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 와중에 자식이 군에 간 가족들 주변에선 '전쟁'이 화제가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필자도 어느 사람으로부터 군에 간 자식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엄마, 무서워"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부대원들 중
엔 운 사병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자식은 부대에서 전화를 걸
어 "아빠, 이명박이 전쟁을 하려는데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렇
게 가만있으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한다. 이 자리, 저 자리에서 이런 얘
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비슷한 경우가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한 군 장성으로부터 "지금 군대는 유치원 군대"라고 개탄하는 소리
를 들었다. 부대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사병들이 집으로 고자질을 하고, 그
러면 엄마가 곧바로 사단장에게 연락해 퍼붓고, 사단장은 해당 부대장을 나
무라는 사이클이 전국에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예비역 육군 대장 한 사
람은 "어느 사병이 다른 중대 부사관에게 '아저씨'라고 불렀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강이 엉망이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전
우가 46명이나 죽었는데 명색이 군인이 '전쟁 날지 모르니 북한에 대해 아
무 책임도 묻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매달린다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필자는 몇 달 전 자식의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가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 글을 읽은 한 여성이 "원정출산이 뭐가 나
쁘냐"고 했다. 그래서 "나라는 누가 지키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북한에
돈 주면 되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 아빠에게 매달린다는 군인
들 얘기를 들으며 불현듯 그 여성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이들은 "군에 가지도 않은 대통령이 왜 우리보고 전쟁하라고 하느냐"는 얘
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병역필'이 대통령의 필수 조건이란 사실을 절감한
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선 군에 안 가려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스스
로 자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도지사에 당선됐다. 한 사람은 "도민들이
그 사실을 몰라서 당선됐을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도민들이 그 사실을 알
았어도 그가 당선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의 세태(世態)다.
군 지휘관들은 이런 세태에 적당히 영합하고 있다.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우
리 군은 일체의 훈련을 중지했다. 그 때문에 훈련을 하지 않은 군대가 세계
에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신종플루에 걸린 사병이 나왔다면 그 부모
는 "내 * 살려내라"고 항의했을 것이다. 그걸 잘 아는 지휘관들이 아예
훈련을 안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침몰당해도 군
에 비상 한번 걸지 않은 것이다.
군인들이 세태에만 영합하는 것이 아니다. 천안함이 침몰하자 합참의 한 장
교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도 모르는 상황에서 핸드폰으로 청와대 선배에
게 이 사실을 먼저 귀띔해줬다. 청와대가 군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군
인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영합하는 것이다.
북한이 한번 협박을 하자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그 후 "주식 가진 사람들
은 천안함 사건이 흐지부지되기를 바란다"는 얘기가 퍼졌다. 이 얘기는 그
냥 추측만은 아닐 것이다. 천안함이 스스로 침몰했다는 거짓말을 만든 곳
중 하나가 여의도 증권가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 무서워서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는 군인들 바람대로, 주가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
바람대로 천안함은 흐지부지되고 46명만 개죽음을 한 것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람은 다 두렵고, 다 돈이 아깝다. 누구만 탓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국가를 떠받치는 큰 기둥 하나가 빠져있는 상태라는 사실은 인정하
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 빠진 기둥은 미군이 대신 메우고 있다. 미군은 단
순한 군 전력(戰力)만이 아니라 우리의 비겁함과 이기주의가 만든 구멍까
지 메우고 있다. 미군이 빠지면 가장 먼저 이 비겁함과 이기주의가 우리 사
회를 뒤덮을 것이다.
학부모 아닌 '군(軍)부모'들이 "왜 내 자식 부대가 출동하느냐"고 부대 앞
에 드러눕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왠지 우리 눈앞에
서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만 같다.
그래도 천안함 생존 장병 중 5명이 다시 함상(艦上)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
다. 그 용기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회가 이나
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양상훈 칼럼]에서...
양상훈 편집국 부국장
전쟁이 꼭 일어나면 안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걱정된다...
(근데 전쟁나면 엄마가 다해줄거 같은 기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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