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사장님. [change님 글]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중소기업 사장님께서 한 분 계십니다.직원도 대략 40~50명 정도로 그렇게 크
지도 그렇게 작지도 않은 기업으로 나름대로 기술로 먹고 사는 분들이 모여서 알차게 서로의 미래를 위하여
하나가 되어 열심히 일하는 그런 곳이죠.사장님의 마인드도 나이에 비하여 많이 개방된 편으로 비교적 어린
직원들과도 잘 소통하고 또 스스로 한 눈 팔지 않고 늘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일하시는 아주 성
실한 분이셨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자잘한 업체들과 거래를 하며 매출액도 별로 안되고 그 규모도 적었지만 그렇게 밤낮으로 열
심히 노력한 것을 하늘이라도 알아준 듯 어느새인가 그 기술력도 인정받고 그러다보니 어느날 어느 대기업
으로부터 우리 회사에 부품을 납품해 주면 안되겠느냐는 정말 뜻밖의 제안을 받고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하며
즐거워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과 거래를 하면 물품대를 못 받는 일도 없을 것이고 또 꾸준한 물량이 보장이 되며 나름대로 더 나은
제품 만들기에 도움이 되는 등 어디 좋은 점이 한 두가지일 것이냐며 이제 회사의 미래가 탄탄대로에 들어섰
다고 희망에 부풀었을 것은 명확한 사실일 것입니다.그리고 사장님께서는 이왕 내친김에 생산라인도 대기업
만을 위한 라인으로 확 바꿨으며 은행에서 대출도 받아 최신 장비를 들이고 직원들도 더 보충하고 아무튼 나
름대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상대방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자신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자 바로 지금이
다 라는 듯 현금으로 꼬박 꼬박 판매 대금을 지급하던 것을 어느 때 부터인가 어음 쪼가리를 주기 시작하였
고 현금에 목 마른 사장님께서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어음 깡을 하여 간신히 하루 하루를 버텨야 했으며
어떤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가벼운 사안에 관하여도 심한 꼬투리를 잡으며 다시 납품할 것을 강요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질질 끌려다니다보니 처음 미팅 때 사장님께 깎듯한 인사로 정중히 모시던 담당 김대리의 공손한 태
도는 온데 간데 없고 늘상 약간은 건방진 태도로 일관하였으며 이에 상대적 약자인 사장님께서는 오히려 한
참 나이 어린 대리에게조차 90도로 인사하며 잘 좀 부탁한다고 애원 아닌 애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거기에 결제 라인에 있는 간부들의 경조사를 알리는 청첩장이나 부고장 등이 책상에 쌓이는 날이 많았고 가
끔은 친절하게 바쁘시면 직접 오지 않으셔도 된다며 전화 한 통으로 계좌번호를 알려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하
시더군요.
그런 상황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경제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죠.그러다보니 그들의 입장에서도 소비
부진의 상황을 반전시키고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하여 단가 인하라는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그 일방적인 통보에 계산기를 아무리 두들겨봐도 제시한 단가로는 수지 타산
이 맞지 않아 사장님께서는 어느날 담당자 몇 명과 술자리를 마련하였고 그들이 흥이 오를 무렵 술기운을 빌
려 도저히 그 가격으로는 납품을 못 하겠다 웃으며 하소연했지만 돌아온 답은...
" 사장님 이러시면 곤란하지요.그동안 올려드린 매출액이 얼마인데 저희가 힘들 때 한 번쯤은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서로 사는 것인데 그걸 모르시다니...뭐 맨날 남는 장사만 할 수 있습니까? 때론 밑지는
때도 있고 그런 것이지요.하지만 사장님께서 정 받아들이기 힘드시면 다른 업체를 알아보는 수 밖에 없겠네
요... "
그 말에 그동안 참고 참았던 사장님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 @#$%%&*%$#$$$............................................%$##@#$*& !!!!! "
그 후로 어떻게 되었냐구요? 수억 수십억원어치 부품을 납품하면 뭐합니까? 남는 게 없는데...직원들 월급이
며 공장 임대료,대출 원금에 이자,자재 구입비,차량 유지비 등등등 이런 막대한 회사 운영비들이 땅 파면 나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그것도 몇 개월짜리 어음 쪼가리나 던져 주는
데...
결국 그 대기업에게 '팽' 당하고 거래를 그만 두었으며 나름대로 경기 침체로 인한 크나큰 한파를 이기려 온
갖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회사를 꾸려 나가려 했으나 결국 힘 없이 무너지고 말았습
니다.때론 은행 대출 담당 대리에게조차 90도로 인사하며 잘 좀 봐달라 부탁해 보기도 했지만 재무 상태가
건전했을 때 상냥하게 적극적으로 대출을 권하던 그런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니 오직 담보
담보 담보만을 외치며 지극히 사무적인 투로 대출이 힘들 것 같다는 말에 너무 고통스럽고 힘에 겨워 깡소주
를 마시고 눈물을 흘리며 한강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 했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으나 그 때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셨다 하시더군요.
대기업? 좋죠... 나라를 대표하여 세계 유수기업들과 나란히 경쟁하며 수출 역군의 선봉장이 되어 달러를 벌
어 들이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업들이죠.하지만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들
과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을 흘렸을 것이며 또 이용만 당하고 쓰러져 갔을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
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는 않겠습니다만 이런 현실은 예전에도 현재도 있는 진정 불합리한 문제로써 괜
히 말로만 상생을 외칠 것이 아니라 때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파트너쉽을 발휘하여 같이 어깨동무하고 같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서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솔직히 말해 대기업들은 고환율의 헤택을 온몸으로 누
리며 언제 경제위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좋은 실적을 거두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사정이 나아진 게 별로
없잖습니까...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보고 들은 현실은 아쉽게도 피도 눈물도 없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
우가 결코 적지 않았던 것 같았으며 그들 마음속에 늘 품고 있는 생각이 혹시 " 그저 당신들은 우리같은 대
기업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굶지 않고 밥은 먹고 다니는데 감사하다 하지는 못 할 망정 무슨 말들이
그리 많소..." 라는 식이 아닌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