권의 책을 정독하며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4번의 도전과 대통령 당선

정계 입문 초기 국회의원선거에 3번 낙선한 것처럼 그의 대권도전의 길 역시 가시밭이었다.

1971년 부정선거 논란 속에 박정희 후보에 95만 표 차로 석패한 뒤 전두환 정권이후 치러진 13대, 14대 대통령선거에 잇따라 낙선했지만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다. 건국 이후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대통령 김대중은 취임하자 ‘정치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대로 자신을 그토록 핍박했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서 꺼내주었다. 1980년 11월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항상 인내하고, 우리가 우리의 적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자. 그래서 사랑하는 승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

대통령 당선 당시는 사상초유의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관치경제에 대수술을 단행하고 외국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혼신을 다 했다. 금융 기업 노동 공공 4대분야에 일대 개혁을 단행, 2001년 8월, 예상보다 3년을 앞당겨 IMF차입금을 전액 상환했다.

2000년 6월에는 분단 55년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그의 햇볕정책은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 평화의 기운이 움트게 만들었다.

그해 12월 김대중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한국과 미얀마 동티모르 등 아시아의 민주화와 인권을 신장시키고 남북화해정책을 펼친 공로가 노벨평화상 수상 이유였다.

2003년 김대중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2009년 8월 서거하기까지 남북 평화 공존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유럽 3개국(프랑스, 노르웨이, 스위스) 순방, 중국 장쩌민 군사위 주석 등 중국 지도자 면담, 페르손 스웨덴 총리, 참피 이탈리아 대통령 회담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였다.

/khchoi@fnnews.com최경환기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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