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팅이 지겹다, 정말 지겹다

가자서 작성일 10.02.03 17: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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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팅이 지겹다, 정말 지겹다

 

 

 

[기고] 김경래 KBS 네트워크팀 기자 newsdaybox_top.gif 2010년 02월 03일 (수) 16:08:01 김경래 KBS 네트워크팀 기자

 

 

2008년 여름이었다. KBS 이사회에서 당시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키려고 할 때가 그 시작이었다고 기억한다. 하루가 멀게 벌어진 피케팅과 항의시위, 청경과의 몸싸움, 시민 홍보전, 제작거부, 그리고 파업. 여기에 운영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총회, 불신임투표. 끔찍한 시간들이다.



청와대는 KBS가 잠잠해질 만 하면 낙하산을 투하해서 분란을 일으켰다. 이 낙하산들은 프로그램 폐지, 파면, 해임, 지방 발령 등으로 분란을 증폭했다. 기자들도 쉬지 않고  저항했다. 저항에 대한 대답은 징계였다. 어이없는 인사가 돌아왔다. 이런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자들은 피곤하다. 출근하는 특보 사장에게 항의하기 위해서 일찍 나와서 청경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점심시간에 피케팅을 하고 허겁지겁 밥을 먹어야 한다. 누구는 하느라고 피곤하고 누구는 부채의식으로 피곤하다. 누구나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짜증을 삭이기 위해 새벽까지 소주를 밀어 넣는다. 시간이 되돌아가 대학 2~3학년을 다시 사는 기분이다. 처음 한두 달은 옛날 생각도 나고 오랜만에 정신과 감정이 절제없이 낭비되는 자학적인 즐거움도 느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햇수로는 3년에 접어들었다. 이젠 아니다. 몸도 감정도 머리도 피곤하다. 좌절과 분노와 같은 축축한 감정으로 긴 시간을 버티기란 얼마나 지치는 일인가. 심심하고 드라이한 일상은 또 얼마나 그리운가.



 

     ▲ 김경래 KBS 네트워크팀 기자   

물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밥은 먹어야하고, 잠은 자야하고 그렇게 ‘생활’은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KBS 기자들도 취재를 해야 하고 기사를 써야 하고 뉴스를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


4대강이나 세종시 같이 청와대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아이템은 기자들을 미치게 한다.

 

 취재를 시작하면서부터 온갖 시어머니들이 감 놔라 배 놔라 귀찮게 한다. 어렵게 어렵게 기사를 써 놓으면 이걸 이렇게 고쳐라 저걸 저렇게 고쳐라 머리가 터지게 한다.

 

인터뷰에 이명박이라는 말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난 듯이 난리다.

 

 어쩔 때는 기껏 취재한 아이템이 나가지도 않는다. 이제 민감한 아이템은 발제를 꺼린다. 싸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서서히 체화된 자기검열 시스템이 작동한다. 자기 보호는 본능이다. 잔매에 시달린 몸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의욕을 잃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KBS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또 얼마나 작은 부분에 불과한가. 내가 쓰는 기사에는 떳떳할 수 있겠지만 부끄러운 일은 내 주변 1m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강기갑 의원이 무죄 판결을 받은 기사가 편집에서 사라졌다. 총리의 ‘거덜난다’ 발언은 기사도 쓰지 않았다. 원전 수출 특집은 제작자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결정되고 제작됐다. 낯 뜨거운 대통령 기사는 내가 쓰지 않았지만 뉴스에 계속 등장한다. 뉴스는 아니지만 미수다, 과학카페, 열린음악회, 수상한 삼형제 등등 많은 KBS 프로그램에서도 권력의 그림자를 느낀다. 내 일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 일이다. KBS의 일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도 공범자라는 부끄러움. 한국 최고의 언론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정권의 방송에서 부역한다는 굴욕감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였던 과거는 이제 진짜 ‘과거’가 됐다. 2위로 떨어지고 3위로 떨어진다. 취재현장에서 쫓겨나고 KTV와 경쟁하냐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한다. 특보 사장은 뉴스의 포맷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 바꿔야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고려하고 시청자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땅에 떨어진 신뢰도를 어떻게 올릴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신뢰도를 언급하지 않는다. 시청률이 이렇게 떨어졌으면 어떻게 했을까. 뉴스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취재력이 부족하다고, 기획이 부실하다고, 그림이 타사에 비해 다양하지 않다고, 이게 문제고, 저게 해결책이라고. 난리가 났을 거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신뢰도 1위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신뢰도를 말하는 순간 특보 사장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솔직해지는 순간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게 된다. 신뢰를 상실한 특보 사장은 시청자에게 봉사해야 한다며 연탄배달에, 헌혈에 기자들을 동원하며 속 보이는 위선을 강요하고 있다. 사장 밑 간부들은 그래도 연탄배달은, 헌혈은 좋은 일 아니냐며 후배들을 설득한다. 우리가 언제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본적 있냐며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일을 하는 처세로 일관한다. 달인들이 많다.



후배들은 솔직하지 않은 선배들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이제 서로 민감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논쟁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돼 버렸다. 신뢰를 잃어버린 선배들.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후배들. 그리고 소통의 부재. 이게 MB 정권이 장악한 KBS의 슬픈 초상이다.



이런 우울한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난감하다. 후배에 속해 있는 나로서는 선배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 해답은 하나밖에 없다. 후배들이 좀더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 잔인하지만 그 수밖에 없다. 지쳐있는 마음을 매일매일 조금씩 추스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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